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한동인들이 그렇지만 기자의 한 학기는 쉴 틈이 없다. 개강 첫 주에 첫 기사가 나가고, 곧장 4번의 기사를 끝낸다. 이제 한숨 좀 돌리려고 하면 8주차, 중간고사다. 밤을 새워 시험을 치고 나면 다시 기사를 쓴다. 그렇게 3번 더 또 기사가 나가면 이제는 기말고사. 기말고사마저 지나면 종강이다. 하얗게 불태운 한 학기만 남는다. 게다가 과제와 조모임, 퀴즈 등 학교생활부터, 일주일에 서너 번 아르바이트까지 다녀오면 여유란 찾아보기 어렵다. 이쯤 되니,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일이 많다는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곤 한다.
219호와 220호, DMZ국제다큐영화제와 슬로시티 청송에 다녀왔다. 어쩌면 남들이 말하는 힐링 취재, 힐링 기사를 연이어서 했는지도 모른다. 또 본의 아니게 DMZ에서 자전거를 타고 청송 덕천마을에서도 자전거를 탔다. 특히나 이번 호의 기사에서는 청송의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자연을 보고, 고택 길을 걸었다. 정신없이 지나가는 학기에 잠시간의 쉼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취재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문자 그대로 정신없는 학기 중간에 파주로, 청송으로 떠나는 일정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마음은 무거웠다. 취재를 무사히 마쳐야 한다는 생각과 기사에 대한 책임감은 청송에 가서도 따라왔다. 기자의 눈으로 취재해야 할 체크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며 돌아다니니 더욱더 조급했다.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기사 내용을 보고 들어야 했기에 그랬다.
청송은 슬로시티라는 명성과 걸맞게 아름다웠고 여유로웠다. 슬로시티를 슬로시티답지 못하게 하는 것은 여유롭지 못한 나 자신이었다. 덕천마을에서 취재를 모두 끝내니 버스 시간까지 한 시간 반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조산무더기와 생태연못 옆, 나무에 걸려있는 그네와 정자가 있다. 송소고택 앞 자전거를 끌고 그네로 향했다. 취재에 대한 부담감을 떨쳐서일까. 그네에서 본 덕천마을의 풍경이 아름다워서일까. 그제야 주위의 아름다움이 보였다.
푸르른 가을 하늘과, 노오란 벼. 그리고 멋스러운 고택들까지 그곳에 진정한 느림의 미학이 있었다.
한동에도 느림의 미학은 있다. 과제와 시험 때문에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잠시 멈춰 고개를 들면 보인다. 푸르른 하늘이, 쉴 수 있는 벤치가, 둘러볼 풍경이 있다. 슬로시티의 철학이 말해주는 느린 삶에서부터 오는 행복은 꼭 어떤 특별한 장소를 가야만, 특별한 행동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슬로시티란 장소와 풍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뒤돌아볼 여유가 있는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내 앞에도 4번의 기사가 지나가고 중간고사가 앞에 놓여 있다. 뒤돌아볼 여유를 가지라고 말하기엔 결과로 따라올 학점과 후회들이 걱정된다. 그럼에도 중간고사를 준비하며 잠시 학기를 뒤돌아본다. 발행한 기사를 돌아보고 사람도 만나며 짧지만 달콤한 쉼을 가진다.
다시 오지 않을 청춘의 때, 대학생의 시절에 무언가에 미쳐 열정적으로 사는 것은 어쩌면 대학생들만의 특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말한다. 다시 오지 않기 때문에, 여유를 가지고 뒤돌아보자. 그곳엔 그 순간에만 볼 수 있는 느림의 미학이 당신을 반길 것이다.
 

저작권자 © 한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