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상황을 진단하고 예측하는 일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하지만 한 가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바로 생존을 위해 먹을 것과 쉴 곳을 찾는 일은 우리 인류 역사에 있어 언제나 문제가 되었다는 사실이고, 지난 역사를 보건대 이 문제는 앞으로도 우리 앞에 끊이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모든 것이 풍성했던 에덴 동산을 아담과 하와가 떠난 이래로 인간이 맞닥뜨리게 된 환경은 자연과, 주변인들과, 그리고 자신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무시무시한 것이 되었다고 해도 크게 과장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 환경은 애석하게도, 현재 실존하는 우리네 삶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불안을 증폭시키기도 하고 한편으론 삶의 원동력으로도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때때로 생존 문제 앞에서,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들이 수단화되는 것을 우리는 종종 목격하지 않는가?
 누군가에게는 앞서 말한, 근거가 빈약한 내 주장이 너무나 진부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 예전엔 ‘먹고 사는’ 문제나 돈 문제에 꽤나 둔감한 편이었다. 세상에는 먹고, 마시고, 좋은 집을 찾는 것보다 더 높은 차원의 어떤 것이 따로 존재한다고 믿었기에 ‘경제’라는 개념을 얕잡아 보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경제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너무나 쉽게 생각했기에 “나는 경제에 있어서는 문외한이다”라는 말도 부끄럼 없이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얼마나 무지의 소치인지! 나는 이런 생각을 하다가 누가복음 12장 34절인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는 구절의 의미를 묵상하며 그 태도를 고쳐먹기 시작했다. ‘경제생활이란 우리의 신앙과 생각을 꽤나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열매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바울을 비롯한 여러 사도들과, 청교도들의 근검절약하고 근면성실한 삶을 들여다 보면 그들의 사상과 일관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누가 이들을 경제에 무관심한 사람들이라 하겠는가? 이를 보건대, 어쩌면 우리가 주고 받는 신앙적인 대화의 내용보다 우리의 소비생활이나 경제관념이 어쩌면 우리의 마음상태를 더 정직하게 나타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생각이 ‘경제’를 바라보는 나의 잘못된 이원론적 생각과 편견을 거두어 가는데 일조를 했고, 결국 내가 피해야 할 것은 세속주의적이고 무질서한 경제(상황)에 빠지는 것이며,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나가기 위해선 오히려 우리 경제의 현실과 그 원리들을 적극적으로 알아나가야 하겠다는 판단에 이르게 되었다.
이것은 사회적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의 경제상황과 경제주체들의 행태에는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성과 어떤 심리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DNA가 심어져 있고, 경제 문제는 곧 사회병리 문제와도 긴밀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올바른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올바른 경제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이라고 또한 생각한다.
 이를 위한 좋은 도구가 바로 ‘경제법’이다. 경제법에서는 겉으로는 ‘경쟁 제한’이나 ‘부당공동행위’, ‘재벌(경제력 집중)’, ‘시장지배력 남용’ 등에 대한 개념과 관련 사안을 배우면서 정부가 어떻게 시장에 적절히 개입하여 그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탐구하지만, 그 기저에는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경제원리는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적 고민과 경제문제로 고통을 겪는 이웃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본다. 바라건대 한동의 구성원 모두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경제생활을 할 수 있었으면!

한동경제법학회 국제어문학부 12학번 김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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