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을이면 생각나는 제자가 있다. 그는 아버지가 중국 선교사여서 늘 경제사정이 좋지 않았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연구실로 찾아와서는 자기가 받은 가계곤란장학금을 떼서 친구에게 주고 싶다면서 봉투를 하나를 내 밀었다. 그는 또 도움 받을 친구가 알면 곤란해 할 것 같다면서 익명으로 해 달란다. 그의 친구는 가정사정이 어려워서 개강한 지 한 달이 되도록 전공 책을 한 권도 사지 못해서 쩔쩔매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즉시 전화를 걸었고 그녀는 단숨에 연구실로 달려 왔다. 나는 상황을 간단히 설명해 준 뒤 나의 조그마한 성의를 보태서 장학금을 전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장학금 봉투를 받고는 한참이나 울었다. 나도 눈물이 났다. “울지 마라. 이게 한동의 모습이다. 졸업 후 형편이 좋아지거든 너처럼 어려운 학생을 도와 주거라.”고 말했고, “네, 꼭 그렇게 할게요.”라며 연구실 문을 나섰다. 그 후 그녀는 각고의 노력 끝에 졸업을 하고 삼성에 당당히 입사했다.
#2 어느 날 교육개발센터의 한 연구원이 연구실로 찾아왔다. 뜻밖의 방문인지라 잠시 당황했지만 나를 방문한 손님이기에 반갑게 인사를 했다. “교수님, 지난번에 드리겠다고 약속했던 특강 씨디를 가져왔어요. 도움이 되기를 바라요.” 까맣게 잊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느 해 여름 이 센터에서 교수들을 대상으로 기초신학 강좌를 열었는데 참석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어서 녹화 씨디를 요청했었다. 우리대학에서 강의를 하다보면 참 어려운 게 기독교적 관점에서 학문을 조명해 주는 것이다. 신학적인 지식이 일천한 내게는 이것이 늘 골칫거리였는데 씨디에 들어있는 내용을 여러 번 들음으로써 그런 고민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었다.
#3 며칠 전 국토관리원과 관련된 위원회에서 회의를 한 적이 있다. 회의 후에 가진 점심 자리에서 포항시의 어느 과장 분이 대뜸 한동대 칭찬을 했다. 그는 다른 위원들에게 한동대에 가 본 적이 있느냐면서 한동대야말로 포항에서, 아니 한국에서 자랑할 만한 대학이라고 했다. 무슨 말씀인가 했더니 본인이 한동대를 여러 차례 방문을 했었는데 학교 교정에 만난 학생들이 그렇게 인사를 잘 하고 친절하더라는 것이었다. 요즘 그런 대학이 어디 있느냐, 실력이 좋은 사람은 많아도 예절 바른 사람은 적다, 인성교육은 한동대처럼 해야 한다는 등 한동대 얘기를 많이 했다.
한동에는 이런 미담(美談)이 수없이 많고, 대부분 이런 미담을 들어보았거나 직접 경험했을 것이다. 이것은 한동스러움을 대변하는 징표이고 자랑이자 계량화될 수 없는 한동만의 자부심이라 할 수 있다. 한동이 스무 살이 되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와 같은 기독 신앙에 바탕을 둔 한동스러움 덕분에 이제 한동은 남부럽지 않은 대학이 되었다. 최근엔 국가에서 받은 성적도 매우 좋다. 이른바 CK사업, LINK사업, ACE사업에 선정이 됐고 게다가 대학구조개혁 평가 결과 최상위의 A등급을 받아 우리대학의 역량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앞으로의 한동 20년을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하다. 예전의 한동 같지 않다는 얘기가 많이 들리기 때문이다. 학우들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 약속을 꼭 지키겠다는 신념, 누구랄 것 없이 먼저 인사하던 멋진 예절, 전심을 다해 드렸던 아름다운 예배 등이 희석되어 가는 한동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계량화되고 수치화되는 평가를 계속 높여가는 것만큼이나 20여 년 전 개교 때 가졌던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걱정이 기우(杞憂)이기를 바란다. 끝.
 

김종록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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