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교제하다 보면 인생의 고민들을 잘 나눌 수 있어요”

 

 

▲ 수줍게 웃고 계신 김민정 간사님.

 

오후 3시 출근해 밤 12시 퇴근. 일반적인 직업들과는 다른 스케줄의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 전교생의 대부분이 기숙사 생활을 하며 RC제도가 있는 한동의 비타민 같은 존재, 바로 생활관 간사님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생활과 안전을 전반적으로 살펴주고, 때로는 말 못할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간사님들은 저마다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까.
1998년 2월부터 한동의 일원이 돼 오랜 세월 지금까지 한동인과 함께해 온 비전관 김민정 간사님(44). 호호 웃으시며, 여학생이 있는 기숙사는 안 가본 곳이 없다고 한다. 마치 간사가 아닌, 늦깎이 학생마냥 학생들과 함께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시는 듯 하다. 때로는 친구 같고, 때로는 언니 같은 여학생들의 소울메이트, 김민정 간사님이 간직하고 있는 한동의 모든 것을 들여다 보았다.


하나님이 불러주신 그곳, 한동을 만나다

Q 한동에 어떻게 오셨나요?
원래 서울에서 방송 관련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직장인 DTS라는 신앙훈련을 받고 있었는데, 그 해에 거기서 가는 아웃리치를 가기로 결심했어요. 그런데 제가 다니던 직장에서 그만큼의 휴가를 내주지 않았죠. 하지만 제가 믿는 하나님은 무언가를 포기할 때 더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라는 믿음으로(웃음) 결국 방송일을 그만두게 되었어요. 실제로 방송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으려는 그 때에 IMF가 터지면서 제가 몸담고 있던 방송업계도 다 파산하게 되었어요. 너무 암담해서 기도밖에 할 수 없어서 기도만 하고 있었는데 아는 선배로부터 한동대학교에서 생활관 간사를 뽑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어요. 저는 당연히 방송 이외의 일은 생각을 안하고 있었기 때문에 갈 생각을 안 했는데, 계속 기도하면서 그곳으로 가라고 하는 감동이 있었어요. 결국 지원을 하게 되었죠. 그래서 1998년 2월, 개교 초창기에 학교에 왔어요.

Q 처음 한동에 오셨을 때, 한동 학생은 어땠어요?
학생들이 굉장히 순수하고 착하고 예뻤어요. 당시에는 ‘한동교복’ 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매년 한동티가 있었어요. 95학번 한동티, 96학번 한동티, 97한동티 이렇게요. 매년 다른 색깔로. 학생들이 정말 그것을 교복처럼 즐겨 입었는데, 여학생들도 화장 같은거 거의 안하고 쌩얼에 청바지에. 그래서 어느 날에 어떤 학생이 화장하고 치마를 입으면 수업에서 발표하는 날이었죠(웃음). 그래서 밖에 나가거나 어디 육거리 가도 옷차림을 보고 “아 저 아이들 한동 학생들 이구나” 하고 알아볼 정도로. 그랬죠.

Q 학생의 스타일이나 모습이 바뀌는 과도기를 보셨겠네요.
네, 저는 지금하고 가장 달라진 모습이 학생들의 옷차림이라고 생각해요. 어느 날부터 한동 학생들이 바뀌고 있구나 하는 것을 볼 수 있었죠. 재외학생 전형이 생기면서, 해외학생들이 들어오면서 학생들의 옷차림이 점점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죠. 그래서 그때 우리끼리 굉장히 놀래고 막 문화충격이다 이렇게 이야기할 정도로(웃음).

Q 여기 계시면 평소 스케줄이 어떻게 되세요?
저희는 평일에는 오후 3시부터 밤 12시까지 일하구요, 3시에 출근을 하면 오후 시간에는 주로 간사님들끼리 모여서 회의가 있고, 저녁 시간부터는 주로 학생들 면담을 해요. 약속 잡아서 면담하고 중간중간에 기본적으로 행정업무도 하고, 학생들 벌점 관리나 이런 부분들도 저희가 총괄하고. 그리고 매주 돌아가면서 새벽 5시까지 당직을 서요. 우리 학교가 위치적으로 떨어져 있으니까 비상시에 학생이 아프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담당해야 할 사람이 필요해서요. 평일에는 각 호관마다 남자분 여자분 한 분씩 당직을 서고, 주말에는 전체 호관에 한 분이 당직을 서요.

Q 스케줄이 빡빡하신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저희는 그 학기, 그 생활관에 입주하는 학생들을 한번 이상 만나는 게 목표에요. 저 같은 경우는 학생들이 풀로 다 차면 208명. 이번 학기에는 빈방도 좀 있고 하니까 197명, 그 학생들과 약속을 잡는 거죠. 학생들의 스케줄이 곧 저의 스케줄이에요. 학생들이 여유가 있는 주간에는 하루에 5그룹까지 만난 적이 있는데, 이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웃음). 그런 면에서 저 스스로도 너무 무리하지 않도록 보통 한 3그룹, 4그룹 정도 만나고 있어요.


