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 문형표 전 이사장이 2월 21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종용한 혐의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하 특검)에 의해 체포됐다. 특검은 이번 합병으로 인해 국민연금이 금전적으로 큰 손해를 입은 반면 삼성은 이득을 취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노후준비를 위해 꼬박꼬박 보험료를 납부했던 국민들은 국민연금에 크게 실망했고, 국민연금의 신뢰도는 곤두박질쳤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직장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노후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8.5%(85명)만이 국민연금으로 노후를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낸 금액만큼 국민연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직장인도 29.1%에 불과했다. 국민이 국민연금을 신뢰하지 못하는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국민의 노후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해소시킬 수 있을까.

국민연금 기금 얼마나 가지고 있나

국민연금은 소득이 있을 때 보험료를 납부하고 나이가 들어 생업에 종사할 수 없어질 경우, 국가가 매월 연금을 지급함으로써 국민들의 노후 생계를 보장하는 제도다. 한국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 기금적립금은 545조 원으로 세계 *연기금 중 3위 규모다. 한국이 이처럼 많은 양의 적립금을 가지게 된 이유는 국민연금이 부분적립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부분적립방식이란 국민연금공단이 일정 금액의 적립금을 쌓아 두고 그것을 주식이나 채권 등 금융상품에 투자해, 그 수익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방법을 말한다.

대기업에 집중된 국민연금 기금 투자

현재 국민연금기금의 절반 이상(63.3%)은 대기업에 투자되고 있다. 국민연금 적립금의 99.8%는 금융부문에 투자되고 있는데, 그중에서 국내채권(51.5%)과 국내주식(18.2%) 순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국민연금기금이 국내주식에 투자한 금액은 2016년 11월 말 기준 99.2조 원이다.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가 공개한 포트폴리오 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에 투자된 비율이 17.6%로 가장 높았고 현대차가 2.6%로 그 뒤를 이었다. 이에 일각에서는 대기업에만 투자가 집중될 경우 국민연금기금운용이 공공성의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김정은 일러스트수습기자 kimje@hgupress.com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신뢰 잃은 국민연금

최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태는 대기업에 대한 집중 투자가 기금운용의 원칙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당시 두 회사의 합병 비율을 두고 논란이 일었지만, 결국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던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짐으로써 2015년 7월 17일 합병이 통과됐다. 전문가들은 합병 비율인 1:0.35(제일모직:삼성물산)에 대해 제일모직의 가치가 실제보다 높게, 삼성물산의 가치는 실제보다 낮게 평가됐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회사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도 합병비율을 문제 삼으며 두 회사의 합병에 반대할 것을 권고했지만, 국민연금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찬성 결정을 내렸다.
대중의 관심을 잃어갔던 두 회사의 합병은 최근 특검의 수사 결과에 의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검은 3월 6일 있었던 최종 수사결과 보고에서 문 전 이사장이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청와대의 지시를 받고 국민연금공단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또한, 특검은 국민연금공단이 당시 합병으로 인해 최소 1,388억 원의 손해를 입었다고 보고했다. 국민연금기금은 국민들이 납부한 보험료로 이루어진 공적 기금이다. 국민연금공단이 제시한 기금운용원칙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운용독립성을 유지해야 하며 특정 기업의 이해관계를 위해 사용될 수 없다. 그러나 이번 합병 사태는 국민들의 노후자금이 삼성의 경영 승계에 이용됐을 가능성을 보여 국민들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투명성·전문성 결여된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태로 인해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이하 기금운용위원회)의 투명성과 전문성도 도마 위에 올랐다. 기금운용위원회는 국민연금기금을 운용·관리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로써 기금운용의 계획이나 평가 같은 중요 사항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현재 기금운용위원회는 기금운용계획의 발의부터 의결까지 모두 보건복지부 장관이 담당하고 있어 독립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지배구조를 살펴보자. 먼저 보건복지부가 기금운용지침을 작성한 후 이에 따라 기금운용계획을 수립한다. 그리고 기금운용위원회는 이 계획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문제는 심의·의결을 담당하는 기금운용위원회의 위원장 역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전반적인 기금운용의 업무가 하나의 주체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의사결정 주체와 감시·평가를 받는 대상이 분리되지 않는 구조는 기금운용위원회의 투명성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 할 수 있다. 시민단체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오건호 공동운영위원장은 이번 삼성물산 합병 건이 ‘기금운용 가버넌스(운용구조)’가 그리 투명하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기금운용위원회의 구성 자체가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많은 금융전문가들이 합병 비율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합병에 찬성했다. 이 결정으로 인해 기금운용위원회가 의결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었고 기금운용위원회 구성원들의 전문성에 대한 문제가 재고됐다. 기금운용위원회는 관련 부처의 차관들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이뤄진 *당연직과 위촉위원 14인으로 구성돼있다. 구성원들 중 과반수 이상이 노동조합 대표나 소비자 단체 대표와 같은 비경제인 출신과 농협중앙회·수협중앙회 상무와 같은 관료들로 이뤄져 있다. 따라서 전문지식과 실무경험을 기반으로 한 의결권을 행사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도형 연구위원은 “지금은 기금운용위원회에 공무원들도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고 사실은 금융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돼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 김정은 일러스트수습기자 kimje@hgupress.com

국민연금, 앞으로의 과제

국민연금이 신뢰를 다시 회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의견을 제기하고 있다. 국민의당 김광수 의원은 2월 16일 ‘국민연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김 의원은 ‘메르스사태’ 초기 대응에 실패해 경질됐던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아무런 징계 없이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취임했던 사실을 지적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김 의원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임명 시 국회의 인사청문을 거칠 것을 주장했다. ‘국민연금기금 주식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를 둬 전문성 있는 주주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투명한 국민연금기금운용을 위해 평가 체계의 역할이 중요하다. 현재 기금운용에 대한 평가는 1년에 1회 국민연금연구원과 외부 전문기관에 의해 이뤄진다. 일각에서는 전문평가기관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순천향대학교 IT 금융경제학과 김용하 교수는 “현재도 평가는 하는데 국민연금 기금이 워낙 규모가 크다 보니 현재 평가가지고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국민연금기금평가단’을 통해 조직을 독립적으로 객관적으로 운영을 하자 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국민연금기금은 공적기금이기 때문에 공익적 목적으로 더 많이 쓰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오 공동운영위원장은 “이게(국민연금기금이) 공적 성격의 기금이니까. 이왕이면 공익적 투자를 좀 더 많이 하면 좋겠다”라며 “넓게 보면 임대주택 같은 복지투자도 포함되고, 일반 기업에 투자하더라도 노동권, 환경권 이런 것들 잘 지키는, 사회 책임성이 높은 기업들을 골라서 사회책임투자를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국민과 함께한 30년 연금과 함께할 100세 시대’. 국민연금공단이 창립 30주년을 맞아 내세운 구호다. 하지만 연금과 함께 100세 시대를 살아갈 국민은 불안하기만 하다. 유비무환이라는데 준비를 해도 걱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번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건으로 인해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국민연금은 국민들이 알뜰살뜰 모은 노후자금이다. 연금의 주권이 보험료를 납부하는 국민에게 있는 만큼 국민연금기금은 기금운용의 원칙에 따라 투명하고 책임감 있게 운용돼야 할 것이다.

*연기금: 연금을 지급하는 원천이 되는 기금.
*당연직: 현재나 직전의 직책으로 인해 투표 과정 없이 추가로 마땅히 가질 수 있는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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