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자신의 몸뚱아리를 태우며 / 뜨근뜨근한 아랫목을 만들던 / 저 연탄재를 누가 함부로 발로 찰 수 있는가? •••

안도현 시인의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을 읽으면 자신의 한 몸 희생해 우리네의 겨울을 나는 것을 돕는 불타는 연탄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과거 우리의 아랫목을 책임져주던 연탄은 이제 그 모습이 많이 보이진 않지만 아직 많은 이웃의 겨울나기를 돕는다. 우리 가까이에도 이웃들에게 연탄 나눔으로 따뜻한 손길을 전하는 이들이 있다. 포항 흥해읍에 위치한 ‘포항연탄은행’을 따라 연탄 나눔 여정을 떠나봤다.

연탄은행에서는 한 장에 573원, 무게는 3.65kg인 연탄에 연탄 한 장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 주변 이웃들에게 따뜻한 겨울을 선물하는 연탄처럼 따뜻한 연탄은행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전국으로 뻗어나간 연탄은행

연탄은행이 한국에 처음 생겨난 것은 허기복 목사의 ‘밥상공동체’로부터다. 허 목사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아가겠다’는 신학생 시절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1998년 비영리단체 밥상공동체를 설립했다고 한다. 밥상공동체는 2002년부터 사회복지법인 ‘밥상공동체복지재단•연탄은행(이하 연탄은행)’이라는 이름으로 연탄은행, 종합사회복지관, 노숙인자활시설, 지역아동센터 운영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연탄은행은 서울연탄은행을 본부로 전국에 31개 연탄은행을 두고 있다. 연탄은행은 ‘연탄을 저장하는 은행’이라는 뜻으로 지어졌다. 후원자들의 기부로 얻은 연탄을 연탄은행 저장고에 차곡차곡 쌓아 저장했다가 연탄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전달한다.

포항 연탄은 우리가 책임진다

포항에도 연탄은행이 있다. 포항연탄은행은 죽천 바닷가에 위치한 ‘그루터기 교회’의 유호범 목사에 의해 2014년 문을 열었다. 유 목사는 경북 영주에서 영주연탄은행을 먼저 시작했다. 지역과 이웃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영주연탄은행을 연 것이다. 이후 포항으로 목회 사역지를 옮기게 된 유 목사는 포항연탄은행을 열며 그 활동을 이어왔다고 한다. 

▲ 연탄 나눔을 받는 집 주소 표지판에 붙어있는 연탄은행 로고. 김운영 사진기자 kimwy@hgupress.com

포항연탄은행의 연탄 나눔은 후원자들과 봉사자들을 통해 이뤄진다. 포항연탄은행을 후원하는 사람들은 교회, 기업, 개인 후원 등 다양하다. 연탄 나눔은 주로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이뤄진다. 연간 평균 8만 장에 이르는 포항연탄은행의 연탄은 후원자들과 봉사자들의 여러 손길들이 모아져 이웃에게 전달된다. 포항연탄은행은 지역에 연탄을 사용하는 가정을 사전조사, 심의 후 연탄 나눔 대상자를 선정한다. 연탄 나눔을 받는 집의 집 주소 표지판에는 연탄은행 CI(Corporate Identity)로고가 붙는다. 이 로고 속 노란 동그라미는 어려운 이웃과 연탄을 상징한다. 밑의 빨간 곡선은 받들고 섬기며, 더불어 함께하는 세상을 뜻한다. 이 로고가 집 주소 표지판에 붙여지는 것은 연탄은행이 지속적인 후원을 이어가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탄 나눔 대상자로 선정된 가정은 연탄을 사용하기 시작하는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연탄을 후원받는다. 연탄 나눔 대상자로 선정된 가정이 연탄이 다 떨어지기 보름 전쯤 포항연탄은행에 연락을 취하면, 포항연탄은행에서 자원봉사자를 모집한 후 연탄 나눔 계획을 세운다. 포항연탄은행은이렇게 지속적인 연탄 나눔을 이어간다.

