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가 시작됐다.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에 서로 놀라 반가워한다. 못다한 얘기를 나누느라 학교엔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반가운 얼굴들은 하나하나 확인하는 도중, 언듯 보이지 않는 이들이 있다. 행방을 물어도 정확한 대답을 얻기가 힘들다. 그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불가피한 휴학>

"방학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등록금을 마련해보려고 했는데 쉽지가 않네요." 개강 준비에 한창인 다른 학생들과 달리 P양(21, A대)은 서울 명륜동 자취방을 정리하고 부산 고향집으로 내려갔다. “경기 불황에 집안 사정이 어려운 것을 뻔히 알면서 200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달라고 말씀 드리기가 힘들었다.”며 휴학하고 1년 정도 일을 하면서 등록금을 벌 계획을 밝혔다.

9월 말 입대 예정인 L군(19, B대)은 당분간 집에서 어머니를 도우며 지낼 예정이다. "어차피 가야 하는 거라면 남들보다 일찍, 몸이라도 튼튼하게 만들어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는 L군은 자원입대 신청을 한 후 지난 주에 휴학 신청서를 제출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러 가는 것이긴 하지만, 학교에 남아있는 친구들과의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면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군요.” 학교를 떠나며 L군이 남긴 한마디이다.

“저도 이렇게 까지 될 줄은 몰랐어요.” 3번의 학사경고를 받아 제적을 당한 C군(21, C대)은 어쩌다 보니 두 번의 경고를 받았고, 설마 하다가 결국 세 번까지 받게 되다며 막막한 심정을 토로했다. “학업에선 실패했지만 대신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껏 할 수 있었던 점에 대해 후회는 없다.”는 C군은 제적 상태이므로 1년 뒤에나 재입학이 가능한 상태다.

<의도된 휴학>

“솔직히 커다란 충격이네요. 어느 정도는 따라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두려움과 기대를 안고 도전한 영어강의. D군(20, J대)은 영어의 높은 벽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두꺼운 영어 원서와 알아듣기 어려운 강의. 그럼에도 쏟아지는 수많은 과제들은 그를 지치게 만들었고 결국은 영어에 대한 두려움까지 생겨버렸다고 한다. “1년 정도 뉴질랜드에 다녀올까 합니다. 가서 열심히 해봐야지요.” 어학연수를 통해 영어실력과 국제화 감각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보겠다는 D군의 각오이다.

다음 학기에 졸업 예정인 K군(26, E대)은 “청년실업이 40만에 육박하고 있는 시대에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이고, 취업하지 못한 상태로는 졸업 할 수 없다.” 라며 마지막 학기 등록을 미루고 있다. 무엇인가 색다른 것을 위해 고심하던 K군은 행정 고시에 한번 도전해 볼 생각이라며 신림동 고시촌에서 학원과 방을 알아 보고 있는 중이다.

세계 일주가 어렸을 적 꿈이었다는 K양(23, F대)은 한 여행사의 세계일주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2년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 400만원을 지불했다. 휴학을 하는 데다가 비용이 부담스러운 만큼,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끼고 싶다는 K양은 여정의 시작에 앞서 영어와 역사, 지리 등 사전 정보 수집에 열심인 상태다.

“하나님의 도를 따르렵니다.” 1년을 작정하고 인도로 단기 선교를 떠나는 H군(25, F대)은 “하나님과 한 약속을 이제서야 지키게 됐다.”라며 지난 주 학교에 휴학 신청서를 제출했다. 지난 학기, 인도 선교를 위해 따로 영어를 심도 있게 공부했다는 H군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쓰임 받는 도구가 되고 싶다며 나름의 의지를 다졌다. 돌아오는 일요일 서울 영락교회에서 H군을 위한 파송 예배가 있을 예정이다.

나름의 이유를 품고 그들은 학교를 떠났다. 그들이 왜 떠났으며, 어디로 갔으며, 그 곳에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1년의 시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황금 같은 젊은 시절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해 나갈 것인가.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세상으로 나가면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그 시간 속에서, 길 잃었던 자는 길을 찾고, 길을 가던 자는 그 길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사회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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