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 시절 나는 공부하기 싫을 때면 문학책을 펼치곤 했다. 내게 활력소가 돼주는 과목이 국어였고, 그중 문학을 가장 좋아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문학 작품들을 공부와는 별개로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통영 문학기행 취재를 가게 됐을 때 세 명의 작가들에 대해 더 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취재계획을 세웠다. 사실 이번 취재를 준비하면서 통영이라는 지역이 많은 예술인의 고향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대체 어떤 곳이길래 이렇게 많은 예술인을 배출한 것일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통영으로 향했다. 무려 4시간을 거쳐 도착한 통영은 드넓은 바다와 탁 트인 자연이 맞이해주는 예쁜 곳이기도 했지만, 문학인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거리 곳곳마다 그들 삶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고 그들을 기억하기 위한 장소가 마련돼 있었다. 포항의 4분의 1 면적의 작은 지역이지만 빈틈없이 꽉 채워져 있는 곳이었다. 그들의 삶의 터전을 방문하고 그들의 문학이 전시된 곳들을 다니면서 많은 것들을 보고 들었다. 작품 속 공간을 걸으며, 작가들의 삶을 알며 문학을 깊게 알게 된 좋은 계기가 됐다. 통영에서 탄생한 문학 작품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대설 주의보’, ‘북어’ 등을 쓴 최승호 시인이 자신의 작품으로 출제된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를 풀어봤지만 틀렸다는 일화가 있다. 또한, 김소월 시인의 작품 ‘왕십리’의 한 구절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라는 시구를 해석할 때 어떤 이는 ‘비가 한 닷새쯤만 내리고 그만 그쳤으면 좋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어떤 이는 ‘이왕 비가 오려면 한 닷새쯤 퍼부었으면 좋겠다’고 해석하는 이도 있어 아직도 논란이다. 이 두 가지 일화는 작품 그 자체만 보고 작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품에 대한 공부뿐만 아니라 작가를 알고 배경을 알면 문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이다. 글을 쓸 때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힘들어 만주로 피해간 청마 유치환. 해방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통영문화협회’ 결성. 예술이라는 연결고리 아래 모인 통영의 예술가들, 그 모임에는 유치환의 제자 대여(大餘) 김춘수도 있었다. ‘감자’, ‘역마’를 쓴 김동리는 유치환과 같은 생명파 문학가였다. 또한, 김동리의 추천으로 박경리는 등단하게 된다. 이렇게 문학이라는 연결고리로 이어진 그들의 삶을 알아가는 것은 더 풍요롭게 문학을 느낄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이번 취재를 통해 과거의 세 작가를 만나면서 감히 작품을 더 이해하게 됐다고 말할 수 있다. 어쩌면 작가가 쓴 글 한자락으로 그의 인생을 파악한다는 것이 의문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 내가 취재를 다녀오고 나서 느낀 점은 글 한자락에는 글을 쓴 사람의 인생이 투영돼 있다는 것, ‘글은 강하다’는 것이었다. 글의 힘을 알았기에 일본은 일제강점기 시절의 문학인들을 탄압하며 글로써 그들의 편이 되기를 강요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부드러운 힘을 가진 문학을 느끼기 위해 통영으로 향해보자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박경리가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쓴 산문의 구절과 같이 먼저 인생을 살다 간 그들의 글에서 우리는 한 구절의 깨달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한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