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많은 노인, 몸이 불편한 장애인, 보호자가 필요한 미성년자는 ‘나이’ 혹은 ‘신체적 결함’으로 노동시장에서 ‘을’이 되기에 십상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생계를 위해 오늘도 꿋꿋이 그리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다.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도 오늘을 부지런히 일하며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회적 약자는 ‘신체적, 문화적 특징으로 인해 사회의 주류 집단 구성원에게 차별받으며, 스스로도 차별받는 집단에 속해 있다는 의식을 가진 사람들’로 정의된다. 특히, 노동시장에서 사회적 약자들은 ‘나이’ 혹은 ‘신체적 결함’ 등의 이유로 차별을 받는다. 심한 경우에는 그들에게 노동을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도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짊어진 채 또 하루를 버텨낸다.

▲ 70대 청춘 경비원 신종규(73) 씨. 김운영 사진기자

70대 청춘 경비원, 신종규(73) 씨

이른 아침 7시. 아내가 차려준 따듯한 밥 한 끼에 든든한 배를 채운 신종규(73) 씨는 오늘도 경비실로 출근한다. 건설 회사에서 일하다 정년 퇴직한 후, 그는 2년 정도 쉬다 포항 우현동의 한 아파트 경비원으로 다시 새로운 직장을 얻었다. “정년 퇴임하고 집에 있으니까 심심하기도 하고 그래서 소일거리 찾아서 나오게 됐죠.”
  그의 하루 일과는 지하주차장을 순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순찰 후, 그는 제초작업을 하고 남는 시간에 쓰레기집하장에 들러 쓰레기를 차례차례 분류한다. 늦은 오후 아이들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한 그때,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해 아파트 주변 교통정리를 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신 씨의 일터이자 보금자리인 경비실에는 냉장고, 전자레인지와 함께 조그맣게 딸린 화장실이 있어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는 보통 동료 경비원들과 함께 세 평 남짓한 경비실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끼니를 해결한다. “점심이랑 저녁은 여기서 밥하고 밑반찬 꺼내 가지고 사람들이랑 같이 먹곤 해요.” 아파트 경비 일은 보통 교대로 진행되기 때문에 하루 24시간 근무 후, 다음 날 쉬고 또 다시 출근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루를 꼬박 새우며 일하다 보니 체력적으로 힘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제 나이가 있고 하니까 벅차긴 하죠. 65살 이때까지만해도 청년인가 싶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칠십이 넘으니까 하루하루가 다르다는 걸 느껴요.”
  그는 오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하루 24시간 일을 한다. 근로기준법 제63조에 따라 수위나 경비원과 같은 감시, 감독 업무를 하는 감시적 근로자는 사용자가 고용노동부장관의 승인을 받은 경우 근로시간, 휴게, 휴일에 관한 규정을 적용받지 않도록 정하고 있다. “주휴수당이나 그런 건 없고 최저 시급 6,030원에다가 거기서 일한 시간해서 받아요. 점심, 저녁 먹는 1시간씩이랑 휴식시간 3시간은 안 쳐줘요. 야간 수당이라고 해서 조금 나오긴 하더라고요.”
  각 아파트마다 아파트 내의 자치회에서 임금을 정하지만 저소득층이 많은 아파트의 경우, 휴게시간을 임의로 늘려 임금을 적게 주는 경우도 있다. “저소득층 아파트는 임금을 조금 줄이려고 잠을 많이 재우고 쉬는 시간을 막 많이 주기도 한다고 들었어요. 법에 위반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휴게시간에는 마땅히 잠을 청할 곳이 없어 작은 초소 안의 의자에서 잠깐 눈을 붙이거나 동료 경비원들과 수다를 떨며 졸음을 쫓아낸다.
  지난해 OECD가 발표한 노인 빈곤율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의 상대 빈곤율은 49.6%로 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했다. OECD 평균인 12.6%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한국 노인 빈곤율이 높은 이유 중 하나는 노인들이 일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노인 취업상태 현황에 관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취업 중인 노인은 2008년 34.5%, 2011년 34.0%, 2014년 28.9%로 점점 떨어지는 추세다. 노인 취업율이 떨어지고 있는 현실이 이렇다 보니 신 씨는 그저 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지금 내가 이 나이에 어디 이력서를 넣겠어 뭘 하겠어요. 나이가 들어도 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죠.” 느지막한 새벽, 졸린 눈을 비비며 그는 오늘도 열심히 하루를 버틴다.

