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애들은 몰라도 돼”라는 말은 지긋지긋했다. 어른들은 다들 속닥속닥 비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주변 일이라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고 싶어 했지만, 궁금증이 풀릴 만큼 자세히 이야기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한동안 앞만 보고 달리라는 어른들의 말을 따라가다 보니 옆을 쳐다볼 새도 없이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어른이 돼 있었다. 기대를 많이 한 탓일까. 무엇이든 말해줄 것 같던 세상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20여 년간 한동을 지킨 매점이 사라지고 편의점이 들어온다는 소리가 들린다. 다른 기사를 준비하던 중이었지만 이것저것 궁금한 마음에 복지회의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찾아간 복지회는 학생들이 한참 편의점을 이야기하고 설문조사를 할 동안 ‘공식적으로 들은 바는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복지회 매점이 없어지는 소식을 어떻게 복지회가 몰랐던 걸까. 그때부터 본격적인 취재를 시작했다. 12일의 취재 기간 동안 거짓말 조금 더 보태 ‘아직 확정된 것 없다’는 말만 오십번은 들은 것 같다. 학생의 편익만을 위해 일하신다던 분들은 저마다의 입장을 표명했지만, 궁금증만 커질 뿐 누구도 속 시원히 말해주지 않았다. 학교의 소식을 접한 매점 납품업체는 편의점 입점에 반발하는 기사를 내고 포항 여기저기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아주 잠깐이지만 매점 직원들은 계산대에 답답한 심경을 표현한 글을 적어 붙였다. 평의회 회의에 선 총학생회장은 학교의 인사와 경영 문제에 총학이 어디까지 학생들의 의견을 업고 가야하는지, 그들의 역할을 되물었다.
공식적인 학교의 입장을 듣기 위해 기획처를 찾았다. 역시 학교와 학생의 ‘편익’을 이야기했다. 편익이 과연 무엇이냐 묻자, 효율적인 관리 시스템과 사람들의 고용을 최대한 줄일 수 있음을 예로 들었다. 비교적 쉽게 줄일 수 있는 고용인의 숫자와 학교가 떠안게 될 적자의 가능성을 줄여 효율적인 학교 운영 방안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어딘가 말을 아끼는 듯한 표정과 말투는 어린 시절 느꼈던 ‘어른들의 이야기’와 다름이 없었다. 취재 과정 중 매점 직원들의 고용승계에 대한 부분을 궁금해하자 학교가 충분히 검토하니 학생들은 신경 쓰지 말라는 답변을 얻기도 했다.
큰 소음을 만들지 않으려던 기획처와 정확한 상황을 듣지 못해 답답해 했던 복지회와의 문제는 결국 소통 문제였다. 학교는 어느 정도 학생 사회의 여론을 살펴 매점과 편의점 동시운영이라는 해결책 아닌 해결책을 들고 나설 것이다. 매점 혹은 편의점 운영 이 두 가지만 생각했던 학교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는 학생들이 궁금해하고 아쉬워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체감하고 있을까. 편의점 입점을 반대하는 659명의 학생들은 과연 어떤 이유로 편의점 입점을 반대했던 것일까. 효율적인 학교의 운영을 위해 누군가의 목소리는 무시해도 된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인 걸까. 그리고 그것이 정말 애초부터 당연한 이야기였을까.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내가 몰라도 됐던 ‘어른들의 이야기’는, 절대 어른들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나의 이야기였으며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이 사회의 이야기였다. 세상에 몰라도 되는 것은 없다. 어릴 적 내가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듯, 누군가는 들을 수 없던 이야기를 꼭 알리고야 마는 것. 그것이 지금 이곳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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