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대 장애인 배려의 현주소

“시설 기반이 안 돼 있기 때문에 장애를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우리 학교에서 공부할 엄두도 못 내는 게 아닐까.”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정숙희 교수의 말이다. 본지는 2009년 ‘휠체어에 앉아 바라본 한동’이란 르포르타주를 발행한 바 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한동대는 벧엘관, 하용조관, 오석관(도서관) 등 장애인의 편의를 고려해 건물들을 신축하고 기존 건물들의 시설을 개선했다. 2017년 한동대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시각 장애인이 만난 한동대를 체험하기 위해 눈을 가린 채 길을 나섰다.

눈 감고 수업 준비하기

취재일인 3월 2일, 평소보다 조금 일찍 기숙사를 나왔다. 도우미로 대동한 지인이 9시 30분에 맞춰 마중나왔다. 전날 마련한 안대로 눈을 가렸다.
시각 장애인 체험은 은혜관 입구에서 시작됐다. 2교시 수업 전 간단한 필기구를 사기 위해 문구점을 갈 계획이었다. 도우미의 팔을 붙잡고 걷다가 은혜관과 하용조관 사이 주차돼있던 자동차에 부딪혔다. 횡단보도 근방의 자동차들은 장애를 갖고 있지 않은 학생에게도 위험천만하게 느껴졌다.
하용조관 앞 광장으로 진입했다. 한동대에 점자블록이 설치된 몇 안 되는 공간 중 하나다. 점자블록을 따라 걷는 도중 왼쪽 팔이 예상치 못한 장애물에 걸렸다. 생각보다 강하게 부딪혀 팔이 욱신거렸다. 도우미는 점자블록 주변으로 장애물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말했다. 비장애인은 알아서 피했을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 후로 장애물이 하나 더 있었지만 도우미의 경고로 피할 수 있었다. 시각 장애인의 눈이 돼주는 점자블록이지만 온통 장애물에 가려져 있었다.
평소 같으면 1분 이내로 도착할 문구점을 약 3분이 걸려 도착했다. 도착해서도 난관의 연속이었다. 손을 휘둘러 볼펜 판매대를 찾으려 했지만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 도우미가 볼펜 판매대에 손을 얹혀줘 겨우 찾을 수 있었다. 그마저도 점자 표시가 없어서 펜을 분류할 수 없었다. 도우미가 볼펜의 색과 종류를 말해주고 난 후에야 볼펜을 선택해 구입할 수 있었다. 도우미가 공책을 하나 사겠다며 잠시 자리를 비우자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 느껴졌다. 다행히 도우미가 금방 돌아와줘 안심할 수 있었다.

“수업 가기 한번 힘들고만”

계산을 마치고 2교시 수업이 있는 느헤미야홀로 향했다. 같은 길인데도 평소보다 멀게 느껴졌다. 학생회관 앞을 가로지르는 길과 현동홀과 나눔 평봉 필드 사이 통행로에는 방향감각을 잡을 수 있는 장치가 전혀 없었다. 홀로 이곳을 지난다면 위험하겠다 생각하며 조심스레 걸었다. 학관 앞은 자동차가 주행하는 공간이다. 일일 체험 당시 주행하는 차는 없었지만 자동차, 자전거와 사람이 구분되지 않은 하나의 도로로 다녀야 했다. 시각, 혹은 청각 장애인들에게는 사고 위험이 다분한 도로다. 수업 시간에 가까워지자 도우미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기자의 발걸음 또한 빨라지면서 계단에 발을 헛디디기도 했다.
도우미는 교실 앞까지 기자를 데려다주고 돌아갔다. 나중에 확인한 바로는 교실 앞 문패나 이정표에 점자 표식이 없었다. 시각 장애인이 홀로 교실을 찾기란 힘든 일일 것이다. 교실에 들어서 앞쪽 자리를 잡았다. 수업은 마이크로 진행돼 이해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시각 자료를 보지 못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종종 있었다.

식후 산책에 도전하다

수업을 마치고 어느덧 점심시간이 돼 학식을 먹으러 이동했다. 식판을 들고 계산대에 다가갔지만 어떻게 주문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도우미를 급하게 불러 결제를 완료했다. 계산대에 점자 표식이나 음성 안내가 없어 혼자 왔다면 가만히 도움을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음식을 받을 때도 도움 없이 밥을 받기란 불가능했다. 음식을 받으려 손을 뻗었다가 반찬에 파묻히거나 뜨거운 국에 데일 위험을 상상하며 그냥 도우미에게 의존하기로 했다. 힘들게 음식을 받았지만 반찬 위치 파악이 서툴러 속 편히 눈가리고 점심먹기란 어려웠다.
눈을 가리고 돌아다니는 것이 조금 익숙해졌을 무렵, 우산을 지팡이 삼아 스스로 한동대를 누벼봤다. 시각 장애인 보행자 시설이 돼 있지 않은 야외공연장을 기점으로 산책했다. 장애물이 없을 것 같았던 야외공연장이었지만 막상 걸어보니 큰 도전이었다. 주변을 감지하기 위해 지팡이로 바닥을 더듬다 철 구조로 돼 있는 기둥에 정면으로 부딪혔다. 방향을 잡을 수 있는 점자블록이 없었다. 야외공연장을 벗어나 맘스 키친 방면에 있는 길에 들어섰다. 이곳도 보행 장치가 없어 뉴튼홀 앞 잔디 쪽으로 다가가다 밧줄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가볍게 하곤 했던 식후 산책이 이 정도의 도전일 줄 몰랐다.

안대를 벗고 지나왔던 길들을 되짚어봤다. 육안으로 보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길들이었다. 무심코 지나가던 낮은 턱, 다니던 길, 마냥 즐거웠던 점심 식사. 시각적인 요소가 배제되면서 이런 사소한 것들이 모두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정 교수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다른) 사람과 똑같은,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고 욕구가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에게 장애가 없는 사람과 동일한 조건에서 생활하라는 것은 가혹한 요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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