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두둑, 빗방울이 늪을 지나면/ 풀들이 화들짝 깨어나 새끼를 치기 시작한다/ 녹처럼 번져가는 풀/ 진흙 뻘을 기어가는 푸른 등 같기도 하다.

이는 나희덕 시인의 ‘고여 있는, 그러나 흔들리는-우포늪에서’의 한 대목이다. 생명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 시의 주인공은 우포늪이다. 천고마비의 계절을 목전에 둔 여름의 끝자락에 우포늪에서 자연을 느끼며 여름을 보내는 아쉬움을 달래봤다. 

 

1억 4000만 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우포늪은 원시 습지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우포늪은 여의도의 세 배 넓이인 70만 평에 걸쳐 있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국내 최대 내륙습지다. 우포늪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천연기념물 제524호로 지정됐으며 2014년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되기도 했다.
빠져나오기 힘든 상태나 상황을 ‘늪’이란 말로 비유하기도 한다. 여기 늪과 같이 빠져나오기 힘든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진 곳이 있다. 한 번 가면 그 매력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운 창녕 우포늪의 아름다운 자연을 느껴보자.
 

태고의 땅 우포늪을 소개합니다

대한민국은 1997년 *람사르 협약에 가입했으며 전국에 19개의 장소가 람사르 습지로 등록돼 있다. 우포늪은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습지다. 우포늪은 480여 종의 식물류, 62종의 조류, 28종의 어류 등 수많은 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다. 우포늪이라는 이름은 우포(소벌), 목포(나무벌), 사지포(모래벌), 쪽지벌 4개의 늪을 아우르는 명칭이다. 한자어인 우포(牛浦)를 순우리말로 소벌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우포늪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소의 목처럼 생겨서 마치 물을 먹는 소와 같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우포늪은 사시사철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어 사진사들에게 인기 있는 출사(出寫)지다. 새벽에 피어오르는 물안개, 나룻배를 젓는 뱃사공, 일출과 같은 풍경들을 자유롭게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온몸으로 느끼는 자연

흔히 우포늪의 여름은 ‘녹색 융단을 덮었다’고 표현된다. 그 표현에 걸맞게 8월의 우포늪은 사방이 초록 물결로 가득 차 있었다. 마름과 개구리밥으로 덮인 광활한 늪이 가장 먼저 손님을 맞이한다. 우포늪의 입구에는 자전거 대여소와 코스를 안내해주는 표지판이 있다. 광활한 면적을 자랑하는 만큼 우포늪은 여러 개의 코스로 이뤄져 있다. 자전거를 타고 돌며 구경할 수도 있지만, 도보로 천천히 우포늪의 풍경을 즐길 수도 있다. 우포늪 구경에 도움을 받고자 우포늪 지킴이이자 우포자연학교 교장인 이인식 씨를 만나 동행했다. 입구를 지나쳐 느티나무들이 우뚝 솟아있는 길을 걸었다. 이 씨는 버드나무의 잎을 만져보라고 했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나뭇잎이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줬다. 또한, 각종 나뭇잎이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와 일정하게 우는 곤충들의 소리가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다. 20년을 키우면 20~30m 자라는 속성수(速成樹)인 이태리포플러는 따로 표지판이 있을 만큼 많다. 이 씨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른 향기를 맡고 다른 소리를 듣는다면 우포늪을 잘 즐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아카시아꽃 향기부터 풀향기, 밤꽃 향기 등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른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걷다 보면 길목마다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먼저 입구에서 가까운 대대제방으로 향했다. 대대제방은 우포늪에서 늪의 범람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세 곳의 제방 중 하나다. 제방 위에서 늪의 전경과 그곳의 새들을 구경할 수 있다. 이 씨는 나무 위를 가리키며 “지금 나무 위에서 들리는 소리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흰눈썹황금새의 소리다”라고 말했다. 무리를 지어 다니는 흰뺨검둥오리, 우포늪에서 산란한다는 원앙, 겨울 철새지만 일부 남아있어 볼 수 있었던 청둥오리 등도 구경할 수 있다. 여름에는 우포늪의 상위 포식자이자 멸종위기종인 삵과 담비 등이 자식들을 데리고 곳곳에서 먹이 잡는 방법을 가르치기도 한다. 도시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풍경이지만 우포늪에서는 그 모습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상일 뿐이다.
대대제방을 둘러본 후 왕버들 군락으로 유명한 사초 군락지로 향했다. 사초 군락지에서는 제방에서 보는 것보다 더 가까이 자연을 마주할 수 있다. 나무와 풀이 무성한 사초 군락지는 사람의 키만큼 높은 억새와 갈대들이 가득했다. 물기를 머금은 땅은 그곳이 늪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했다. 곳곳에는 숨겨진 연못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초 군락지를 구경한 후 나오는 길에 ‘따오기복원센터’라고 쓰여 있는 이정표가 눈에 띄었다. 이 씨는 “중국에서 사육전문가 두 명과 (따오기) 암수 한 쌍을 우포늪 따오기복원센터에 보내줬다. 2013년 중국 정부가 추가로 두 마리를 선물로 줘서 네 마리로 복원한 것이 지금은 171마리가 살고 있다”라며 “내년 가을이면 우포늪과 주변 산하로 훨훨 날아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강아지풀, 산딸기, 개망초 등 익숙한 식물들도 볼 수 있다. 소목 마을, 사지포 제방 등을 천천히 즐기면서 걷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난다.
 

