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어느 날 나는 일본 후쿠오카의 어느 호텔 방 침대에 걸터앉아 하늘을 향해 눈물로 뒤덮인 얼굴을 들고 일생에 몇 번 없을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때 내 옆에는 「갈대상자」가 놓여 있었다. 기록적인 불볕더위로 천지가 들끓던 그 날 낯선 하늘에 대고 하나님을 부르며 속에서부터 끓어 오르는 꿈을 마구 쏟아냈다. “하나님의 대학 한동대의 교수로 저를 불러주십시오.” 그때 나는 석사과정 1학기를 겨우 마친 후였고, 감히 ‘교수’라는 꿈을 입 밖으로 낸 경솔함을 자책하며 애써 그 순간을 지운 채 몇 년의 학위과정을 간신히 견뎠다. 7년의 학위과정은 그 길 끝에 주어질 보상을 바라지 말고 무겁게 떼는 한 걸음 한 걸음에 온전히 집중할 것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2015년 3월 어느 날 나는 한동대 학생들 앞에서 “내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라고 장엄하게 선포하였다.
 한동에서의 지난 1년, 나는 관찰자였다. 혹여 실망할까 조심스레 관찰자 앞에 제 모습을 드러낸 한동을 묘사하기는 쉽지 않다. 그 어떤 단어를 선택하더라도 실망스럽겠지만, 굳이 말하자면 아찔할 정도의 ‘역동성’ 정도가 되겠다. 한동 구성원의 일상은 24시간 안에 다 담기기 어려울 만큼 가득 차 있었다. 넓지 않은 캠퍼스에 빽빽하게 모여 살며 서로의 시간과 공간이 마구 부대끼고 있었다. 마치 흘러가는 하루를 붙잡아 두려는 듯 잠을 마다하면서까지 몇 사람 몫의 시간을 쓰고자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서도 빼곡하게 들어찬 일상 한 켠을 물리고 다시 새로운 일을 끼워 넣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이들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각자가 뿜는 열정이 서로 부딪힐 때마다 새로운 모임이 탄생하고 새로운 일이 모색되었다. 그러고는 쓰러지도록 그것에 몰두하고, 이내 다시 다른 방향으로 열정을 뿜으면서 또 다른 도전이 이어진다. 관찰자는 다소 불안함을 느꼈다. 적절한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지키는 것이 생존의 원리로 여겨지는 한동 바깥세상에서는 마음도 그 시간과 공간 안에 가두기 마련이다. 매일 만나면서도 마음은 만나주지 않으며 남모르게 외로움을 탄식하는 것이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라 알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살다 온 관찰자는 이곳이 그다지 편안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일상, 그리고 이것을 만들어내는 역동성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궁금해졌다. 그러다가 내가 아는 어느 한 사람의 짧은 생애가 떠올랐다. 가는 곳마다 몰려드는 무리에 에워싸이고, 새벽잠을 물리치고 찾은 한적한 곳까지도 이내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점령당하며, 그나마 남은 시간과 공간까지도 제자들에게 모조리 나누어 준 그는, 광풍이 이는 바다 한가운데서도 흔들어 깨울 때까지 잠을 잤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그를 내내 따라다녔을 극도의 피곤함과 고단함을 느낀다. 그래. 이렇게 살다간 사람이 있었지. 자신에게 주어진 길지 않은 시간, 한순간 한순간을 아까워하며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며 살다 간 사람이 있었지. 그리고 그렇게 지치도록 사랑하다 간 사람들 덕에 세상이 바뀐 것이었지. 이제 관찰자는 이것이 세상을 바꾸는 자들의 필연적인 생활양식일 수도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십 여 년 전 일본에서 쏟아 낸 그 꿈이 이것을 의미하는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뜨겁게 뛰고 있는 그 꿈 때문에, 이제 관찰자는 내부자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법학부 조혜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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