다양한 손길로 이뤄지는 연탄 나눔

▲ 오르막길 위로 연탄을 나르고 있는 봉사자들. 김운영 사진기자 kimwy@hgupress.com

11월 16일에는 포항 중앙동에 있는 11가구에 각각 250장씩 총 2,750장의 연탄 나눔이 진행됐다. 아침 10시, 포항연탄은행 자원봉사자 23명이 포항 중앙동 롯데백화점 앞에 모였다. 봉사자 23명은 두 팀으로 나뉘어 연탄을 배달했다. 봉사자들이 하는 일은 연탄은행에서 트럭으로 가져온 연탄을 집 안으로 들여놓는 것이었다. 맨 앞사람이 연탄을 들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전달하면 줄지어 서 있는 사람들이 옆으로 전달한다. 연탄 나눔 봉사를 할 때는 옆 사람과의 합이 중요하다. 연탄을 전달할 때는 한 장 또는 두 장씩 전달한다. 연탄 한 장은 3.65kg, 두 장이면 대략 7kg에 달한다. 계속해서 연탄을 들고 있으면 팔이 아프기 마련이다. 빠르게 연탄을 전달받아 옆 사람에게 넘겨 팔이 아프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연탄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옆 사람에게 연탄을 잘 전달해야 한다. 이렇게 연탄을 전달하면 마지막 사람은 연탄을 때는 곳에 연탄을 차곡차곡 쌓는다. 다 같은 역할로 연탄을 나르는 것 같지만, 더욱 고된 역할이 있다. 유 목사는 “맨 앞에 있는 사람과 맨 끝에 사람이 가장 힘들다”라고 말했다. 맨 앞사람은 계속해서 허리를 수그렸다 폈다가 하면서 연탄을 집어 나르고, 마지막 사람은 연탄이 떨어지지 않게 잘 쌓아놓는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봉사자들은 맨 앞과 마지막 사람을 바꿔가면서 봉사를 이어간다. 연탄 나눔 대상자는 독거노인, 소녀 가장, 기초생활수급자 가족 등이었다. 올해 처음 포항연탄은행으로부터 후원을 받게 된 김용덕(81) 씨는 올봄에 연탄보일러마저 고장이 나서 그 이후 계속 연탄을 때지 못한 채 지냈다고 한다. 이에 포항연탄은행은 연탄 나눔뿐 아니라 연탄보일러를 설치해 김 씨를 도왔다. 김 씨는 “올해 초봄에 연탄보일러까지 고장이 나고, 연탄이 없었으면 올해 추웠을 텐데, 연탄과 보일러를 기부해준 연탄은행에 감사한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 올해 처음 연탄 후원을 받게 된 김용덕 씨(좌)와 유호범 목사(우). 김운영 사진기자 kimwy@hgupress.com


추운 겨울을 나는 사람들
 
잠깐 쉬는 시간, 이 날 봉사에 참여한 허정화(46) 씨와도 이야기를 나눠봤다. 허 씨는 이날 봉사를 하면서 느낀 소감을 묻는 질문에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는 사는 분들이 많다는 것에 가슴이 아프고 뿌듯함보다는 가슴 한 켠이 더 아리는 기억이 남는다”라고 답했다. 이렇게 2시간가량 진행된 연탄 봉사는 갈라졌던 두 팀이 마지막 집에서 다시 만나며 끝이 났다.

▲ 김용덕 씨 집에 도착한 연탄들. 김운영 사진기자 kimwy@hgupress.com

연탄은행이 2014년 5월부터 네 달 동안 전국 연탄배달업자와 연탄사용 가구 등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전국에서 16만 8,373가구가 연탄을 사용한다. 이들 중 81%는 기초수급자 또는 차상위계층이다.
올해는 연탄 나눔이 평소보다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전년도에 비해 연탄값이 오르고 기부도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기존 500원이었던 연탄값이 지난 10월 4일 573원으로 14.6%가 인상됐다. 연탄값은 배송료까지 포함하게 되면 실제론 600원 정도가 된다. 고지대와 같은 곳의 연탄값은 배송비를 포함해 700원~800원까지 오른다. 연탄값이 이전보다 올라 후원할 수 있는 연탄이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고 한다. 더불어 연탄 기부도 전년도에 비해 매우 줄어든 실정이다. 연탄은행은 김영란법의 시행으로 인한 기업의 기부회피,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사회 분위기를 원인으로 꼽는다. 서울연탄은행 신미애 국장은 “김영란법은 기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기업가에서는 기부를 회피하는 경향이 크다. 또한 최근 최순실 게이트와 같은 사회상황으로 사람들이 기부에 대해 회의적인 마음이 큰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국기부문화연구소가 병원과 재단의 모금 담당자 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결과에서도 응답자의 70%가 '최순실 게이트가 기부에 부정적 영향을 줬다'고 답했다. 올해 연탄 나눔 목표는 15만 장이라는 유 목사도 “작년에 비해 후원 문의를 묻는 전화가 많이 줄었다”라며 “많은 후원과 봉사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포항연탄은행은 연탄이 필요한 이들뿐 아니라 겨울을 나기에 다른 도움이 필요한 다른 이들도 돕는다. 유 목사는 “연탄을 때는 집뿐 아니라 기름보일러를 때는 집 중에도 도움이 필요한 집들이 있다”라고 말했다. 기름값을 아끼기 위해 난방을 하지 않아 추운 겨울을 보내는 가정이 많다는 것이다. 유 목사는 “우리가 연탄이 필요한 집에만 기부를 할 것이 아니라 난방유를 공급하는 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올해부터 난방유 나눔을 계획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올해로 3년째 연탄은행을 운영하고 있는 유 목사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후원자가 있는지 물었다. 유 목사는 2014년 겨울 크리스마스에 찾아온 만삭의 임산부와 그녀의 남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부부는 결혼 후 하루에 천 원씩 모아 1년이 되는 날 36만 5천원을 기부하고 갔다고 한다. 이듬해에는 태어난 아이와 함께 찾아와 다시 36만 5천원을 기부했다고 한다. 그런 마음들이 가장 많이 기억에 남는다며 유 목사는 웃음을 보였다. 어느새 성큼 다가온 추운 겨울, 이웃에 대한 작은 관심은 그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한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