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3일, 더불어 민주당 김광진 의원의 첫 토론으로 필리버스터가 시작됐다. 192시간 26분 동안 진행된 이 무제한 토론은 세계에서 가장 긴 필리버스터라는 타이틀을 얻음과 동시에 국민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2004년도에 개국해 국회 회의를 중계했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국회TV 또한 필리버스터와 함께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처럼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킨 필리버스터, 그 중심에 테러방지법이 있다.

▲ 화제의 중심에 있었던 테러방지법은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테러방지법이 많은 논란 끝에 지난 3월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통과된 테러방지법은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국가대테러대책위원회 설치 ▲국가정보원장의 금융거래 정지 요청 및 통신이용 관련 정보 수집 ▲테러를 선동하는 글, 그림 등이 인터넷 등을 통해 유포될 경우 해당 기간의 장에 긴급 삭제 협조 요청 가능 ▲테러 관련 신고 시 포상금 지급 및 테러 피해자 모금 지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테러방지법을 향한 우려 섞인 목소리는 계속 들려온다.

테러방지법 둘러싼 갑론을박
2001년 9.11테러 이후 국제사회가 지속적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고,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IS(Islamic State)의 주도로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 테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국제연합(UN)은 9.11테러 이후 테러 근절을 위해 국제공조를 결의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국가 대부분이 테러방지를 위한 법률을 제정했다. 한국 또한 테러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판단 하에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테러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국가 및 공공의 안전을 확보하고자 하는 테러방지법의 필요성이 계속 제기됐다. 그리고 2001년 처음 발의된 테러방지법은 15년 만에 국회의 문턱을 넘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테러방지법이 없어도 ‘국가대테러활동지침(이하 대테러지침)’으로 충분히 테러를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테러지침은 국가의 대테러 업무수행을 위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대통령 훈령으로, 1982년 제정됐다. 더불어민주당 김광진 의원은 작년 12월 10일, 성명서를 통해 “우리나라는 테러를 막기 위한 제도와 조직이 충분히 잘 갖춰져 있다”라며 “국가대테러지침을 보면 각 국가기관과 부처들이 테러에 대비해 제 역할을 하게 돼 있고, 남은 것은 이 제도와 조직을 운용하는 대통령과 정부의 몫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2013년 12월에 한국테러학회에서 발표한 논문「경찰의 테러 대응체계 진단과 재정비 모형 설계」에 따르면 이 대테러지침은 대통령 훈령으로, 법규로서 효력을 가지지 않는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대테러활동과 관련된 강제력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상위 법령과 충돌할 경우, 테러 위험과 같은 국가 긴급상황에 대처하기 어렵다. 신라대학교 김순석 교수는 “경찰법이라든지 국가정보원법과 같은 기존의 법령들과 대테러지침이 상충하는 부분이 있으면 상위법인 법령을 먼저 적용해야 한다” 라며 “훈령으로 돼 있는 대테러지침이 실제 테러방지를 위해서 활용되기에 상당히 제약되는 부분이 많다”라고 말했다.
 또한, 2009년 8월 김순석 씨, 신제철 씨가 발표한 논문「현행 한국대테러활동지침의 문제점과 입법적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에서는 대테러활동지침의 내용상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테러지침 제1조는 ‘국가의 대테러 업무수행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김 씨와 신 씨는 “테러 행위는 그 피해의 광범위성이나 대테러활동 수단의 위험성을 감안한다면 목적상 테러의 예방, 진압, 수사에 관한 범위를 적시하는 것이 법의 취지에 부합한다”라며 “단지 국가의 대테러 업무수행을 위해 필요한 사항을 단순하게 규정하는 것은 테러문제에 대한 근본인식에 있어서 심각한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오영중 변호사는 “테러방지법의 정당한 입법 의도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는 독소조항들을 포함하고 있어 개정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 그래픽 박희선


