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리는 마음으로 썼다. 하고 싶은 말을 실컷 쏟아내 시원한 속마음 한켠에, ‘어떻게 읽힐까’ 두려움도 있다. 생활관 화장실에 부착된 ‘한동대 내 여성혐오 유무’를 묻는 설문지에는 내가 원했던 답변들이 수두룩했다. ‘선동하지 말라’는 의견도 감사히 받았고, 쉽게 꺼내지 못했을 피해 사례도 고맙게 받았다. 여성들의 목소리는 큰 울림을 줬다. 여성혐오 실태를 고발해준 남성들의 목소리도 큰 힘이 됐다. 여성혐오라는 주제로 기사를 쓰는 과정은 어려웠지만, 이상하게 신이 났다. 취재에 취재를 더할수록 더욱이 한동대학교에 필요한 주제임을 확신했다.
여성혐오가 있다는 사실은 쉽게 인정할 수 있었다. 마주하기 어려웠던 진실은 여성인 나도 여성혐오를 하고 있었다는 것과 그것을 인정하는 과정이었다. 부끄럽지만 나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여성성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며 살아왔다. 예쁜 여자를 동경하고, 조신하면서도 센스있는 여자가 되는 것이 여자로 살아남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비판 없이 미디어를 수용한 전형적인 피해자였으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보고도 충분히 지나칠 수 있는 방관자였다. 하지만 원인 모를 불편함은 항상 존재했다. 만들어진 여성의 모습을 기준 삼고 보니, 나 본연의 모습은 부정되고 있었다. 사회에서 가치를 두는 여성이 될 수 없다는 낙심과 ‘내가 왜 그렇게 돼야 해?’ 하는 불편함이 동시에 찾아왔다. 여성혐오는 주변에 의한 내 모습의 불편한 진실이었다.
화장실 설문지 속 빼곡히 적힌 답변들은 한동대 여성혐오 실태를 알리는 중요한 지표가 됐다. 봇물 터지듯 나오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왜 여태 동안 물어보지 않았는가’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여성혐오는 아침에 기숙사를 나설 때부터 일과를 마무리할 때까지 여성들을 따라다녔다. ‘학기 초부터 왜 이러고 다녀’, ‘여자가 드세면 남자들이 안 좋아해’ 익숙하면서도, 불편한 언어다. 남성중심 사회가 정의하는 여성에 관한 언어다. 프랑스의 철학자 뤼스 이리가레는 ‘남성적이라는 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라는 질문에 ‘당연하지요. 세상에 그것 밖에 없으니까요.’ 라고 답했다. 사회에서 여성은 대상화 되고 객체화 된다. 그리고 사회가 합의한 여성성을 강요하는 폭력은 수십 번씩 자행된다.
여성혐오의 대책 중 하나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여성주의, ‘페미니즘’이 손꼽힌다. 여성학 책을 읽으면서 페미니즘을 만나게 된 나는 내게 일어난 일들을 찬찬히 돌아봤다. 그리고 그 안에서 생겼던 수많은 질문에 답을 할 수 있게 됐다. 나는 예민한 것이 아니었다. 나를 불편하게 하던 수많은 언어가 이미 오류였을 뿐이다. <페미니즘의 도전>의 저자 정희진 씨는 여성주의에 대해 ‘여성주의는 우리를 고민하게 한다. 남성 중심적 언어는 갈등 없이 수용되지만, 여성주의는 기존의 나와 충돌하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한동대학교에는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더 많은 페미니스트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고통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기사와 함께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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