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게 뭔데?” 취재에 들어가기 시작했을 때, 질문을 받은 지인의 표정은 약간 난감해 보였다. “공론장에 대해 쓰려고 하는데….” “어, 감은 오는데 뭘 말하는지 잘 모르겠어.” 실은 나도 비슷했다. 그렇다. 공론장은 어려웠다.
 공론장 개념은 공부할수록 더 어려워서, 무엇을 공론장으로 볼 것인가를 놓고 애를 먹었다. 매체의 종류를 다 세기도 어려운 지금, 논의의 장만 가지고 공론장이라고 볼 수 없다. 취재 중 전문가들의 입에서 공통으로 나온 공공성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공공 사안에 대해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토론, 논의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공론장을 정리한 뒤, 한동대 사회를 비춰봤다.
 장은 많았다. 공론장인 듯 공론장 아닌 수많은 논의의 장 속에서, 한동대 공론장은 잘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원인이 궁금했다. 이에 대해 혹자는 대학생들이 개인적인 사안에 매몰돼 미시적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들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공론장의 한계가 한 매체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닌 만큼, 대학생들이 공적 가치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이 원인일 수도 있다. ‘가벼움’에 대한 비판이 낯설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대학생들의 이기심과 무관심에 공론장이 위태로운 원인을 돌리면 되는 걸까? 문득 ‘대학생들이 원래 그런 존재였던가’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과거 그 많던 학생운동과 오늘날 안녕들 하시냐는 학생들의 외침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돌연변이 엘리트 학생이 주도한 신선한 이벤트였을까? 지난 학기, 소통을 부르짖었던 한동대 학생들은 잡담 공간과 공적 가치를 둘러싼 논의도 구분하지 못한 채 떼를 쓴 걸까?
 언론정보문화학부 주재원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공론장은 특정 세력이나 특정 매체, 특정인이 활성화시킨다고 활성화되는 것도 아니고, 활성화 시킨다고 활성화되는 것은 더 이상 공론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누군가에 의해 공론장이 활성화되는 게 아니라면, 공론장의 위기도 이기적인 개인들로 인한 게 아니다. 대학생들의 무관심의 결과도 아니다. 애초에 대학생들은 공론장을 경험할 기회도 거의 없었다. 공론장은 우리 사회 구조의 문제고, 분위기의 문제고, 문화의 문제다. 결국, 공론장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란 건 존재할 수 없다. 그 노력의 존재 자체가 모순이라면, 과연 우리의 공론장은 이대로 좌절하고 마는 걸까?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무엇이든 되지는 않는 것이 공론장이다. 이번 기사는 대학 언론도, 학회도, 소통마당도, 온라인 커뮤니티도 공론장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음을 역설했다. ‘태생적 한계’, ‘찻잔 속의 태풍’, ‘계급장’, ‘개인적 수준의 잡담’…이유도 많이 들었다. 아니, 사실 이들 매체 자체는 처음부터 공론장의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게 절망적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대체 무엇이 공론장이 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공론장에 모이고, 공적 가치에 대해 사유하고 말하는 주체는 결국 그 사회 ‘구성원’이라고. 그렇기에 당신이, 한동대 공론장의 가능성이라고.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부끄러운 기자가 공론장을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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