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맑은눈은 참 오래 썼다. 두 개의 글을 휴지통에 들여 보내고 이번이 세 번째 시작이다. 이번 글도 몇백 자 끄적거리다 생을 마감하지는 않을지 두렵다. 그래도 마음은 편하다. 이제야 ‘해야 할’ 이야기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여러분이 가장 궁금했을 칼럼에 관한 이야기다.
학기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겠다. 한동신문 10면에 ‘생각 면’을 뒀다. ‘교수칼럼’과 ‘한동에고함’ 코너는 기고문을 싣는 자리다. 오는 글을 싣고, 오지 않으면 발품을 팔아 글을 얻는다. 이 과정에서 적용하기로 한 기준은 ‘특정인 대상의 비난, 욕설, 범죄의 소지가 없을 것’이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범죄’의 기준은 현행법에 비추어 판별했다. 실을 수 있는 주제와 싣지 못하는 주제가 최대한 갈리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어떤 칼럼이든 ‘킬’ 안 시켰다. 두 개 이상의 칼럼이 오면 둘 중 하나를 싣고 나머지는 다음 호에 실었다.
기존의 기준을 깰지, 지킬지의 갈림길이었다. 어느 쪽이 옳은 길이었을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편집진은 기준을 지키는 쪽을 택했다. 한동신문이 선택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절감한다. 칼럼을 실은 주체는 한동신문이며, 편집국장이다.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은 ‘편집권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말과 다르다. 주제에 대한 가치판단을 최소화한 것 또한 편집권 행사의 한 갈래다. 기준을 세우고, 글을 받고, 해석하는 주체가 한동신문이다. 글은 지면과 한동 역사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한동신문의 책임이다. 칼럼을 포함해 한동신문에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충분히 말해달라.
한동신문이 칼럼 발행 후 독자들의 유감에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던 것을 사과한다. 기준에 대한 질문과 유감, 한동신문은 후자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 과거 어떤 기준을 가졌는지에서 나아가, 그 다음을 말하려 한다.
당장 약속할 것은 고민이다. 앞서 한참 동안 기준을 설명했지만, 기준에 맞춰 나간 글에 독자들이 불편을 표했다. 이에 한동신문이 설정한 기준을 다시 생각해보려 한다. 당장 어떻게 바꾸겠다는 말보다는 기고의 범위를 최대한 유지하는 한에서 나가지 말아야 할 글이 어떤 것들일지 고민할 것이다.
‘면이 아까웠다’라는 의견 감사히 받았다. 더 좋은 글을 실어달라는 말로, 더 좋은 글을 싣지 않는다면 한동신문을 보지 않겠다는 말로 이해하겠다. 한동신문은 독자의 것이다. 읽히지 않는다면 한동신문은 존재할 수 없다. 읽히지 않는 신문, 읽히지 않는 맑은눈이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읽히기 위해 ‘면이 아깝지 않은’ 신문이 되겠다.
비단 칼럼뿐 아니더라도 더 좋은 글을 위해 노력하겠다. 신문 한 켠의 정정보도가 부끄럽고 죄송하다. 글자 하나, 사진 하나 모두 한동신문의 일부다. 그 모든 것에 책임지는 한동신문사가 되겠다. 이것이 한동신문 모든 요소에 적용되는 새 ‘본지의 편집방향’이다.
 

저작권자 © 한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