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하는 말이다’고들 해도, 선택에 포기가 따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동대 입학을 선택한 학생은 다른 대학에 들어갈 기회를 포기했을 것이다. 실은 별로 거창한 일도 아닌 게, 야식을 먹을 때조차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포기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포기가 늘 나쁜 것은 아니다. 주체적인 선택에 이은 포기는 오히려 긍정적이다. 더 큰 목적과 가치를 이루기 위해 ‘아름다운 포기’가 종종 요구되기 때문이다.
짧은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들어선 학생들도 선택과 포기를 마주했다. 이번 학기 완공된 하용조관 입주에 따른 것이다. 시작에 앞서 RC 쿼터제가 살짝 걸리긴 했지만, 몇 차례 공지된 사실이니 일단 가볍게 넘어간다. 그런데 뭔가가 또 요구된다. 가구 수급이 덜 됐으니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부탁이다. 완료를 약속한 2월 26일을 기다리며, 학생들은 잠시 편의를 포기했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면 해결될 것 같던 가구 수급 문제는 개강 후 일주일이 지나서야 겨우 수습됐다. 넵스와 SPC는 약속을 번복했다. 처음에 하룻밤 숙면을 포기했던 학생들은 점점 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쉴 곳과 공부할 곳, 다음으로 학생에게 요구된 건 살 권리에 대한 포기였다.
문제는 포기만 있고 선택이 없다는 것이다. 일련의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주어진 건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상황, 환경이 아니라 극단적인 양자택일의 선택지였다. 가구가 수급될 때까지 한없이 기다리거나, 계획에도 없던 외부거주나 휴학을 결정하는 것이다.
선택권 없는 포기는 인내로 포장됐다. 어처구니없는 상황 앞에 한동대가 한 말은 고작 ‘미안하지만 조금만 참아달라’는 것이었다. 2월 26일 올라온 조원철 학생처장의 공지는 책임이나 다짐이 아닌 “이러한 어려움이 있을 때에 서로 격려하며 극복해 나가는 성숙함만이 우리 공동체를 건강하게 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로 끝났다. 학생의 권리는 고생한 직원들과 리더십을 생각해달라는 당부에 묻혔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고 SPC는 한 학기 입주금/한 학기 입주일x가구 설치 지연일을 계산한 ‘보상금’을 제시했다. 보상의 사전적 의미는 ‘남에게 끼친 손해를 갚음’이다. 학생이 입은 손해가 무엇인지 알고 이를 ‘보상금’이라 했을지, 한동대는 이 ‘보상금’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궁금하다.
하용조관 가구 미수급은 어쩌면 단순한 해프닝일 수 있다. 그때 내가 잠시 불편했노라, 몇 년 뒤 후배에게 들려줄 사소한 추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선택권도 없이 당연하게 포기된 권리가 고귀한 희생으로 미화될까 두렵다. 사태에 대한 한동대의 한없이 가벼운 태도가 ‘학생들의 성숙함’으로 덮어질까 두렵다. 일주일, 당연한 권리가 포기됐다. 하루는 일주일이, 일주일은 얼마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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