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공간에서 우리는 ‘떠나기’를 배웁니다. 틀에 박힌 사고, 비틀어진 시각, 몸에 밴 악습에서 떠나는 법을 말입니다.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지식들로부터 떠나는 일은 혼란과 고통의 시간이지만, 때론 우리에게 큰 해방감을 안겨주기도 할 겁니다. 대학공간에서 주어지는 이 시간들을 통해 우리는 당장 오늘의 이익보다는 내일의 가치에 대해 고민할 수 있습니다.
대학도서관은 오늘을 떠나고, 내일을 내다볼 수 있게 하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자료실의 전공서적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지식이 무엇이었는지 알려주고 어떤 것이 잘못된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게 합니다. 역사, 문학, 예술, 과학, 철학, 종교 서적 모두 틀에 박힌 사고와 비틀어진 시각에 제동을 걸고 한 걸음 멈춰 서서 다시 사고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학도서관이 자료실로만 국한되어서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자료실은 기본적으로 지식체계에 대해 묻고 답해볼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을 제공해주고 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제 것으로 소화시켜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바로 열람실 공간입니다. 열람실에서는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드는 몰입이 가능합니다. 자료실에서 얻었던 혼란스러움과 고통스러움을 끌어안고, 혼자 깊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고민의 정체를 비로소 마주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 자신의 생각을 내놓을 수 있는 학술적 모임 공간 역시 필요합니다. 기꺼이 비판 받겠다는 태도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생각의 모험을 이어나가겠다는 동의가 모두에게 있는 장소입니다. 나의 말을 들려주고, 상대방의 말을 듣는 이 공간은 자료실과 열람실 못지않게 대학도서관 공간을 구성하는 중요한 곳입니다.
대학도서관은 자료실, 열람실, 학술모임 이 세 공간이 충분히 확보되어야 합니다. 말그대로 물리적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뜻인데, ‘사이와 간격이 지켜지는 여유 있는 공간’은 자료실-열람실-학술모임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을 더욱 유연하게 합니다. 사람이 공간을 만들지만, 공간 역시 사람과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유 있는 공간은 세 공간의 연결에 운동성을 주고, 공간 안에서 오가는 담론의 영역과 차원을 확장시킵니다. 그냥 공간이 아니라 ‘숨통이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한동의 오석관을 생각해봅니다. 개교 초 학교의 여러 어려움 때문에 정식 대학 도서관을 세우기는 어려웠고, 다목적 용도로 지어진 건물을 빌려 임시 도서관을 마련하였습니다. 개선없이 현재까지도 그 형태가 유지되면서 오석관은 도서관이면서 도서관이 아닌 공간이 되었습니다. 3층 절반까지는 대학도서관의 모습인 거 같으면서도, 4층의 여러 강의실과 다른 기관들을 보면 도서관이 아닙니다. 대학도서관은 본래 그 공간 특성 상 각각의 세 공간이 집약되어 위치해 있어야 합니다. 세 공간이 붙어있어야 하며, 그 외 다른 공간이 대학도서관 공간을 구성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위 같은 공간적 구성을 지향하는 것은 다른 학술 외 공간과는 분리를 시켜 소음을 줄이고 학생들의 집중을 높이기 위함도 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자료실, 열람실, 학술모임공간을 사이와 간격이 지켜지는 충분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에 있습니다. 오석관은 여유있는 공간, 숨통이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자료들을 넉넉히 보관할 자료실, 인구밀집이 낮은 쾌적한 열람실, 열린 비판이 오고 가는 학술모임공간 안에서 비로소 오늘의 필요로부터 떠나 내일을 그려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심나온 법학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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