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은 가난하다.’ ‘예술인은 궁핍하다.’ 당연하게 쓰이는 문장이지만 실제 아주 소수의 예술인을 제외한 예술가 대부분은 생계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화가 이중섭도 돈이 없어 담뱃갑 은박지에 그림을 그리며 예술혼을 불태웠고, 이제는 ‘국민 화가’라고 불리는 화가 박수근도 생전에는 백내장에 걸린 눈의 수술비가 없어 실명할 정도로 가난했다.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의 저자인 암스테르담대 예술사회학과 한스 애빙(Hans Abbing) 명예교수는 그의 책을 통해서 예술가가 가난한 이유는 “예술 자체가 지닌 높은 가치 때문에 예술가가 희생을 당연시하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낮은 수입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계속하려는 이른바 예술 ‘열정’이 예술가가 착취당하는 구조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는 특히 청년예술가들을 착취한다. 실제 상당수의 예술 기관은 예술가에게 지급해야 할 대가를 제대로 주지 않는 것은 물론, 각종 활동에 필요한 비용 또한 예술가에게 떠넘기기도 한다. 그리고 이 굴레에는 ‘예술가는 배가 고파야 한다’, ‘예술에 돈을 매기는 것은 천한 행동’이라는 고정관념이 작용한다. 때문에 청년들은 예술 분야에 발을 들여놓기 전, 자신이 얼마나 재능이 있는가, 얼마나 하고 싶은가가 아닌 돈을 벌지 않아도 될 만큼 그 예술에 열정이 있는가를 선수로 고민한다.
 한스 애빙 교수는 예술인들의 궁핍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대안으로 예술가들이 터무니없이 낮은 보수를 감내하면서 예술활동을 하지 않도록 사고방식을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와 함께 예술가를 착취하는 비영리 재단 또한 지탄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최근 몇 년간의 비극적인 예술가들의 죽음에서부터 예술가들을 위한 ‘예술인복지법’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예술계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예술가는 가난해야 한다.’는 인식은 청년 예술가들의 생존권을 위협한다.
 지난 역사 속에서 예술은 항상 예술가들보다 숭고하고 위대한 것으로 생각돼 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 숭고한 예술을 만들어내는 사람인 예술가들에게 집중해야 한다. 예술가들의 예술활동 또한 예술 그 자체이기 이전에 ‘노동’이다. 예술을 직업으로 선택했다면, 노동자의 기본적 생존권을 보장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 누구도 예술을 가난해도 된다고 말해선 안 되며 그 어떤 예술가들도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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