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방학에 육거리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여느 식당과 다르지 않았지만 눈에 띄는 점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종업원 아주머니가 어딘지 모르게 어수룩해 보였다. 지능이 조금 부족한 분인가보다 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나왔는데 잠시 후에 종업원 아주머니가 뛰어나오셔서 다급하게 나를 불러 세우셨다. 내가 실수로 잔액이 없는 카드로 결제를 했던 것이다. 정중하게 사과를 드리고 다시 결제를 하는데 주인 아줌마가 종업원을 대하시는 모습에 매우 당황했다. 족히 열 살은 더 많아 보이는 종업원 아주머니에게 반말을 하시면서 모질게 대하시는 것이었다. 제일 잘못한 건 나인데, 애꿎은 분이 구박을 당하신 것 같아서 죄책감도 들고 인권 유린의 현장을 목도한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게 말로만 듣던 앵벌이인가’, ‘현대판 백반집 노예인 건가’ 하며 온갖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종업원 아주머니가 조금 부족하신 분 같았기에 더욱 마음이 편치 않았다.

육거리에서 해야할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건지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그 상황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저녁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그 식당에서 또 밥을 먹었다. 청국장 한 그릇을 시켜 놓고 어떻게 할 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침 종업원 아줌마는 안계시고 주인 아줌마만 혼자 계셨고 식당에 손님도 나 하나 뿐이어서 대화를 시작하기 좋은 상황이었다. 밥을 먹으면서 살살 눈치를 보다가 용기를 내서 운을 떼었다.
"사장님 주말에도 여세요?"
그 이후로 왠지 모르게 대화가 술술 풀렸다.
"한동대 다니능교"
"네! 오늘 점심에 첨 왔는데 넘 맛있어서 또 왔어요"
점심 때 왔다는 말을 들으시고는 그 때의 해프닝이 생각나셨는지, 기다리셨다는 듯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으셨다. 해명 겸 하소연을 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앞서 내가 했던 부정적인 생각들은 모두 오해였다. 그 어수룩한 종업원 아주머니는 주인 아주머니보다 5살 아래인 친척이고 예상대로 지능이 조금 부족하신 분이고 아무도 돌보지 않는 종업원 아주머니를 20년 째 데리고 계셨다는 것이다. 부족한 지능 때문에 상황 판단을 잘 못하셔서 주문을 잘못 받기도 하고, 심지어는 손님에게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점심 때의 해프닝 바로 직전, 그러니까 내가 결제가 된 줄 알고 식당 밖에 있었던 그 순간에도 내가 보지 못했던 일이 한 바탕 또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주인 아주머니가 종업원 아주머니에게 한 마디 하실 때마다 나쁜 주인이 나이 많고 모자란 종업원을 학대하는 것으로 손님들이 오해하는 바람에 난처했던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셨다고 한다. 그 뒤에도 몇 가지 사연을 더 들었는데 이 아주머니, 정말 대단한 분이셨다. 상황도 제대로 모르고 나만의 판단으로 주인 아줌마를 오해했던 게 정말 부끄러웠다. 주인 아주머니에게 일침(?) 한 말씀 올릴까도 생각했었는데, 만약 그랬다면 주인 아주머니에게 또 하나의 상처를 드렸을 것이고 나에게는 또 하나의 흑역사가 됐을 것이다. 내 목소리와 판단을 낮추고, 말하기 전에 먼저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기로 한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주인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며칠 전에 묵상한 말씀이 떠올랐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야고보서 1:19-20)

어떤 사람의 진짜 모습이 내가 짐작한 것과 다른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오해와 편견은 관계를 가로막는 높은 담이 되어 그 사람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게 되거나, 뾰족한 가시가 되어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예수님은 당신이 만나셨던 사람들에게 다가가셔서 먼저 대화하셨다. 예수님에게 대화란 사람의 마음의 문을 열고 삶 속으로 들어가는 열쇠였던 것이다.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던 삶의 상황에 대해 질문하시고는 먼저 그 대답을 들으셨다.

다양한 가치관과 성장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대학에서 나와 다른 사람을 볼 때 나름대로의 판단 기준과 도덕심이 발동할 때가 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한 사람일수록 더 강한 신념으로 상대방을 재고 따지게 되기 쉬운 것 같다. 오해와 편견으로 막힌 담을 허물고 열린 마음으로 건강한 대화를 끊임 없이 시도하며 사실에도 가까이 다가가고, 더욱 풍성하고 좋은 관계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신기성 생명과학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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