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김지영은 개인 김지영이 아니라 82년생 여성들의 삶을 나타냈다고 느꼈다. 그래서 글을 쓰면서도 나 개인의 삶보다는 지금 살아있는 92년생 김지영 들의 삶들을 생각하려고 했다. 92년생 김지영이라는 이름으로 글이 실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김지영 씨, 82년에 태어난 김지영과 92년에 태어난 김지영의 삶은, 슬프게도 너무 닮았어요. 당신이 당신 어머니와 크게 다르지 않았듯이요.
2001년생인 제 동생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여전히 짝수로 시작했고, 강 씨인 아빠를 둔 제 친구는 초등학교 때 늘 20번이었어요. 택시를 타면 카드 내기가 여전히 무섭고요. 특히 저는 눈이 나빠 안경이 필수인데, 아침부터 안경 쓴 여자를 태우면 그렇게 싫어하시더라고요. 아, 밖에 외출했을 때는 화장실도 잘 안 가요. 못 간다는 표현이 적절할까요. 혹시 모르잖아요. 내가 또 어떻게 인터넷에 올라있을지.
솔직히 결혼도 많이 고민돼요. 뭐라더라 사랑은 계산하지 않는 거라지만 결혼하고 애 낳으면 제 삶은 우수수 부서질 것만 같거든요. 내 일은, 내 몸은, 내 가족은 어떻게 될지 걱정투성이예요. 좋은 사람을 만나 잘살고 있는 언니와 친구들을 보면 또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더라도, 막상 내 모습을 그려보면 스산해져요.
또 있어요. 제가 대학 다녔을 때도 꽤 여럿이 그러더라고요. 여자애가 왜 이렇게 기가 세. 어쩜 한 마디를 안 져. 웃기죠. 내 생각을 말하는 데에 기가 무슨 상관이고 이기고 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여자애가 논리적으로 말하면 전쟁이라도 선포되는 줄 아나 봐요. 이제는 그냥 말을 말아야 할지 싶어서 답답해요.
NGO에서 일하고 싶었던 제 친구들도 이젠 지친 눈치예요. 모든 조건이 같아도 남자가 뽑혀요. 스물일곱 넘은 여자애는 각종 회사에서 부담스러워서 한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요. 출산율이 낮아진 건 여성의 사회진출 때문이라며 1%의 수치를 여성의 책임으로 묻지만, 회사에서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은 금기시돼요. 차라리 그만두는 게 나을 정도라나요.
그래도 이게 82년생 김지영 씨보다는 조금 나아진 삶이라면 삶일까요.
뭐 그렇죠. 여자도 대학교에 갈 수는 있고, 회사에 취직도 할 수는 있어요. 같은 신입끼리 돈은 다르지만,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오긴 합니다. 아, 여성인 동아리 회장도 학회 회장도 있고, 아주 가끔 총학생회 회장도 나오는 것 같아요, 가끔. 그리고 고시를 치면 꽤 많이 수석을 차지하고요.
하지만 아직도 삶은 회색빛 같아요. 무지개를 만들고 싶지만 비와 천둥이 겹치는 어수선한 장마처럼. 어떻게 뭘 고쳐야 김지영 씨의 삶이 나아질지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지만, 92년에 태어난 김지영은 새천년 새 정기를 받았을 2002년의 김지영이 또 다른 삶을 살기를 바라고 있어요. 당신이 그러했듯이요. 그리고 그 김지영은 2012년생 김지영이, 그리고 2022년생 김지영이 조금은 더 행복하길 바라겠죠.

p.s. 이 세상의 모든 김지영 씨에게, 그 어떤 말보다, 두 시간짜리 이 책이 충분히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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