▲ 장애인 공공근로자, 임태환(64) 씨. 김남균 사진기자

장애인 공공근로자, 임태환(64) 씨

맑은 공기 가득한 포항 양학동 뒷산. 임태환(64) 씨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산에 오른다. 임 씨는 양학동 뒷산에서 쓰레기를 주우며 환경 정화활동을 한다. 자발적으로 산에 올라 쓰레기를 줍고 청소를 한 지 30여 년이 지난 신 씨는 동사무소와 시청공무원들의 추천을 받아 작년부터 공공근로자로 일하게 됐다.
  임 씨는 23살 무렵, 회사에서 용접하는 일을 하다 3300V의 전기에 감전돼 한쪽 팔을 잃었다. 그 당시 일을 생각하면 그는 아직도 아찔하다. “그때 당시 특수한 기술이어서 월급도 많이 받았어요. 안 다치고 계속 다녀서 정년퇴직했으면 넉넉하게 살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어요. 처음에 다쳤을 때 하늘이 노래지고 자살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죠.” 한쪽 팔을 잃은 후, 그는 회사에서 약간의 보상금을 받았다. “요새는 노동법이나 이런 게 잘 돼 있어가지고 산재보험 해서 보상도 많이 받았을 건데, 그때 당시는 노동법이 처음 막 생길 무렵이니까 질서가 안 잡혀있어서 회사랑 합의해서 합의금 받고 그냥 끝났어요.” 사고가 났던 1976년 당시에도 산재보험 제도가 있었지만, 50인 이상 사업장의 노동자만이 가입할 수 있었고 근로기준법의 경우에는 15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에만 적용됐다.
  임 씨는 회사에서 받은 보상금으로 포항 양학동에 작은 구멍가게를 열었다. 구멍가게를 30여 년 운영하다 점점 장사가 안 되자 일을 그만두고 식당으로 업종을 바꿔 근 10년간 일을 했다. 그는 “구멍가게 할 당시에 장사가 잘 안되니까 생활이 넉넉지 않고 불안했어요”라며 “애들 공부시키는 데 돈 쓰고 하니까 저축하지도 못하고 계속 돈이 나갔죠”라고 말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 일을 하며 생활을 이어갔지만, 아내의 건강이 나빠져 최근 식당 문을 닫았다. 현재는 국민연금과 양학동 정화활동 일을 하면서 받는 수입, 아내가 식당 일을 해서 받는 돈으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임 씨의 경우 아내가 식당에서 일한 백만 원 남짓한 돈과 부차적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하지만 다른 장애인들의 재정적 상황은 더 열악하다. 장애인의무고용제도에 따라 상시 근로자가 100명 이상인 경우 공공기관 같은 공공부문은 정원의 3% 이상, 민간 기업의 경우 2.7% 이상을 장애인으로 고용해야 한다. 하지만 작년 장애인 의무고용률에 미달한 사업장은 7,700여 곳에 달한다. 임 씨는 “이번에도 보니까 미달한 곳이 많다고 하던데 젊은 사람들은 억울하겠더라고요. 그런 걸 좀 나라에서 배려해 줬으면 좋겠어요. 제가 뭐 30대쯤 되고 이러면 항의하고 이랬을 텐데 지금은 늙어 가지고 힘들어요”라고 말하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 미성년자 아르바이트생 유경은(18) 씨. 김남균 사진기자

미성년자 아르바이트생, 유경은(18) 씨

현재 고등학생 신분의 유경은(18) 씨는 패스트푸드점에서 1년 2개월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는 가족들과 떨어져 포항 장성동 원룸에서 혼자 자취를 하며 학교생활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사회생활 경험도 해보고 부모님한테 손 안 벌리고 용돈 벌이하려고 시작했어요.” 여느 고등학생과 마찬가지로 그의 하루도 꼭두새벽부터 시작된다. 새벽 6시 30분에 일어나 학교에 등교해 공부를 한 후, 늦은 오후부터 아르바이트를 한다. “친구들이랑 놀다가 아르바이트를 하러 저는 먼저 가야 하니까 좀 아쉽긴 해요.”
  그는 중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중학교 때부터 야구선수 생활을 했었던 그는 그 당시 야구 장비를 살 돈이 부족해 아르바이트할 곳을 찾았다. “단순히 돈이 필요해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어요. 야구 장비가 필요한데 아빠가 안 주시니까 제가 직접 돈을 모아야했어요.” 편의점과 치킨집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던 그는 최저 시급조차 받지 못하고 일을 했다. 2013년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도 연령별 최저임금 미만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미성년자인 청소년 노동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성년자라 하더라도 성인과 마찬가지로 최저 시급을 보장해야 하며 근로계약서 체결 및 가족관계증명서와 친권자 동의서를 받아야 하지만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는 “편의점에서 일하고 한 시간에 거의 3~4천 원 정도 받았어요”라며 “왜 최저 시급도 안 주냐고 물어보면 그러면 아르바이트를 하지 말라고 말하니까 그냥 아무 대꾸 못 하고 했죠”라고 말했다.
  유 씨는 미성년자로 아르바이트 할 때 가장 힘든 점이 학업과 일을 병행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학업이 가장 문제죠. 사실 하루 빼고 다 일하면 힘들고 미치죠. 평일날 학교 끝나자마자 바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다시 또 학교 가는 생활이 반복되는 게 힘들어요.” 다른 미성년자 친구들에게 아르바이트를 권하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사회경험 쌓으려면 한 두달 정도는 괜찮은데, 돈을 벌기 위해서 아르바이트하는 거라면 안 하는게 나을 것 같아요”라며 “학교를 다니면서 하면 학업에 영향을 미치니까 사고 싶은 게 생기면 차라리 부모님한테 용돈을 가불해서 받는게 나아요”라고 말했다. 아르바이트로 다른 친구들보다 공부할 시간이 빠듯한 상황 속에서도 유 씨는 남은 시간을 쪼개 열심히 공부하며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지금 해양양식과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교육 쪽도 같이 공부할 생각이에요. 열심히 공부해서 아쿠아리스트가 되는 게 꿈이에요.”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쌓인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노동자의 고달픈 삶을 이야기하는 정희상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라는 시의 일부다. 사람들은 힘든 노동과 쳇바퀴처럼 도는 일상 속에서 또 하루를 버텨낸다. 고달픈 삶 속 오늘도 하루를 살아내는 그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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