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했다.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이었다. 임기를 미처 다 채우지 못한 박 전 대통령은 4년 동안 국민들에게 어떤 대통령이었을까. 박근혜 정부가 4년 전 국민에게 약속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 출마 당시 가장 강조했던 것은 ‘국민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행복 10대 공약’을 중심으로 ‘반값 등록금’, ‘노인 기초연금 20만 원 지급’ 등의 공약들을 제시했다. 그가 약속한 대한민국은 청년부터 노인까지 살기 좋은 나라, 비정규직과 장애인도 차별 받지 않는 나라였다. 그러나 현재 청년실업률은 12.5%로 IMF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으며 노인빈곤율은 여전히 48.6%에 달한다.

년 공약, 반쪽짜리 실천

박 전 대통령은 대선 출마 당시 청년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청년 공약에 많은 공을 들였다. 박 전 대통령은 2014년까지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겠다고 약속했고, 2015년 교육부는 반값 등록금 정책이 이행됐다고 발표했다. 정부 장학금 3조 9천억 원과 대학 자체 장학금 3조 천억 원으로 7조 원의 예산을 마련해, 등록금 총액 14조 원(2011년 기준)의 절반을 지원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반값 등록금 정책은 실제 대학 등록금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이 아닌 소득에 따라 차등적으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형태였다. 정부가 소득과 연계해 장학금을 지급하는 방식을 취하자 절반 이상의 학생이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대학교육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2015년 2학기 기준으로 국가장학금을 지급 받는 학생은 전체 재학생의 41.5%에 불과했다.
청년 실업문제를 해결하겠다던 공약은 어떨까? 박근혜 정부는 2015년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대책’을 발표해 2017년까지 향후 3년간 총 2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그중 신규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합해 7만 5천 개였다. 정부는 임금피크제 도입 및 임금체계 개편을 실시해 공공부분에서 8천 명, 민간부문에서 3만 명의 청년들을 신규채용하겠다는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했다. 임금피크제는 일정 연령을 기준으로 임금을 삭감하는 대신 정년을 보장하는 제도다. 정부는 임금피크제로 절감된 인건비가 신규채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은 “청년들의 일자리를 늘리려면 고령자들의 임금을 깎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고령자들의 임금을 깎은 만큼 노동시간이 줄어들어야 청년들의 일자리가 생기는 거다”라고 반박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해당 기업(임금피크제 실시 기업)같은 경우는 고령자들한테 천 원 줄거 오백 원 밖에 안주니까 돈이 남는데 그렇다고 사람이 더 필요해 진 것도 아니니까 청년을 뽑을 리가 별로 없는 거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신규채용을 제외한 나머지 12만 5천 개의 일자리를 ▲청년인턴 ▲직업훈련 ▲*일학습병행제와 같은 단기간 계약직으로 채우겠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이 약속한 청년 일자리 20만 개 중 62.5%가 단기간 계약직으로 이뤄져 있는 셈이다. 인턴제 유형 일자리는 청년들에게 직무 경험과 취업기회를 제공할 수 있으나 고용 안정성 측면에서 한계를 가진다. 청년유니온 김영민 정책팀장은 박근혜 정부의 청년고용정책이 저임금 계약직 일자리 창출에 집중됐다고 지적했다. 김 정책팀장은 “이러한(단기간 계약직 일자리) 정책은 실업률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안 되고 청년들의 고용 안정성도 낮아지게 했다”라며 “이는 취업 시장에 빨리 진입시키겠다는 목표 안에서 세부 정책이 짜졌을 때의 부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제자리 걷는 노인빈곤 문제

노인빈곤은 한국 사회의 오랜 숙제 중 하나다. 박 전 대통령은 대선 당시 노인빈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며, 대표적인 노인 관련 공약으로 기초연금 지급과 일자리 창출 및 급여 인상을 내세웠다. 박근혜 정부는 소득과 관계없이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월 20만 원의 연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기존의 기초노령연금의 급여 수준(2012년 94,600원)이 너무 낮아 노인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주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해당 공약은 박 전 대통령의 당선 이후 대폭 축소됐다. 국가재정 한계를 이유로 지급 범위는 전체 노인에서 소득 하위 70%로 줄어들었고 월 20만 원이었던 지급액도 국민연금과 연계해 차등지급하는 형태로 절충됐다.
노인 관련 공약의 후퇴·축소는 국민연금 가입자와 기초생활수급자에 해당하는 노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해 지급할 경우 국민연금에 더 오래 가입할수록 더 적은 기초연금을 받게 된다. 정부는 국민연금 가입자의 총 공적연금액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기초연금을 깎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초연금이 생겨난 배경은 국민연금의 사각지대 해소하고 줄어드는 국민연금 급여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기초연금 공약을 번복해 기초연금의 취지를 훼손하고 국민연금을 성실히 납입했던 노인들을 오히려 차별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부의 말 바꾸기에 기초생활수급자도 피해를 입었다. 정부가 기초연금을 소득으로 간주해 기초연금 만큼 수급자의 생계비를 삭감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기초생활수급자 1인가구가 생계비로 지급받을 수 최대 금액은 약 49만 원이다. 그런데 기초생활수급자 노인이 기초연금을 타게 될 경우 적게는 10만 원 많게는 20만 원까지 생계비가 깎이게 된다.
노인일자리 관련 공약도 다르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는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연간 5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해 노인 일자리를 늘리고 노인일자리급여도 2배가량 올리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하지만 취임 2주년이 되던 2014년, 박근혜 정부는 노인일자리급여를 기존과 동일하게 20만 원으로 동결시켰다.