한동의 발자취, 한동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다

Q 학생들과 주로 어떤 이야기를 많이 하시나요?
사실 관계에 따라서 굉장히 다른데, 예를 들어 제가 토레이 칼리지 새내기들하고 하는 대화와 4학년 시니어들하고 하는 대화는 굉장히 다르거든요. 그때(새내기 당시)는 아직 생활에 있어서 기본적인 이야기들, 어떤 점이 불편한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 이런 이야기들을 한다면, 이제 3,4학년이 되어 저와 더 깊은 신뢰관계, 친밀한 관계가 형성된 친구들은 훨씬 예민한 이야기도 하죠. 본인의 진짜 고민들을 털어놔요. 그래서 정말 진솔하고 깊은 대화에 목말라 있는 아이들과 교제하다 보면 인생에 대한 어떤 고민들을 잘 나눌 수 있어요. 정말 그런 건 관계의 정도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Q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인가요?
재미있는 일도 있고 감동적인 기억도 있고 아주 힘들었던 기억도 있고 다 있어요. 제가 샬롬에벤호관에 있을 때는 그 호관들은 작기 때문에 훨씬 가족적이었거든요. 어느 날은 1학기가 끝나고 우리 학생회 아이들이 불러서 갔더니 저를 축복해주고 노래 불러주고, 간사님 너무 수고했다고 너무 고마웠다고 서프라이즈 파티를 해줬어요. 학생들하고 파자마 파티를 한다고 휴게실에서 전부다 배게 들고 배개싸움 하면서 놀던 기억도 있고. 비전관에 있었을 때였는데, 하루는 졸업생들이 내려와서 “간사님 잠시만 1층내려다보세요” 하길래 4층 상담실에서 내려다 봤더니 아이들이 불꽃으로 그림 그려서 파티해주고. 하여튼 사람들 되게 많이 만났어요.

Q 간사님으로 계시면서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처음 와서는 친구가 없어서 좀 힘들었어요. 저희는 근무 시간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하기가 힘들다고 해야 하나. 예를 들어서 일 마치고 같이 밥 먹고 차 한 잔 마시고 이런 삶을 살 수가 없어요. 학교 안에 계신 분들과 스케줄도 다 다르고. 또 제가 여기 왔을 때 초기에는 생활관 간사님들과 나이 차이가 너무나 많이 났고, 오히려 학생들과 나이차이가 별로 안 났죠. 그래서 기본적으로 친구가 없는 것이 처음 활동할 때 너무 외로웠어요.

Q 한동대학교 걸즈 아카펠라 1기라고 들었어요.
맞아요. 제가 한동 걸즈 아카펠라(이하 걸즈) 1기였죠. 그 당시 제가 맡았던 호관의 한 여학생이 만든다고 하길래 망설임 없이 참여했죠. 저는 특별히 오디션도 안보고(웃음) 그 해에 정기공연도 했어요. 학관 101호인가 104호에서 했는데 사람들 꽉 차고 그때 퍼포먼스 한다고 제가 빨래판 긁고(웃음).. 그때가 아마 1999년에서 2000년도 사이였던 것 같은데. 그 때가 크리스마스였는데 (그 시기에) 우리 학교가 되게 썰렁하잖아요, 그래서 한동인의 크리스마스가 이렇게 썰렁할 수 없다고 저희가 크리스마스 음악회도 만들었죠. 그때 한동에서 한 노래 하시는 이재영 교수님, 김경미 교수님도 같이 조인해서 그 때부터 지금까지도 친하게 지내고 있죠. 그리고 아무래도 저는 저녁에 일하기 때문에 연습 같은 걸 충실히 할 수가 없었고, (걸즈와는) 1년 정도 함께했죠. 정말 이건 초창기 온 사람의 특권인 것 같아요.

Q 앞으로 한동에 얼마나 더 계실 예정이에요?
저는 제가 학생들과의 이 시간과 만남이 더 이상 별로 재미가 없고 학생들과 세대 차이 같은 것을 느껴서 학생들의 이야기에도 시큰둥하고, 학생들에게 맨날 교훈과 훈계만 늘어놓는 저를 발견할 때. 그러니까 제가 더 이상 학생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함께 공감하고 이럴 수가 없게 된다면 그때는 한동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학생들을 가장 잘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이 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실 그런 고민들을 여러 번 했는데 (제가) 너무 오래있기도 했고, 내가 있는 것이 더 좋은 간사님들이 와서 학생들을 돕게 하는데 있어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기도 하고. 그래서 그렇게 되면 그때 한동을 떠나지 않을까 해요. 그런데 그때가 언젠지는 아직 모르죠. 이번 학기까지가 될지 아니면 몇 년 후가 될지. 진로라는 건 평생 하나님께 물으면서 가니까. 그런데 저 개인적으로는, (은퇴 이후에) 하나님이 저를 선교지로 불러주셨으면 좋겠다 하는 소원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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