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지승원 교수는 퇴임식을 마친 후 새로운 삶의 장을 펼치기 위해 문을 박차고 나갔다. 법학 교수, 목사와 태권도 사범에서 사회복지까지, 지 교수는 은퇴를 도전적인 기회로 변화시켰다. 그는 불특정한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받아들였다.

화창한 수요일 오후 1시 반. 커피 향이 가득한 그의 오피스에 도착했다. 지 교수는 세월의 흔적이 깊이 베여있는 목소리로 들어오라고 말했다. 은퇴를 기점으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목회 사역을 이어나가는 등 그의 삶은 오히려 더 활발해졌다. 지 교수의 다채로운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 은퇴를 도전의 기회로 변화시킨 지승원 교수.  최용훈 사진기자 choiyh@hgupress.com

은퇴, 정지가 아닌 시작

Q 2015년 2월 정년퇴임 하신 이후 어떤 일들을 하셨나요?
우리 학교 강의는 전임으로 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게 강의를 나오고 있고. 은퇴한 뒤에 그전부터 쭉 해오던 일 중에 교회 일하고 장애인 관련 일이 있었는데 둘 다 조금씩 진전을 하게 돼서 지금은 일 년 반에 걸쳐서 집 옆에 부지를 확보해가지고 자그마한 교회를 하나 신축했어. 전보다 훨씬 편하게 비로소 내 집으로서의 교회를 운영하게 되니까 다행스럽지. 장애인 쪽은 내가 오랫동안 활동을 해 왔는데 은퇴하자마자 그쪽에서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해가지고 다른 일 좀 해 달라고 막연하게 요청을 했어. 그래가지고 내가 온라인 수업을 계속 듣고 1년 정도 강의를 들어서 자격을 취득했다고. 공부를 상당히 하게 됐지.

Q 정년퇴임을 하신지 2년 정도 지났잖아요.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나이 드는 것은 교수님께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교회 쪽은 교단에 소속돼 있으면 정년이 있어요. 근데 나는 원래 감리교에 소속돼 있다 나온 상태이기 때문에 지금은 오히려 학교에 매여 있으면서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들을 좀 더 구체화해서 시작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나이를 개의치 않고 그렇게 나가게 됐어요. 새로운 어떤 일을 벌이는 게 아니고 지난 수십 년간 해온 일 중에 종교간 대화를 위한 연구소가 있어요. 내가 소장으로 있는데, 70년대에 세워진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한, 대구 지역의 철학 교수들이 중심이 된. 내가 삼 대째 소장으로 취임한지 몇 년 돼서 거기를 좀 더 본격화해야 되겠다. 그리고 교회도 터전이 생겼으니까. 기독교 교회로서는 굉장히 모험적인 일이지만 형식적인 대화를 넘어서서 좀 더 심도 있는 화해와 협력을 모색하는 활동을 하게 될 것 같고. 그거는 새파란 젊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 노년에 접어든 사람이 여러 부류의 사람들하고 같이 해 나가야만 하는 일이니까.

1인 多색의 지 교수

Q 법학부 교수님, 태권도 사범님 그리고 목사님이란 직업을 가지고 계세요. 이 세 가지 직업을 가지게 된 이야기가 궁금해요.
나는 목회자 쪽이 내 운명인 걸로 자각하게 되는 날이 와서, 그것을 무리 없이 수행하기 위해 법학을 계속해 가면서 법철학 쪽으로 전공을 정하고, 신학 하고 접목시키는 쪽이 바람직하다 해서 공부를 계속했지. 목회자의 길은 그때 이미 확정돼 있어서 그냥 그대로 갔고, 학자의 길은 부차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그것에 집착하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뒀어. 무술은 누구나 다 궁금해하게 생각하는 거지만, 목사 중에도 축구 좋아하는 사람, 테니스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또 이상한 것 같지가 않아. 무술도 좋아했고 산에 가는 것도 좋아했고 그래서 그랬는데. 무술은 좋은 선생을 만난 덕분에 오늘날까지 보존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게 됐고. 내가 YMCA에서 14년간 사범으로 있었지만, 대학 강당에서 과목으로 가르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는데. 그런 게 섭리인가 생각도 들고.

Q 새로운 것들을 많이 시작하셨잖아요. 태권도, 법, 목회 그리고 최근에 사회복지까지 시작하셨는데 도전이 많이 있었을 것 같아요.

