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아현동 8차로 아스팔트 지하. 언뜻 보기에 수많은 지하철역 중 하나로 보이지만 여기는 독립 음악인들을 위한 창작 공간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이곳은 음악인들의 아지트, 뮤지스땅스(Musistance)다.
아현역과 애오개역 사이 작고 투명한 유리 박스 하나가 눈에 띈다. 유리박스 입구에는 ‘뮤지스땅스’라는 작은 간판이 붙어있다. ‘뮤지스땅스’는 독립 음악인들의 창작을 지원하는 곳이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노숙자들과 비행 청소년들의 아지트였던 마포 지하대로가 이제는 독립 음악인들을 위한 따듯한 보금자리로 탈바꿈됐다.
 


지하공간의 의미 있는 변신

뮤지스땅스란 음악을 뜻하는 ’Music’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나치에 대항해 용감히 싸웠던 프랑스의 지하 독립군을 의미하는 ‘Resistance’를 합쳐 만들어진 이름이다. 현 음악계의 여러 가지 어려움에 당당히 맞서 자신의 음악을 만들고 있는 독립음악인들의 지하본부를 표방하는 의도로 만들어진 이름이다. 지하로 향하는 가파른 계단을 따라가면 도어즈(The doors), 레니 크라비츠(Lenny Kravitz), 스팅(Sting) 등 많은 유명 음악인들의 포스터들을 구경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22일 처음 개관한 뮤지스땅스는 사단법인 한국음악발전소가 운영하고 있으며 서울 마포문화원의 옛터를 리모델링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마포, 홍대 지역은 독립음악의 중심지로 음악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러나 상업화와 임대료 상승 등의 이유로 창작의 터전을 잃고 다른 곳으로 떠나는 독립 음악인들이 많아졌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창작의 터전을 잃고 떠나는 이들을 위해 음악창작 지원 시설을 조성하기로 했다. 수많은 협의 끝에 문화체육관광부와 마포구, 한국음악발전소는 마포문화원의 옛터를 음악 창작을 지원하는 공간으로 이용하기로 했고, 이 과정에서 ‘뮤지스땅스’가 탄생했다. 특히 지하건물이기 때문에 소음 통제가 쉽고, 많은 인디밴드들의 활동지인 홍대 근처에 자리하고 있어, 음악인들의 창작활동에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한국 음악 시장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독립 음악인들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뮤지스땅스 설립의 가장 큰 목적이다. 이곳에는 개인 작업실부터 밴드작업실, 녹음실 그리고 공연장까지 마련돼 있으며, 직접 작업할 수 있는 공간과 장비를 대여해줘 연습부터 녹음, 공연까지 한 번에 할 수 있다.

 

