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떠 폼클렌징으로 세수를 하고 치약을 짜서 양치질을 한다. 로션과 화장품을 얼굴에 바르고 밖을 나선다. 우리는 하루를 화학물질이 들어있는 제품과 함께 시작하곤 한다. 그런데 일명 ‘옥시’, ‘메디안’ 사건으로 삶 속에서 밀접하게 사용되는 화학물질제품 속 성분이 우리 몸에 유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대한민국에는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감의 확산으로 화학물질 공포증을 뜻하는 신조어 ‘케미포비아’부터 화학물질을 기피하는 소비자층 ‘노케미족’까지 등장했다. 한국을 뒤덮은 케미포비아의 현 주소를 짚어봤다.

옥시와 메디안 속 화학물질 논란으로 인한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여러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이로써 화학물질에 대한 우려는 해소될 수 있을까. 가습기 살균제와 치약의 유해성분으로 논란이 됐던 두 사건을 통해 한국의 케미포비아를 살펴봤다.

▲ 일상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생활화학제품. 최용훈 사진기자.

케미포비아 등장시킨 옥시와 메디안 사태

지난봄, 대한민국은 일명 ‘옥시’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옥시 사건은 생활용품 제조 및 판매업체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에서 판매한 가습기 살균제에 들어있던 유해성분으로 239명의 사망자와 1,528명의 폐 질환 환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2011년 4월부터 원인불명의 폐 질환 사망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이에 질병관리본부는 역학조사를 실시했다. 이후 2011년 8월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원인 미상의 폐 손상이 가습기 살균제로 추정된다는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 11월 역학조사와 동물흡입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 수거에 나섰다. 2012년 1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제품 제조ㆍ유통 업체를 상대로 민ㆍ형사 소송을 시작했고, 2012년 2월에 동물 실험 결과로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된 PHMG 인산염과 PGH의 독성이 확인됐다. 가습기 살균제의 위해성이 확인되고 제품 수거가 이뤄졌음에도 제조사 옥시 등에는 과징금 5,200만 원 부과가 전부였다. 가습기 살균제가 안전하다고 허위로 표시했다는 이유였다. 이에 2012년 8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은 옥시 등의 제조사에 형사고발을 진행했으나, 2013년 2월 검찰은 피해조사 결과가 나와야 한다며 기소 중지했다. 정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피해조사는 피해자 접수를 받은 후 조사 과정을 거쳐 판정을 완료해 피해자와 사망자 수를 파악하고 있다. 현재는 2016년 4월 25일부터 2016년 8월 31일 접수 완료된 4차 피해자 접수를 조사 중이다. 1~4차 피해 접수결과 모두 4,893건의 사례가 접수됐으며, 사망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례는 1,012건이다. (10월 26일 기준) 10월 2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기소된 신현우 전 옥시 대표 등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 공판에서 옥시 한국법인 대표 아티 샤프달(Ata Safdar) 씨에 대한 심문이 진행됐다. 샤프달 씨는 검찰이 “제품 라벨에 써 있는 ‘인체에 무해’, ‘아이에게도 안심’이라는 문구가 허위라는 사실을 인정하냐”고 묻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했다. 살균제 원료로 쓰인 PHMG 인산염에 독성이 있어 폐 손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또한, 샤프달 씨는 피해자에게 10억 원까지 배상하고 평생 의료를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옥시 사건이 진상규명에 돌입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또다시 화학물질로 논란이 벌어졌다. 9월 27일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정미 의원은 ㈜아모레퍼시픽(이하 아모레퍼시픽)의 치약 11종에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 성분 중 하나였던 *CMITㆍMIT가 함유됐다고 발표했다. 이 의원은 아모레퍼시픽이 미국 식품의약국(Food and Drug Administration, FDA)에 일반의약품으로 인정받기 위해 제출한 자료에서 이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9월 26일 아모레퍼시픽의 치약 11종을 회수 조치했다. 아모레퍼시픽은 9월 27일 공식사과문을 발표했고 9월 28일부터 치약 소지자를 대상으로 교환•환불조치를 시행 중이다. CMITㆍMIT는 화학제품 변질을 막기 위해 보존제와 살균제의 용도로 많이 쓰이는 물질이다. 한국에서는 치약에 넣으면 안 되는 미허가 물질로 규정돼 있다. 소비자는 미허가 물질이 치약 속에 들어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식약처에 불안과 비난의 목소리를 표출했다. 소비자 황 모 씨 등 14명은 9월 28일 식약처 손문기 식품의약품안전처장과 담당 공무원,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회장 및 심상배 사장, 홍창식 ㈜미원상사 사장 등을 서울중앙지검에 형사고발 했다. 황 씨 등 14명은 피고자들에 ▲약사법 위반 ▲형법상 직무유기 등의 혐의를 주장했다. 국민보건에 위해를 줬거나 줄 염려가 있는 의약품 등을 제조•수입•판매를 금하는 현행 약사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또한, 10월 5일 소비자 정 모 씨 등 315명은 아모레퍼시픽과 원료공급사 ㈜미원상사를 상대로 서울중앙지검에 1인당 1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 사태에 대해 식약처는 “미국에서는 치약에 들어가는 CMITㆍMIT 함유량에 대해 특별한 기준치가 없으며, 유럽은 15ppm 기준치 아래로 허용한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회수된 아모레퍼시픽 치약제품의 경우 CMITㆍMIT가 0.0044ppm가 검출돼 인체에 무해하다는 것이다.