유명무실한 비정규직 공약

박 전 대통령은 국민행복 10대 공약에서 비정규직을 향한 공약도 빠뜨리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정규직 전환부터 사회보험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까지 다양한 공약을 제시했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까지 상시·지속적인 업무에 한해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업무의 지속성이 있음에도 계약직 근로자를 채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속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노동개혁 5대 법안은 공약으로부터 역행했다. 5대 법안 중 일부인 ‘기간제근로자법’에 기간제근로자 사용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한다는 조항이 포함된 것이다. 이 조항은 애초 박근혜 정부가 기간제근로자 사용 기간이 종료되는 2년 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한 공약과 상충한다. 계약 기간만 2년에서 4년으로 늘렸을 뿐 기간제근로자의 고용 불안정성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관련 공약 중 공약의 내용 자체가 문제 되는 경우도 있었다. 박근혜 정부는 *사내하도급 근로자가 받는 차별대우를 인정하며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법’(이하 사내하도급법)을 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사내하도급법은 사내하도급 근로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으로 새누리당이 2012년 발의한 바 있다. 그러나 법안 발의 당시 사내하도급법은 사내하청 근로자들의 불법파견을 용인할 위험이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은수미 전 의원은 “불법의 소지가 농후한 사내하도급을 인정하고 몇 가지 보완을 하자는 것은 이미 대법원으로부터도 불법판결을 받은 사내하도급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불법 관행에 손을 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은 전 위원은 사내하도급법이 사내하도급 근로자 비율이 높은 재벌 대기업의 편에 서서 노동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과거에 문제가 됐던 사내하도급법 제정을 대선 공약으로 다시 들고 나왔다. 현재 사내하도급법은 국회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려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사회보험을 보장하는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비정규직 근로자는 실업이나 재해 위험에 쉽게 노출되고 노후대비도 취약하지만 고용보험·국민연금 등 사회보험 가입률은 40% 수준에 불과하다. 이에 박근혜 정부는 월 급여 130만 원 미만의 비정규직 근로자에 한해 고용보험과 국민연금 보험료를 정부에서 100%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 공약은 박 전 대통령 당선 이후 축소됐다. 월 급여 130만 원 미만이었던 지급 기준은 월 140만 원 미만으로 올랐지만 지원율은 100%에서 50%로 줄었다.

갈 길 먼 장애등급제 폐지

장애등급제 폐지는 장애인단체들이 꾸준히 요구하고 있는 사안 중 하나다. 장애등급제는 사람에게 등급을 매긴다는 점에서 비인격적이고, 등급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사회복지 서비스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에 따른 문제점을 인식하고 장애등급제 폐지 및 개선을 약속했다. 당선 후 박 전 대통령은 장애당사자와 학계 관련자들로 구성된 장애판정체계기획단(이하 기획단)을 만들어 장애등급제 폐지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그 결과 장애등급제를 폐지 할 때 중간단계로 *중증·경증의 단순화(이하 중경단순화) 과정을 거치지 않기로 한 조항이 합의됐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합의된 내용을 지키지 않고 행정적 편의를 이유로 중경단순화를 포함한 장애등급제 개편 시범사업을 단행했다. 중경단순화는 기존의 장애등급제(1~6급)를 중증과 경증으로 단순화 했을 뿐 장애인에게 개인별 맞춤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존 등급제와 동일한 한계점을 가진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김선화씨는 “중경단순화 시범 대상자 중 여성 장애인 분이 있었다. 어린 아이들이 세 명이나 있는 분이어서 육아와 같은 서비스가 필요한 분이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을 그냥 활동보조 안에 넣어버리고 그것을 정확히 세분화해서 이 사람이 필요한 서비스가 뭐다 라는 것이 구분이 안되니까. 그런 것(개인별 맞춤형 서비스 지원)들이 전혀 중경단순화 시범사업에는 개선되지 않은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 김정은 일러스트 기자 kimje@hgupress.com

“저는 그동안 정치를 해오면서, 저에게 손해가 되더라도, 한 번 드린 약속은 반드시 지켜왔습니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에는 저의 정치생명을 걸고 싸워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박 전 대통령이 2012년 7월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남긴 말이다. 국민들은 공약이 이행되기를 기다렸지만 박근혜 정부가 제시했던 공약들은 대부분 축소되거나 이행되지 않았다. 그가 4년 전 제시했던 ‘행복한 대한민국’은 아직도 국민에게 멀다. 조기 대선이 다가오면서 여러 후보들이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국민들은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잃어버렸던 공약들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일학습병행제: 산업현장에서 요구하는 실무형 인재를 기르기 위해 기업이 취업을 원하는 청년 등을 학습근로자로 채용하여 기업 현장(또는 학교 등의 교육기관)에서 장기간의 체계적인 교육을 제공하고, 교육훈련을 마친 자의 역량을 국가(또는 해당 산업계)가 평가하여 자격을 인정하는 제도.
*노동개혁 5대 법안: 근로기준법 개정안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고용보험법 개정안,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말한다.
*사내하도급 근로자: 원청업체에서 업무를 도급받은 하청업체가 고용한 근로자로 사내하청 근로자라고도 한다.
*중증·경증의 단순화: 원래 6단계였던 장애등급을 중증(1~3급)과 경증(4~6급) 2단계로 단순화 하는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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