음악을 사랑하는 자들이여, 모여라
뮤지스땅스 지하는 2층으로 이뤄져 있다. 300평 정도 규모의 이 공간에는 소규모 공연장과 전문 녹음실, 5개의 작업실과 2개의 밴드 작업실이 있다. 지하 1층에는 사무실을 비롯한 녹음 스튜디오와 공연장이 자리하고 있고 그 밑에 층에는 개인 작업실과 밴드작업실 그리고 다목적홀이 있다. 개인 작업실에는 ▲컴퓨터 ▲마스터 건반 ▲마이크 ▲앰프 등이 지원되고 밴드 작업실에는 ▲드럼 ▲키보드 ▲오디오 인터페이스 ▲마이크 ▲앰프까지 한 번에 사용할 수 있다. 특히 지하 2층에는 음악인들이 편안하고, 즐겁게 이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책과 희귀음반, 유명 실황 공연 DVD 등을 비치해둔 것은 물론 대형 TV와 오디오 시설을 갖추고 있다. ‘라이브 땅’이라고 불리는 지하 1층의 소규모 공연장은 공연을 하고 싶어도 마땅한 장소가 없거나 돈이 없는 음악인들을 위한 공간이다. 록, 힙합, 재즈, 클래식, 국악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가능하며 대형기획사에 소속되지 않은 채 음악 창작을 꿈꾸는 독립 음악인들을 포함해 공연을 위해 대관을 원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뮤지스땅스에서는 작업공간 대여뿐만 아니라 독립 음악가들의 자생과 발전을 위한 여러 프로젝트도 함께 운영 중이다. 다양한 프로젝트 중 하나인 ‘같이 공연할까요’는 실력은 있지만 단독 공연을 위한 대관료가 부담스러운 인디밴드를 위해 마련된 공연이다. 수익금은 전액 공연을 하는 뮤지션에게로 돌아가고 뮤지스땅스 측에서는 공연장과 음향장비 그리고 조명감독이나 음향감독 같은 전문인력을 지원해준다. 뮤지스땅스 운영지원팀 기획담당 조영주 씨는 “보통 공연을 할 때 뮤지션들은 관객이 몇 명이 올지 생각을 해야 되고 내가 이 공연을 했을 때 대관료를 얼마 썼고 수익금은 얼마가 생기는지 계산을 안 할 수가 없다”라며 “여기서만큼은 그간 하지 못했던, 진짜 하고 싶었던 공연을 하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지금 현재 가장 활발히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무소속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혼자만의 힘으로 창작활동을 해나가는 음악가들을 위해 기획됐다. 프로젝트 지원 자격은 장르나 팀의 형태 등 어떠한 제한조건도 없지만, 기획사나 레이블에 소속돼 있지 않아야 한다는 유일한 조건이 있다. 최종 10팀을 선발하고 최종 선발된 팀에게는 상금을 비롯해 컴필레이션 앨범을 제작해주는 것은 물론, 연습실 지원, 선배 뮤지션과의 1대1 멘토링, 뮤지스땅스 공연장에서의 단독 공연 등의 다양한 혜택이 주어진다.
이 외에도 실력있는 직장인 밴드를 발굴하는 ‘주경야락’ 프로젝트, 음악인들과 관계자들이 뮤지스땅스에 모여서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뮤지션 네트워킹 파티’까지. 독립 음악인들을 실질적으로 돕기 위한 뮤지스땅스의 지원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음악을 위해, 음악가를 위해
지난 21일, 뮤지스땅스의 공연장에서는 ‘Let’s meet(렛츠 미트)’라는 공연이 열렸다. 이 공연은 가수 ‘유지욱’과 재즈 트리오 ‘3SP’가 만나 재즈와 대중가요를 혼합한 색다른 공연이었다. 가수 유지욱 씨는 만남이라는 주제로 무대를 직접 기획했다. 유 씨는 “싱글 앨범을 2년 전에 2장을 냈는데 별 인기가 없었고(웃음) 잊혀져가는 게 너무 싫어 이번 공연을 기획하고 준비를 했어요”라며 “만남이라는 주제를 잡았는데 팬들과의 첫 만남이기도 하고 앞으로도 만남이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콘서트를 기획하게 되었어요”라고 말했다.
유 씨는 현재 기획사에서 신인들을 발굴하는 헤드 보컬트레이너로서 활동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학교와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기획사에서 풍부한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 활동하고 있으니까 일종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요”라며 “이런 공연을 하게 되면 사실 남는 게 하나도 없지만 그냥 팬들과의 만남이 좋아서 하는 거에요”라고 말했다. 유 씨뿐만 아니라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독립 음악가들이 많이 있다. 그는 “보컬은 조금 낫지만 연주하는 친구들은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적어요. 그렇기 때문에 재정적으로 많이 힘들고 음악 하는 데 있어서 힘든 점이 많죠”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 씨는 “음악의 매력은 제가 노래했을 때 누군가 함께 제 얘기를 같이 공감해줄 수 있다는 거잖아요. 그냥 제가 노래했을 때 누군가 좋아해 주고 누군가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저는 그게 참 매력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유 씨는 노래를 물론 잘하는 가수가 되는 것도 좋겠지만 그저 ‘좋다’라는 의미가 있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대중음악이라는 것 자체가 소통과 공감이잖아요. 저 가수의 음악을 들으면 그냥 좋아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앞으로 이곳이 어떤 곳이 되었으면 좋은지 묻자, 운영 지원팀 담당자 조 씨는 “독립 음악 하시는 분들이 정말 그들의 공간이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눈치 보고 이런 거 없이 진짜 편하게 오셔서 쉬고 창작하시고 연습하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특별한 가사가 아니어도 좋다. 휘황찬란한 멋진 연주가 아니어도 좋다. 때로는 사소한 일상적인 가사가, 잔잔한 멜로디의 연주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다. 프랑스의 지하 독립군을 뜻하는 레지스탕스처럼, 현 음악계의 어려움에 당당히 맞서 싸우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그들의 목소리와 음악에 귀를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

<뮤지스땅스 정보>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238 지하
이용요금: 녹음실- 시간당 110,000원,
개인작업실-시간당 4,500원,
밴드작업실-시간당 15,000원
운영시간: 녹음실-PM 2:00~PM 10:00,
개인, 밴드작업실-AM 10:00~PM 11:00,
공연장-PM1:00~PM 10: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문의: 02)313-7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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