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주토피아>의 동물들은 사랑스럽다. 동물 각자의 개성이 주토피아에선 창의적인 방식으로 뽐내어지며 서로 어우러진다. 시각적인 면에 있어 영화 <주토피아>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 있어 관객들에게 시각적인 부분에 있어 더 다가가고, 또 그래야 하는 부분이 있다. 동물들이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처럼 꿈을 펼치기 위해 당도하게 되는 '주토피아'라는 도시의 디자인은, 동물원을 뜻하는 '주(zoo)'와 이상향을 뜻하는 '유토피아(utopia)’의 합성으로 만들어진 도시답게 넘쳐나는 동물들로 활기차고 명랑한 느낌이지만, 시각적으로 반복된 색채나 비슷한 느낌의 구조물이 많고, 크게 튀는 디자인이 없어 다른 애니메이션과의 차별화된 비주얼을 느끼긴 힘들고 무난한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오히려 도시 자체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기보다, 주토피아에 등장하는 가장 작은 동물인 설치류 종류들부터 큰 동물인 사자, 버팔로 등이 주토피아라는 한 데에 어우러지는 것을 보여주는 것에 더 중점을 두었다.
 <주토피아>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는 '편견의 타파'이다. 사실 영화를 보고 처음엔 영화의 주제에 대해 애매한 느낌을 받았다. 영화의 주제에 접근할 때,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이라는 설정이 각각 어떤 집단을 대변한다는 것을 전제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영화를 전체적으로 설명해주는 주제를 찾기 힘들게 했다. 영화에서의 '악'은 주로 육식동물이 도맡았지만 최후의 악당은 초식동물이었다. 하지만 정의로운 주인공이 초식동물이라는 점에서 어떤 종류의 동물이 옳고 그른지를 명확히 판단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 특정 계층의 사람들을 대변하고 있다면, 이도 저도 아닌 듯한 주제의식에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사회적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대한 혼돈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약한' 종류로 치부되는 초식동물들은 주토피아의 약 90%를 차지한다. 약하지만 다수. 사실 이런 컨셉은 식민 지배에 접목하기 쉬운 것이지 정권에 넣기엔 힘든 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보수는 강한데 많고, 진보는 약한데 적다. 그렇다고 해서 육식, 초식 두 집단을 식민 지배에 넣어 비교하자니 주토피아는 그런 곳이 아니고, 월등히 많은 초식동물의 비율 때문에 이 컨셉은 남녀 사이에 넣기도 애매하다. 지도층 쪽에서는 육식동물인 사자 시장이 한 번, 초식동물인 토끼 시장이 한 번씩 악당으로 몰리며 어느 한 쪽 동물 집단에 동정표가 쉽사리 치우치게 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이 서로에 대해 가졌던 편견을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 영화는 초식동물인 토끼가 육식동물에 뒤지지 않는 능력을 가지고 실력을 인정받는 것과 육식동물인 여우가 초식동물인 토끼와 협력하여 평화를 가져오는 것을 통해 그 갈등을 해소한다. 영화는 끝자락에, 주토피아의 인기스타 '가젤'이 부르는 노래에 빌려 말한다. 사회는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우리는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생물들이라고. 개개인이 이리도 변화무쌍한데 어떻게 집단의 성격이 쉽사리 한두 문장으로 정의될 수 있겠는가? 영화 <주토피아>는 육식동물이든 초식동물이든 선을 권하고 악을 징벌하며 집단이 가지는 성격에 의해 개인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집어준 영화였다. 애니메이션의 좋은 점이 바로 이거다. 얼마든지 무겁게 갈 수 있는 주제를 애니메이션은 부담스럽지 않게 전달하는 재주가 있다. 애니메이션의 매력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시네마테크 한동 언론정보문화학부 14학번 정하윤

저작권자 © 한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