테러 방지 vs 사생활 침해
테러방지법을 제정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테러방지법의 세부적인 조항의 내용으로 인해 사생활이 침해될 염려가 있다. 테러방지법에 명시된 *제9조의 1항, 3항, 4항은 일반 국민의 개인정보를 침해할 뿐 아니라 사생활을 감시, 감청할 위험이 있다.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정보 수집과 관련된 조항인 테러방지법 제9조에 따르면 국가정보원장은 테러위험인물에 대하여 출입국, 금융거래 및 통신이용 관련 정보는 물론 개인정보와 위치정보를 수집할 수 있어, 이에 대해 국민들은 사생활 침해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이에 지난 3월 4일,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은 “통신정보 수집은 법원 허가 등 엄격한 법적 절차를 거치도록 돼 있고, 금융정보도 부장판사가 포함된 금융정보분석원 협의체의 결정이 있어야 제공받을 수 있다”라며 “정보수집과 추적 대상도 ‘유엔이 지정한 테러단체 조직원이거나 테러단체 선전, 테러 자금 모금, 기부 기타 예비·음모·선전·선동을 했거나, 했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로 엄격히 제한돼 있다”라고 발표했다. 한편,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라는 기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기 때문에 모호한 조항이라는 지적이 있으나, 이 표현은 기본적으로 수사 관련 법률 조항에 빈번히 사용하는 단어다. 예를 들어, 형사소송법 제70조는 피고인이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법원이 판단하면 피고인을 구속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인권 보호 장치의 실효성
지난 2월 23일 *정보위원회가 발표한 검토의견에 따르면 테러 대응의 실무적 역할을 담당하는 대테러센터를 국무총리실 소속으로 해, 국정원의 권한 집중으로 인한 우려를 상당 부분 불식시키고 있다. 특히 국가테러대책위원회 소속으로 대테러 인권보호관 1인을 배치하도록 하고 있어 대테러 업무를 감독하는 것과 무고 및 날조의 죄를 형법보다 가중하여 처벌하도록 하는 등 인권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고 주장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 발의한 ‘테러방지법’의 법 조항을 살펴보면, 국가 대테러활동 관련 실무를 담당하는 대테러센터를 국정원장 산하에 뒀지만 이번에 통과된 테러방지법은 대테러센터를 국무총리실 소속으로 해, 그동안 제기됐던 국정원의 비대화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러나 정부가 주장한 보안장치가 실질적으로 기능할지에 대해서는 좀 더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테러방지법 제7조 ‘국민의 기본권 침해 방지를 위하여 대책위원회 소속으로 대테러 인권보호관 1명을 둔다’는 조항을 보면, 인권보호관의 자격, 임기 등 운영에 관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그러나 인권보호관 1명으로 기본권 침해를 막을 수 있는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민주사회변호사모임 김지미 변호사는 “인권보호관 1명이 국가정보원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게 말이 안 된다”라며 “권력을 분립해 각자 다른 기관이 견제해야 하는데, 인권보호관은 물론 국무총리도 대통령이 임명하기 때문에 그 실효성에 대해 의문이 든다”라고 말했다.

테러를 사전에 예방해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안전에 힘쓰는 것을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테러방지법이 오직 공공의 안전 확보라는 목적 실현을 위한 것이 아니라, 테러방지법이라는 이름 아래 일반 국민을 감시, 감찰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면 그것은 큰 문제다. 테러방지법이 통과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이버테러방지법의 법안 통과를 둘러싼 우려 섞인 목소리 또한 들려오고 있다. 테러방지법의 상황을 미루어 사이버테러방지법은 과연 사생활 침해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대통령 훈령: 대통령이 하급관청에 권한행사를 지시하기 위해 하는 일반적 형식의 명령.
*9조 1항: 국가정보원장은 테러위험인물에 대하여 출입국·금융거래 및 통신이용 등 관련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이 경우 출입국·금융거래 및 통신이용 등 관련 정보의 수집에 있어서는「출입국관리법」, 「관세법」,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통신비밀보호법」의 절차에 따른다.
*9조 3항: 국가정보원장은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개인정보(「개인정보 보호법」상 민감정보를 포함한다) 와 위치정보를「개인정보 보호법」제2조의 개인정보처리자와「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 위치정보사업자에게 요구할 수 있다.
*9조 4항: 국가정보원장은 대테러활동에 필요한 정보나 자료를 수집하기 위하여 대테러조사 및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추적을 할 수 있다. 이 경우 사전 또는 사후 대책위원회 위원장에게 보고하여야 한다.
*정보위원회: 국가정보에 관한 국회의 의사결정기능을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국회 상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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