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재학 중일 때, 내 별명은 ‘딴지’였다. 딴지의 사전적 뜻은 ‘일이 순순히 진행되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거나 어기대는 것’을 말한다. 친구들 사이가 허물없었다는 것을 고려해, ‘비판’을 과격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하고 있다. 걸핏하면 이거 이상하다, 저거 잘못됐다고 말하는 게 친구들 눈에는 얄미워 보였을 것이다. 어느 정도 어쩔 수 없는 성격인 것 같다.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을 먼저 보는 게 괴로울 때도 있어 고쳐보려 했으나 나의 도전은 실패한 것이 분명하다.
4월 15일, 제보자 A 씨로부터 전화가 걸려 들어왔다. A 씨가 제보한 내용은 총학생회 집행부의 중간고사 깜짝 이벤트에 관련한 내용이었다. 4월 15일에 진행된 ‘협력국의 배달’ 이벤트는 ‘People in Handong’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공지됐으며 선착순으로 빠르게 댓글을 단 3명에게 야식을 배달해주는 행사였다. 이 행사의 수혜자에 총학생회 집행부 소속 학생이 포함돼 있었다. 선착순으로 진행된 행사에 행사의 개최자와 수혜자가 동일한 단체라는 것이 이상하다는 게 A 씨 말의 요지였다.
더 찾아보기로 했다. 놀랍게도 총학생회 집행부는 추첨이든 선착순이든, 심사든 행사의 성격과 무관하게 모든 행사에 집행부 내부 인원의 참여를 허용하고 있었다. ‘저희는 우리 단체라고 더 특혜 주는 것 없이 공정하게 하고 있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린다면 나의 딴지 본능이 또 발동한 것일까. 개개인의 양심을 의지하는 것은 집행부가 학생 사회에서 어떤 위치인지 고려하지 못한 일이다. 공정 기관의 공정성은 양심이 아닌 확립된 기준에 있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더 많은 딴지를 만들어내자. 더 엄격한 잣대를 대보자. 일각에서는 집행부 소속 학생들도 총학생회원인데 너무 큰 희생을 강요하는 것 아니냐 혹은 별것도 아닌 일로 시끄럽게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상세하고, 엄격한 기준이 없다면 지금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얼마든지 남용 가능한 부분이다. 공정성이 훼손될 수 있는 위험성을 보고도 침묵한다면 언론으로서 나태한 것이며 또 학생 사회의 일원으로서 방만한 것이 아닐까.
보도 기사만 언급하고 넘어가면 기획 기사가 섭섭하니, 이것도 한 번 살펴보자. 내 별명이 ‘딴지’였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한 것 치고는 사실 한동대의 공간 배정에 대해 의구심을 느낀 것은 얼마 전 일이다. 학교의 한 단체에서 공간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문득 공간 배정 주체에 대해 궁금해졌다.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을 따로 있고 그 공간을 배정하고 효율을 고민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니.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정말 필요로 하는 부분이 잘 인식될 수 있을까, 효율적인 방법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취재를 시작해, 궁금해하는 부분을 질문해봤다. ‘공간의 용도를 결정하고 범위를 나눌 때, 왜 학생들의 의견을 묻는 절차는 없냐’라고 묻는 질문에 ‘비전문적이니까, 객관적이지 않으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황당하게도 돌아온 대답의 요지는 효율과 형평성 이었다.
어떤 불편함이 있는지, 어떤 긴급한 필요가 있는지 가장 잘 알고 있는 주체는 공간을 사용하며 살아가는 구성원일 것이다. 단순히 주관적이고 이기적인 주장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꽤 구체적이고 명확한 요구들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그 목소리는 곪을 대로 곪은 상처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 목소리들에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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