한동대학교는 특별하다. 그 특별함을 만드는 것은 한동대학교의 독특한 문화들이다. 그리고 그 문화의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팀 제도'다. 특별하다는 것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특별함을 받아들이는 개개인의 생각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풀어 말하자면, 팀 제도를 비롯한 한동대학교 고유의 문화들이 불편한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존재한다고만 하니 소수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다수가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불편한 것은 바꾸면 된다. 하지만 쉬이 바꿀 수 없음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우선, 팀의 구성원을 나눠보자. 팀을 이끌어가는 임원단, 팀의 활력소가 돼주는 새내기 및 새내기 섬김이, 그리고 그 외의 팀원으로 나눠진다. 앞 문장을 읽고 수긍을 했던 사람들은 되짚어보길 바란다. 왜 이렇게 구성원이 나눠지는지. 그리고 내가 왜 이렇게나 무례한 분류에 수긍했는지. 바로 임원단, 새내기, 그리고 새내기 섬김이, 이들이 팀 활동을 주도하는 구성원이며, 그 외의 팀원들은 수동적으로 따르기만 하기 때문이다. 팀 활동의 정식 이름은 공동체리더십훈련이다. 하지만 결국, 소수 인원들의 타의적 희생으로 인해 돌아가는, 지양해야 하는 공동체의 모습이 됐다.
나는 이 모습이 '한동의 관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물체가 외부로부터 힘을 받지 않을 때 처음의 운동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질을 관성이라 한다. 즉, 한동의 관성이란, 팀 문화 안에서 '하던 대로 하려고 하는 습성'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소수가 희생해야 돌아가는 공동체로 굳어졌을까? 그렇게 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임원단, 새내기, 새내기 섬김이는 열심히 팀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낙인을 찍어놓고, 팀의 구성원 중에서 '그 외'에 속하여 팀 활동에 큰 기여 없이 학기를 마치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관성이 생긴 것은 나와 당신 때문이 아니다. 팀이라는 공동체가 인위적으로, 무작위에 의해 형성된 공동체이고 자율이라는 미명아래 방치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졸업을 하기 위해서는 이 공동체리더십훈련을 6학기 동안 이수해야 한다. 앞서 한동대학교의 특별함을 만들어주는 독특한 문화라고 이야기했지만, 공동체리더십훈련은 6학기 동안 매년 바뀌는 팀 공동체 안에서 일주일에 한 번 이상 활동을 강제하는 '수업'이다. 보통 수업에서는 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소위 '무임승차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팀원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공동체리더십훈련'에서도, 팀원들의 팀 활동을 서로가 평가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등, 제도적 차원의 변혁이 있어야 팀 문화가 현재와 다르게 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와 당신의 탓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팀 내에서 희생이 필요할 때 외면한 적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비겁하게 한동대학교의 특별함 속에 숨어서 희생을 요구한 기억이 많다. 다른 바쁜 일이 많은 것, 잘 안다. 하지만 임원을 비롯해 팀 활동을 주도적으로 하는 구성원들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면 나눠 짊어지는 연습을 해보자. 우선, 17-2학기 팀을 이끌 팀장에게 격려의 말 한마디를 건네보자.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이다.

최용훈 (법,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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