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어둠이 가득한 밤이었다. 방금 눈을 감았다가 뜨기 전까지 말이다. 햇빛이 부스스한 머리를 또렷이 비추지만 상관없다.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고 바쁜 걸음으로 강의실을 향한다. 그런 날들을 복사기에 찍어낸 듯 반복하다 벌써 이번 학기 네 번째 신문으로 인사드린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참 무섭다. 첫 호 잉크 냄새를 맡았던 날이 6주 전이라고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하다. 정신없이 만들어낸 이번 호, 아무쪼록 즐겁게 보셨을지 궁금하다.
역사에 길이 남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도 어느덧 한 달 전 이야기다. 헌정사상 첫 대통령 탄핵이다. 축제라도 열린 듯 기뻐하던 무리, 분노를 서슴없이 드러내던 무리, 어느 곳에 속했든지 박 전 대통령의 파면은 극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린 결정적인 요인은 국민의 ‘배신감’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진행되는 동안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을 향한 신뢰를 하나씩 무너뜨렸다. 국민이 믿고 맡긴 권력을 개인에게 양도하다시피 한 것, 이에 더해 ‘본인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만 줄기차게 외친 것.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한 행동들은 박 전 대통령을 더 큰 위기로 몰아넣었다.
박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뒷북을 요란하게 울리며 조심스레 박 전 대통령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께 선뵌다. 격동의 순간을 함께하지 못해 아쉽고 멋쩍다. 사건에서 한 발짝 멀어진 대신, 사건 자체가 아닌 조금 다른 곳을 바라보고자 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번에 들고 온 ‘박근혜 정부 공약 분석’이다.
국민의 배신감은 최순실 게이트와 그 주변 사건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축소되고 뒤틀린 공약 또한 배신감을 자아낸다. 배신감은 기본적으로 신뢰를 전제로 한다. 적지 않은 국민이 박 전 대통령이 약속한 장밋빛 미래를, 자신은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는 호소를 믿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공약들이 무너졌다.
한동신문은 박근혜 정부가 제시한 ‘약자를 위한 공약’에 초점을 맞췄다. 행복한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 필수적으로 지켜져야 할 공약들이다. 그래서 그 공약들이 잘 지켜졌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독자 여러분이 충분히 판단할 수 있으리라. 지켜지지 않은 공약은 농담만도 못하다. 적어도 농담은 재미라도 있다.
분명 어둠이 가득한 밤이었다. 기어이 밤을 밝힌 것은 촛불이었을까. 촛불이라는 단어 하나에 담지 못할, 더 굉장한 무언가다. 어쨌거나 덕분에 어둠에 덮여있던 진실들이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개중에는 슬쩍 축소해버린 공약처럼 썩 유쾌하지 않은 내용도 더러 있다. 불편하지만 마주하지 않고서는 미래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될 뿐이다.
끝이 아니다. 탄핵은 모든 사건의 종착지가 아니다. 당장 대통령 선거가 다가온다. 여느 날처럼 개헌, 교육 개혁 등 각종 장밋빛 약속들이 흩날린다. 개인적으로 군 복무 기간 축소 공약은 조금 솔깃하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 누가 거짓말하고 누가 말 바꿀 것 같은지 마지막까지 의심해야 한다. 아무리 ‘긍정의 힘’ 넘치는 사람도 이거 하나만큼은 삐뚤게 봐달라. 기껏 밤을 다 새웠더니 또 다음 밤을 새워야 한다면, 맥이 좀 풀리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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