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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서 문학의 지도를 펼치다
김예은 기자  |  kimye@hgu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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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12  01: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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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적이며 의지적이다.’, ‘이 시의 운율은 내재율이고 율격은 3음보이다.’ 어딘가 익숙한 표현이다. 전국의 수험생들은 매년 11월이면 시행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위해 문학작품의 특징들을 외우곤 한다. 이렇게 머리로만 암기했던 교과서 속 작품이 눈 앞에 펼쳐질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다양한 문학가들이 나고 자란 통영이다. 문학의 고장 통영에서 기억 속 문학가들을 불러내 봤다.
짙푸른 바다와 하늘은 데칼코마니를 이루고, 비릿한 바다내음과 함께 오밀조밀 모여 있는 작은 배들이 그림 같은 곳, 통영. 그곳의 섬들과 탁 트인 바다는 무한한 상상을 가능하게 해 줄 것만 같다. 이 때문일까? 통영은 예로부터 문화예술의 도시로 유명하다. 유치환, 김춘수, 박경리 등의 문학가를 비롯해 윤이상, 전혁림 등 많은 예술가가 태어난 통영으로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향해봤다.

예술과 문학이 흐르는 땅, 통영

경상남도에서 가장 작은 238.77km² 의 면적의 도시 통영은 작지만, 문학과 예술이 녹아있는 도시다. 포항에서 버스로 4시간을 가야 나오는 통영은, 남해안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다.
통영에서는 매년 ‘통영 국제음악제’, ‘통영연극예술축제’와 같은 예술을 주제로 한 축제가 열린다. 또한, 유치환, 김춘수, 박경리, 김상옥, 김용익 등 통영 출신 유명 문학가를 기리고 통영의 문학 자원을 개발 및 계승하기 위한 ‘통영문학제’가 개최되고 있다. 특히 옛 문학가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통영은 많은 현대인에게 영감과 위로를 줘 ‘유명예술인 생가 투어’, ‘역사•문화기행’과 같은 문학기행의 장소로 애용되곤 한다. 통영에는 다양한 문화유적들도 있다. ▲통영 해저터널 ▲구 통영 군청 ▲통영오광대를 비롯한 유•무형 문화재 61개가 있다. 통영옻칠미술관, 연명 예술촌과 같은 문화공간, 예술가의 거리, 문학과 관련된 4개의 전시관도 찾아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통영을 대표하는 유치환, 김춘수, 박경리 세 문학가의 삶을 엿보고 왔다.

깃발처럼 살다간 시인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통영시 정량동 망일봉 기슭에 위치한 청마 문학관이다. 통영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30분 거리의 청마 문학관은 일제강점기 시대 시인이자 교육가였던 유치환의 문학정신을 보존,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으며, 그의 호(號) ‘청마(靑馬)’에서 따온 이름이다. 청마 문학관은 크게 유치환의 출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연대기적 삶의 과정을 전시한 ‘청마의 생애’, 각 시대별 작품경향과 대표작들을 전시한 ‘청마의 문학’, 각종 유물과 관련 서적을 전시한 ‘청마의 발자취’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청마 문학관 입구에서는 그의 대표적인 시 ‘깃발’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일제강점기 시인 유치환은 일제탄압에 맞서 대항하지 못한 시인의 내적 갈등, 조국을 상실한 망국민의 회한의 감정을 시에 나타냈다. 예술을 친일의 도구로 이용하려던 일제의 탄압에 만주로 이주한 유치환은 ‘광야에 와서’와 같은 시를 남겼다. 해방 후 유치환은 통영으로 돌아와 ‘통영문화협회’의 회장으로 문맹 퇴치, 농촌계몽운동 등 다양한 문화계몽운동을 전개했다. 청마 문학관은 당시 *‘생명파’로서 생명존중 사상을 드러낸 그의 문학 세계뿐 아니라 교육인으로 살았던 그의 삶을 알 수 있다. 청마 문학관에서 살펴볼 수 있는 그의 작품 ‘귀고’는 그리운 자신의 고향인 통영을 잘 묘사해주고 있다.

•••양지 바른 뒷산 푸른 송백을 끼고 / 남쪽으로 트인 하늘은 기빨처럼 다정하고,
내가 트던 돌다리와 집들이 / 소리 높이 창가하고 돌아가던 / 저녁놀이 사라진 채 남아 있고•••

청마 문학관을 안내해주던 가이드는 “그 당시 통영의 새로운 문화, 경제력, 아름다운 자연 삼박자가 맞아 유치환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예술가가 나온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학관을 구경한 뒤 바로 옆 표지판을 따라가면 유치환의 생가가 있다. 본래 생가가 있던 곳은 도로로 편입돼 청마 문학관 옆에 생가를 복원해놨다. 섬세하게 배치된 부엌, 약방, 농기구 보관 창고 등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곳은 유치환의 ‘그리움’, ‘소리개’, ‘선한 나무’ 등 많은 작품이 탄생한 곳이었다.

