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좋든 싫든 특정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한 번 고정관념이 쓰인 대상은 우리가 설정한 고정관념의 프레임을 통해 관찰하게 된다. 그렇다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스스로의 선택일까? 그렇지 않다. 개인의 취향은 각자에게 새겨진 역사다. 선입견, 편견, 고정관념. 어떤 단어를 택하든, 개인이 경험해온 환경에 따라 반영되는 것이다. 이처럼 개인의 환경에 의해 쓰인 고정관념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내냐고 물어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이번 호 한동신문의 사회면의 주제가 당신이 어느 정도의 고정관념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사회적 약자인 홈리스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그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가?
일반적으로 홈리스를 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일을 하지 않고 게으르기 때문에 홈리스가 된다고 생각되기 쉽다. 그런 이들에 대해 홈리스들을 돕는 단체인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황성철 씨는 “홈리스는 떠밀리고 떠밀려 자신을 보호해 주는 공간 하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라며 “(홈리스들이) 그 상황까지 몰리게 된 사회 구조도 함께 봐주길 바란다”라고 말한다. 처지가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개인의 사정으로 힘든 상황에 부닥친 것도 서러운데 사회적으로 버림받는 자처럼 보는 것은 가혹하다. 노숙자들을 편견 없이 바라보자. 그들도 엄연히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자 이웃이고 누군가의 가족이며 누군가에게는 매우 소중한 이일 것이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홈리스들을 향한 시선이나 정부의 불완전한 대책을 볼 때 아직은 그들에 관한 관심과 지원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2011년부터 시행된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 제1조에서 “이 법은 노숙인 등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호하고 재활 및 자립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여 이들의 건전한 사회복귀와 복지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법률이 시행된 지 3년이 지나도 홈리스들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김춘수의 시 ‘꽃’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구절이 있다. 우리가 홈리스들에 대한 고정관념의 프레임을 넘어서, 그들에게 다가가고 그들의 의미를 인정해 줄 때 그들은 우리의 이웃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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