도전이라기보다 뭔가 그냥 나에게 다가와서 나는 그것을 수용하고 했을 뿐이지. 때로는 이게 다인가 싶은 때가 있을 때 뭔가 다른 게 다가오고 하면 거기에 또 그 새로운 것을 할 때도 과거에 어떤 이것을 수용할 만한 어떤 계기들이 과거에 찾아보면 있어요. 그래서 의심 없이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고. 무술 같은 것은 워낙 하고 싶었던 것이니까. 좋은 선생이 계실 때 그냥 확 달려가서 끝까지 배운 것이다. 지금 뭐 섭리다, 예정이다 말하기 전에. 어떻게 보면 인간은 워낙 얽혀있는 존재니까, 관계 속에. 굳이 본인이 끊어내고 안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가능하면 호기심이 끌리면 그냥 하는 타입이에요.

지 교수의 ‘받아들임’

Q 하고 싶은 게 많으면 선택하는 것도 힘들 거 같은데, 교수님께서는 청년 시절 미래에 대한 고민이 있었나요?
근본적으로는 내가 원래 청년 시기 때 종교적 배경이 불교였거든. 어떻게 해서 그 좋은 불교에서부터 이렇게 기독교인이 됐냐, 그거는 내가 명확하게 얘기할 수 있어. 그때 지금 여기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될지를 가르쳐 줄 수 없었다는 것. 불교는 시간이 대게 영겁에 이르거든. 지금 여기에서 하는 것은 깨치는 것밖에는 의미가 없는 건데. 지금 나는 여기서 많은 존재들 인간관계 속에 얽혀있는 것으로써 뭔가를 해야 되는 사람인데. 거기서는 도무지 뭘 찾아내기가 힘들었어요. 근데 성직자는 좀 다른 의미가 있어요. 나는 금방 이해할 수 있었어요. 아 이게 운명이다. 그 다음부터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어. 어려운 점은 있었거든. 부모님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거든. 나는 끝까지 내 길 갔고 그렇게 한 것이죠.

Q 요즘 청년들이 직업에 대한 고민이 많잖아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내 모토는 ‘닥치는 대로 일한다.’ 어떤 것이든, 직업(job)이든 다른 일이든 간에 나한테 다가왔으니까. 그 다음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하다 보면 끝까지 갔어요. 다른 것도 나는 똑같은 입장이에요. 일은 닥쳐, 어떻게든 처리는 해야 되죠? 근데 그게 한번 처리하면 끝나는 일 말고 하나의 운명처럼, 직업처럼 다가오는 것들이 있다니까. 그럼 그것은 그냥 하는 거예요. 난 사람 마음이 하나님께 향해 있으면 반드시 일은 주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려고 주기도문에서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일을 안 주시겠어요? 어떤 일이든 간에 닥치는 대로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흘러가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Q 말씀 중에 운명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하셨는데, 운명이란 단어는 교수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동양 사람들은 그냥 운명, 서양 사람들도 그러대. 영화에서 보면 데스티니(destiny).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손길 이런 거라고 볼 수 있는데 하나님의 손길이란 것도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이잖아. 이 말을 위해서 다른 것을 다 끼워 맞추고(arrange) 그러잖아. 우리가 정말 짐작도 할 수 없는 한량 없는 그 손길, 미물 하나까지 살피시는 분의 그 섭리 안에 존재하니까, 누구나 다. 그래서 자유의 영역도 있고. 섭리가 다 예정이면 인간의 자유가 없어요. 자유 없으면 창의력도 없다. 그러니까 인간이 자유롭게 형상하는 게 굉장히 많아요. 내가 목사 안 되겠다고 그러면 안 되는 거지 뭐. 본인이 거부하면 안 될 거예요. 인간의 그런 영역은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주변이 잠잠하게 있다가도 마음이 동해서 ‘쟤를 좀 도와야겠다’ 이런 사람들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고. 그거는 하나님께서 예정했다고 생각하면 안 돼. 그건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 영역에서 인간이 스스로 뭔가를 했을 때 그렇게 섭리가 이루어지고 하는 거죠.

Q 지금은 계속 학교에 나오고 계시잖아요. 아마도 언젠가는 떠나게 되실 텐데, 어떤 모습으로 학생들에게 남고 싶으신가요?
그냥 어느 날 사라지겠지. 매년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고 내가 알던 학생들도 다 졸업하고 나갔잖아. 그럼 2, 3년 지나서 사라지면 진짜 다 기억에서 사라지지. 나하고 같이 있을 때를 기억하는 아이들에게만 기억될 테고. 그 다음은 다 간접적으로만 기억되겠지, ‘옛날에 이런 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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