메디안 사건 뒤에 남는 의문점

식약처와 아모레퍼시픽의 사과와 해명 뒤에 남는 의문점이 제기되고 있다. 극미량이기 때문에 인체에 무해하면 왜 회수 조치가 이뤄지는 것인지, 무해하다는 물질이 왜 식약처 미허가 물질인지에 대한 것이다. 문제는 법령에 있었다. 유럽연합(EU)의 *살생물제법은 살생성분이 있는 제품을 제조•수입할 경우, 물질명•제품명•용도를 사전에 신고하도록 의무를 부과한다. 반면, 현재 한국의 법에는 CMITㆍMIT에 대한 별도의 규제가 없다. 법상에서 치약 보존제로 CMITㆍMIT의 함유량에 대한 특별한 기준치 없이 금지가 돼 있는 것이다. 따라서 치약에 함유돼 있던 이는 극미량으로 인체에 무해하다고는 하지만 불법이므로 회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한동대 생명과학부 황철원 교수는 “방부제나 보존제로 사용되는 화학물질은 기본적으로 유해하다”라며 “살균과 보존을 위한 화학물질의 사용이 불가피하다면 독성실험을 통해 기준치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의 CMITㆍMIT에 대한 실태조사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CMITㆍMIT가 한국에서 쓰인 지 25년이 지났지만 CMITㆍMIT에 대한 실태조사가 제대로 이뤄진 적은 없다. 이에 보건복지부, 환경부, 식약처 등은 9월 28일부터 29일까지 국내 모든 치약제조업체 68개소에 대해서 현장 전수조사를 마친 후, 10개 업체에서 판매되는 기준을 위반한 147개 제품을 회수 조치했다.

▲ 유해물질이 포함된 치약 제품을 회수한다는 안내문이 걸려있다. 최용훈 사진기자.

화학제품 기피하는‘노케미족’까지 등장

현재 CMITㆍMIT는 샴푸, 린스, 가글액 등에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하지만 CMITㆍMIT는 인체에 끼칠 수 있는 여러 유해성이 제기된다. CMITㆍMIT는 코로 마실 경우 폐 손상의 우려가 있다. 입으로 삼킬 경우 기준치 이하에선 부작용이 없지만 다량 섭취하게 되면 건강상 위험하다. 피부에 접촉될 때는 염증이나 알레르기 반응이 생긴다. 우리 삶 속에서 자주 쓰이는 제품이 유해성의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에 화학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은 깊어지고 있다. 옥시 사건 이후 롯데마트에서는 4월 18일부터 5월 3일까지의 표백제 매출이 같은 기간의 작년 매출과 비교해 22.6% 감소했다. 탈취제와 방향제도 각각 16.8%, 15.0%의 매출이 줄었다. 화학제품에 대한 불신으로 새로운 소비자층, ‘노케미족’도 등장했다. 노케미란 ‘No Chemical’이라는 뜻으로 노케미족은 화학물질이 들어간 제품은 피하고 천연 재료를 이용해 스스로 제품을 만들어 쓰는 사람들을 말한다. 노케미족이 만들어서 사용하는 제품 분야는 다양하다. 노케미족 중 샴푸를 사용하지 않는 ‘노푸족’이 있다. 샴푸 대신 식초나 베이킹소다 등을 이용해 머리를 감는 것이다. 또한 천연 재료를 이용해 천연 화장품을 만들어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베이킹소다 ▲구연산 ▲식초 ▲과탄산소다를 이용한 천연세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 사이트 G마켓에 따르면 7월 한 달간 전년 대비 매출이 식초는 69%. 베이킹소다와 구연산은 23% 증가했다.


법의 제∙개정, 케미포비아 해소할 수 있을까

시민들의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불안함을 해소하기 위해 환경부에선 법의 제정과 개정, 안전관리대책 등의 조치가 취해졌다. 10월 18일 환경부 조경규 장관의 기자간담회에 따르면 환경부는 이후 ▲살생물제법 제정 추진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대책(이하 안전관리대책)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하 화평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살생물제법이 제정되면 생활화학제품이 유럽처럼 유해성 평가를 거친 후 시장에 유통된다. 안전관리대책에는 그동안 관리하지 않았던 살생물질과 살생물제처리제품에 대한 허가•승인•모니터링 관리제도 마련이 포함된다. 기존의 화평법이 개정되면 물질관리를 강화하는 내용의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이 추가된다. 식약처 손문기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10월 26일 방송한 YTN 인터뷰에서 “이번 가습기 살균제 성분 치약 사건은 원료업자가 ‘소디움라우레스설페이트’라는 것을 만들면서 보존제로 CMITㆍMIT를 첨가하면서 발생했다. 제조업체에서 이런 원료 관리를 조금 더 철저하게 했어야 하는데 그게 미흡해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라며 “앞으로 이런 일이 추후에 발생하지 않도록 원료관리와 제품 품질 관리에 더욱 철저한 관리감독이 되도록 조치하겠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이 몸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줄 수 있다. 옥시 사건부터 메디안 사건까지 많은 논란으로 인해 정부의 여러 대책이 발표되고 있다. 더 이상의 화학물질 논란이 없도록, 환경부에서 발표한 대책의 빠른 시행으로 케미포비아의 해소가 시급하다.


*CMITㆍMIT: 1960년대 말 미국 롬앤하스사(R&H사)가 개발한 유독 화학물질로 메칠클로로이소치아졸리논(CMIT)과 메칠이소티아졸리논(MIT)의 혼합물. 물에 쉽게 녹고 휘발성이 높으며 자극성과 부식성이 커 일정 농도 이상 노출 시 피부, 호흡기, 눈에 강한 자극을 준다. 국내에서는 1991년 SK케미칼이 개발한 이후 가습기살균제, 치약, 구강청결제, 화장품, 샴푸 등 각종 생활화학제품에 사용돼 왔다.
*살생물제법: 산업 생산물에 피해를 주는 유기체를 통제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방부제, 살충제, 소독제, 농약 등과 같은 다양한 종류의 독성물질을 규제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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