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포털사이트에 ‘청년 정치 관심’을 검색하면 ‘청년 정치 무관심으로 검색하시겠습니까’라는 안내가 뜬다. 포털사이트조차도 대한민국 청년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에 착잡한 마음이 든다. 기성세대들은 ‘청년이 미래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청년들이 장차 나라를 이끌어 갈 주역이라는 뜻이다. 과거부터 청년들은 나라의 미래로서 정치의 주체가 돼 더 나은 나라를 만들고 앞장섰었다. 앞으로 자신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미래의 미래인 자녀세대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그렇게 그 청년들은 기성세대가 됐고, 과거 청년들이 일궈냈던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비교적 안정된 사회, 현대화가 진행되면서 생긴 개인주의, 청년을 배려하지 않는 정치권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청년들은 정치에 관심을 거뒀다. 커져가는 정치에 대한 불신과 관심을 가져도 나아지는게 없는 현실에 대한 분노로 나라가 미래라고 부르는 청년들은 주어진 현재의 삶을 살아갔다. 나라를 이끌기보다는 오늘의 끼니를, 당장의 취업을 걱정하면서 말이다.
그 세대들 앞에 언제부터인가 정치적으로 외면할 수 없는 사건들이 일어났고, 잊고 있던 공동체성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년, 그 사건들의 정점을 찍는 ‘최순실 게이트’라는 큰 사건이 터졌다. 이에 청년들이 고개를 돌려 반응하기 시작했다.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었고, 대통령의 탄핵을 외쳤다. 청년들의 흐름을 파악한 정치인들은 청년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취업과 군 복무와 관련된 공약들을 앞다투어 청년을 위한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우리는 공약들이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을 갖기보단 우리가 지속적으로 지켜본다면 지켜질 것이라는 확신으로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과거의 청년들이 미래세대를 위해 일어났던 것처럼 대한민국의 미래인 우리는 우리를 위해, 그리고 그다음 미래세대를 위해 어떤 자세를 보여야 할지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종이에 무언가를 그리기 위해서는 점을 찍고 시작해야 한다. 그 점이 이어지면 선이 되고 그림이 된다. 우리는 이미 점을 찍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계속해서 선을 그어야 한다. 그렇게 선을 긋다 보면 우리가 원하는 그림,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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