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사담을 벌이다 가끔 나오는 말이 있다. ‘아무 말 대잔치’. ‘아무 말 대잔치’는 흔히 뇌에서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생각 없이 막 내던지는 말들을 지칭한다. 이런 아무 말 대잔치 속에 참여하다 보면 간혹 기분이 상할 때가 있다. ‘저런 말을 해도 되나’ 싶은 말들이 오갈 때도 있다. 그렇다. 우리가 하는 말이 어떤 사람에게는 상처를 줄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위로가 될 수도 있다. 그만큼 말 한마디에 권위가 막대하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한동대 내 성 소수자에 대한 ‘말’들이 많았다. 본지 ‘생각면’에 실린 글, 학교 당국의 입장 표명과 이에 대한 교수들의 반응 등이 있었다. 이런 말들에 이어 지난 22일 올레이션스홀 오디토리움 앞에서 학생들이 성 소수자 혐오를 반대하는 팻말 시위를 벌였다. 시위는 교내에 있었던 동성애 혐오 발언을 규탄하기 위해 벌어졌다. ‘동성애는 질병이 아닙니다’, ‘차별과 배제는 폭력입니다’ 등의 글을 담은 팻말을 든 학생들이 침묵하며 서있었다. 나는 교내에 이런 사건 전개의 원인이 충분한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고 누군가는 이에 대해 상처를 받았다. 말하는 이가 교내 구성원들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말을 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누군가는 이 말을 듣고 상처를 받았기에 사람들이 시위를 벌였다. 나는 이 사안이 갈등에서 멈추지 않고 이해관계 속에서 해결이 됐으면 좋겠다.
이 글을 빌어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한동대 구성원 간의 대화가 이뤄질 때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최소한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그의 입장을 고려하면서 말을 했으면 좋겠다. 학생이든, 교수든 어떤 직책을 가지고 있든 우리는 모두 인간이다. 대화 상대의 직책이 나보다 아래에 있든 위에 있든 그가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할 권리는 같다. 성 소수자의 경우도 이와 동일하다. 이들은 더도 덜도 아닌 사람이다. 성 소수자들에 관해 입장을 표명할 때 두 번 더 고민해 보고 말을 했으면 좋겠다. 물론 상대방의 입장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 실수할 수도 있다. 그 사람의 입장이 돼 보지 못해서 그럴 수 있다.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란 힘들다. 내가 그 사람이 아니기에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나는 말하는 것이 두렵다. 정확히 말해서 나의 생각을 주장하는 것이 두렵다. 누구는 이 글을 보고 내가 ‘겁쟁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말을 해서 상처를 주는 것보다 차라리 겁쟁이라고 불리고 싶다. 나는 말로 누군가를 프레임에 가두는 것, 누군가의 존재를 나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도 나의 ‘아무 말 대잔치’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고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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