 

왜가리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우포늪 이야기

우포늪을 구경한 후 우포자연도서관에 들렀다. 우포자연도서관은 이 씨가 건립한 도서관으로 마을의 큰 창고를 개조해 만들었다. 이곳은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이 우포늪을 구경한 다음 책을 읽고 가는 곳이라고 한다. 한 권의 책부터 책꽂이까지 모두 많은 사람의 기부로 구성된 곳인 우포자연도서관은 아직 단장을 마치지 못했다. 그 사실을 나타내듯 한쪽에는 많은 사람이 보내준 책들이 쌓여 있었다. 우포자연도서관에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씨는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을 계기로 1991년부터 우포늪 환경 운동에 힘쓰고 있다. 하루에 4~5시간씩 우포늪을 돈다는 이 씨, 그는 사계절 내내 우포늪에서 보이는 왜가리처럼 늘 우포늪에 있어 ‘왜가리 할아버지’로 불린다.
우포늪에 대한 설명을 듣던 중 우포 8경이 떠올랐다. ▲왕버들 수림 ▲늪 반딧불이 축제 ▲물풀의 융단 등 우포늪의 8가지의 아름다운 풍경을 우포 8경이라고 한다. 광활한 늪에서 8경을 찾기 어려워 이 씨에게 8경은 어디 가면 볼 수 있냐고 물었다. 이 씨는 “그렇게 우포 8경이라고 이름을 붙여버리면 사고를 경직시키는 것이다”라며 “보는 사람마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풍경들이 다를 텐데 그걸 어떻게 정의하냐”라고 말했다.
이 씨는 최근 4대강 사업으로 인한 우포늪의 위기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꺼냈다. “최근 4대강 사업으로 낙동강에 녹조가 생기면서 강물이 범람하지 않는다”라며 “건강한 생태계가 되려면 강물이 범람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원래 우포늪은 여름철에 해마다 멸종위기종인 가시연꽃이 늪 안에 피면, 동남아시아에서 산란하던 물꿩이 둥지를 튼다. 또한, 가시연 사이로 환경부 보호종인 자라풀이 자라면서 물꿩의 둥지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올해는 낙동강의 물이 범람하지 않아 가시연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경제적 이익을 위해 늪을 농경지로 개간하고 늪에 공장을 지으면서 현재의 우포늪의 규모는 1930년대에 비해 1/3로 줄었다. 이 씨는 “인간과 인간은 대립하지만, 인간과 자연은 협력할 수 있다”라며 “우포늪을 과거의 우포늪으로 복원하는 것이 나의 목표다”라고 말했다.
우포늪에서는 시베리아와 남쪽에서 날아온 철새도 만날 수 있다. 방대한 면적만큼 하루만에 그곳을 즐기기는 힘들다. 우포늪은 해 뜨기 전과 해 지기 전의 모습이 아름답다. 그래서 1박 2일 동안 머물면서 여유를 가지고 보기 좋은 곳이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우포늪은 변한다. 걸을 때마다 향기가 변하고 풍경이 변하고 소리가 변하는 이 넓은 곳에 서 사시사철 변하는 풍경들이 내 것이 될 수 있다. 철새들의 쉼터, 많은 동식물의 터전인 우포늪에서 나만의 풍경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나만의 자연을 찾고자 한다면 자연은 기꺼이 두 팔 벌려 당신을 환영해줄 것이다.

*람사르 협약: 습지의 보호와 지속가능한 이용에 관한 국제 조약이다. 공식 명칭은 ‘물새 서식지로써 특히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이다.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 1991년 두산그룹 산하 회사 두산전자에서 다량의 페놀 원액이 유출돼 대구·부산·마산을 비롯한 전 영남지역의 식수원인 낙동강을 오염시킨 사건.

 

 


<창녕 우포늪>

주소: 경상남도 창녕군 유어면 대대리
전화번호: 055-530-1553
이용시간: 상시 개방
입장료, 주차비: 무료
자전거 대여료: 2시간 3,000원

<창녕 우포늪 가는 길>
포항시외버스터미널-서부정류장(대구)-창녕시외버스터미널-도보로 영신버스터미널로 이동-율원방면 버스 탑승-소목정류장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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