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가 하루는 이마에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을 하는 석공들에게 다가가서 질문을 했습니다. 한 석공에게 다가가서 묻습니다. 열심히 일하는데 일 하는 것이 재미가 있으십니까? 어떠세요? 그 석공이 불만이 가득 차서 말을 합니다. 이렇게 하루 종일 고되게 일해봤자 먹고 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자 같은 질문을 다른 석공에게 가서 했습니다. 그러자 이 석공은 얼굴에 미소를 띠며 이렇게 말합니다. 나 같은 사람이 이렇게 훌륭한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도구가 되니 큰 영광입니다.
같은 돌로 일을 하는 두 개의 직업이 있습니다 하나는 석공이고 다른 하나는 조각가입니다. 그런데 석공과 조각가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석공은 단순한 노동자입니다. 돌을 쪼개고 깎으며 일을 하여 돈을 버는 노동자입니다. 그러나 똑같은 돌을 가지고 일을 하지만 조각가는 단순한 노동자가 아닙니다. 조각가는 예술가입니다.
그런데 조각가 같은 석공이 있고 석공과 같은 조각가가 있습니다. 조각가 같은 석공은 단순히 돈 때문에 마지못해 하는 일을 하는 자가 아닙니다. 자신이 비록 돌을 쪼개며 일을 하지만 그 일 속에서 기쁨을 누리며 자심의 일에 사명을 가지고 조각가와 같은 마을을 가지고 일 하는 자입니다. 반면에 석공같은 조각가 가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예술가이지만 일을 하는 이유가 단순히 돈 때문에 하는 자입니다.
사람이 같은 일을 한다고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같은 인생을 살아간다고 다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자세로 하는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가? 또는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이해에 따라 일하는 자세,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즉 일, 인생, 인간 등등에 대한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대통령입니다. 그가 존경을 받는 위대한 대통령이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도 그가 이룬 위대한 노예해방의 업적 때문입니다. 사실 그가 노예해방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인간이란 무엇인가? 대통령이란 누구인가? 한 걸음 나아가서 대통령으로서 정치를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것들에 대한 분명한 정체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야,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고 살아야합니다. 정체성에 관하여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두 가지가 있습니다. Doing의 문제와 Being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항상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에 의해서 자신의 삶이 결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What to do? 즉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하나? 행위의 문제이고 다음은 Who am I? 나는 누구인가? 존재의 문제입니다. “Who am I”와 “What to do”,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입니다.
무엇보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정체성을 질문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3장 9절 말씀에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질문하고 계십니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이 모르셔서 질문하시는 것이 아니고 아담에게 정체성을 질문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창세기 16장 8절에 아브라함의 여종 하갈에게 질문하십니다.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진정한 의미에서 성공이 무엇인가? 바쁘게 사는 것과 바르게 사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바르게 사는 것은 단순히 도덕적으로 바르게 사는 것만이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기 이전에, 아니 도적적으로 바르게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쁜 걸음을 잠시 멈추고 우리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한번쯤 점검 하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의 fate(운명) 는 우리들의 faith(믿음)에 의해 결정이 되고, 우리의 믿음은 우리 믿음의 정체성에 의해 결정이 됩니다.

교목실 최정훈 교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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