순수의 시를 추구한 ‘꽃의 시인’

청마 문학관에서 나와 ‘꽃의 시인’이라 불리는 김춘수 유품 전시관(이하 유품 전시관)으로 향했다. 청마 문학관에서 택시를 타고 20분 정도 가면 나오는 유품 전시관은 미륵도에 위치해 있다. 통영과 해저터널로 연결된 섬인 미륵도로 가는 길은 통영 바다의 풍경이 한눈에 보여 자연들로부터 한가로움을 느낄 수 있다. 유품 전시관 앞에서는 그물을 손질하고, 장비를 옮기는 등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을 볼 수 있다. 유품 전시관은 그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함께 자리하고 있다. 총 2층으로 이뤄진 유품 전시관은 김춘수의 생가터에 김춘수 기념관이 건립될 때까지 임시로 유품을 보관•전시해 놓은 곳이다. 유품 전시관 1층에는 김춘수의 육필 원고와 낙관, 도장과 함께 그의 시들이 전시돼 있다. 김춘수는 ‘꽃을 위한 서시’, ‘꽃, 순수한 거짓’ 등 꽃과 관련한 시를 많이 썼다. 그가 왜 꽃의 시인인지 알 수 있게 한다. 그중 김춘수의 대표적인 시 ‘꽃’이 눈에 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 시인 김춘수가 생전에 쓴 원고가 전시돼 있다. 최용훈 사진기자.

또한, 김춘수는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을 비롯한 많은 시에서 샤갈, 고야 같은 서양화가를 언급하거나 그에 관한 시를 썼다. 김춘수는 “나는 그림은 잘 못 그리지만 보는 것은 좋아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시가 그림처럼 보이는 이유는 이 때문일까? 시와 그의 원고를 감상하고 2층으로 올라가니 그의 서재와 방을 재현해 놓은 공간과 가족사진이 있었다.

조금 전까지는 거기 있었는데 / 어디로 갔나 / 밥상은 차려놓고 어디로 갔나.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그의 시 ‘강우’의 한 대목이다. 유품 전시관에서는 그와 아내의 만남에서부터 황혼의 삶까지도 알 수 있다. 김춘수는 자신의 고향 통영에 대해 “바다, 특히 통영(내 고향) 앞바다ㅡ한려수도로 트인 그 바다는 내 시의 뉘앙스가 되고 있다고 나는 스스로 생각한다. 그 뉘앙스는 내 시가 그동안 어떻게 변화해 왔든 그 바닥에 깔린 표정이 되고 있다. 나는 그렇게 혼자서 스스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대지의 소설가, 생명을 쓰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기념관이다. 유품 전시관에서 20분 정도 택시를 타고 가면 나오는 박경리 기념관은 산양읍에 위치해있다. 기념관과 마주하자마자 나온 박경리 동상이 방문객을 반겨주는 듯했다. 박경리 기념관에는 ‘토지’뿐 아니라 ‘김약국의 딸들’, ‘파시’, ‘시장과 전장’ 등 많은 소설을 썼던 소설가 박경리의 문학과 그녀의 삶이 담겨있다. 기념관 입구의 박경리의 자연 친화적인 생각이 담겨있는 글귀를 시작으로, 기념관 내부에는 박경리의 유품, 육필원고, 시가 전시돼 있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박경리가 무려 26년간 집필했던 소설 ‘토지’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해방까지 ‘최서희’라는 인물을 통해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담은 소설 토지와 관련된 많은 사진과 원고들은 ‘토지’를 더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기념관 한 켠에는 박경리의 방을 재현해 놓은 공간이 있다. 통영의 특산물인 나전칠기와 그녀가 직접 만든 옷, 펜과 노트 등을 보며 박경리의 생생한 집필과정을 상상할 수 있다. ‘김약국의 딸들’의 배경모형은 기념관 한가운데 배치돼 있다. 박경리는 재봉틀로 옷을 만드는 것을 즐겼고 집필 중 머릿속이 어지러울 땐 호미를 들고 밭으로 나가 땅을 일궜다고 한다. 이런 박경리의 모습에서 생명존중, 자연 친화적인 소설 ‘토지’가 어떻게 나왔는지 예상할 수 있다.

   
▲ 햇살이 비치고 있는 박경리 기념관 동상. 최용훈 사진기자.

박경리 기념관을 다 둘러본 후 그 옆에 있는 ‘박경리 공원’으로 향했다. 박경리의 글이 담긴 비석들과 친필원고 동판 등이 세워져 있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 박경리 묘소가 나온다. 박경리 묘소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통영의 바다와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일찍이 남편과 아들을 잃고, 토지 집필 초기에는 유방암으로 가슴에 붕대를 감고 글을 써야 했던 그녀의 고된 삶은 작품 속에 오롯이 녹아 있다. 고된 삶이 그녀의 소설 속 인간 존엄과 생명 사상에 불을 지핀 것은 아닐까? 그녀는 자신의 고향 통영을 ‘김약국의 딸들’ 제1장의 주제로 정했었다. 또한, 박경리는 통영에 대해 “내가 통영에서 태어난 것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해저터널, 충렬사, 세병관을 통해 어릴 때부터 민족주의를 배웠다”라며 “고향이란 인간사의 풍물과 산천, 삶의 모든 것의 추억이 묻혀 있는 곳이다. 고향은 내 인생의 자산이며 30여 년간 내 문학의 지주요 원천이었다”라고 말했다.


청마 문학관도, 김춘수 유품 전시관도, 박경리 기념관도 모두 그 앞에 바다를 품고 있다. 넓은 바다와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며 자신만의 세계를 그려갔을 그 공간에 가보면, 하얀 하늘을 종이 삼고 푸른 바다를 먹물 삼아 쓴 그들의 문학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다. 머리로만 문학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통영에서 그들의 문학 인생을 잠시 엿보는 것은 어떨까? 탁 트인 풍경 속, 그들의 삶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생명파: 정지용, 김영랑, 박용철 등이 중심이 된 시문학파의 기교주의적이며 감각주의적인 경향에 반대해, 인간의 정신적∙생명적 요소를 중시하는 일단의 작가군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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