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유튜브에서 한 동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동영상의 제목은 “Unsung Hero”였고 Thai Life Insurance(타이생명보험)에서 만든 광고영상이었습니다. 동영상에서 남자 주인공은 자신의 일상에서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사소한 것들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며 자신이 도울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낙수(落水)를 받을 수 있도록 화분의 위치를 옮겨주고, 수레를 끄는 아주머니를 도와드리며, 혼자 사시는 할머니 집 문 손잡이에 바나나 한 송이를 걸어놓고 가는 등 자신의 손길이 필요한 상황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도왔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그가 얻는 것도 없고 바뀌는 것도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습니다. 물론 베푼다고 하여 동영상의 남자 주인공이 얻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의 사소한 선행이 그를 더 부자로 만드는 것도 아니었으며,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유명해 지기는커녕 여전히 아무도 모르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 중 한 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얻은 것은 있었습니다. 바로 사랑과 행복 그리고 감동이었습니다. 또한, 그로 인해 조금이나마 세상이 바뀌고 더 따뜻해지는 것이었습니다.
한동에서 우리는 정직이 세상을 변화시키며 성실이 세상을 움직인다고 배웁니다. 하지만 정직도 성실도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세상을 변화시키며 움직이는 힘이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 목숨, 힘, 그리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의 이웃을 우리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은 친절과 배려와 같은 착한 행실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말합니다. 굳이 안 해도 될 것을 왜 사서 고생하느냐고. 요즘 같이 흉흉한 세상에 남 도와줬다가 도리어 손해만 입게 된다고. 그냥 남에게 피해만 안 주며 살면 된다고. 하지만 내가 손해 보기 싫어서,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 해서, 남에게 피해 안 주고 살면 된다는 나 중심의 소극적 태도가 정말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태도이고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우리가 지향하고 또 살아가야 하는 삶일까요?
우리의 이웃은 누구냐는 한 율법 교사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얘기를 하십니다. 강도를 만나 거의 죽어가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며 보살피고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인이야말로 그 사람의 진정한 이웃이며 우리도 이와 같이 하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친절한 말과 행동을 보이는 것,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이고 우리는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작은 친절과 배려가 어떻게 큰 세상을 바꿀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작디작은, 사소한 친절과 배려가 그 주위를 순간이나마 조금 더 따뜻하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으며 그러한 사소한 베풂이 하나하나 모여 결국 세상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이곳에 모인 우리 모두 사소한 것에도 주의를 기울이며 비록 작은 것이라도 친절을 베풀고, 배려하며, 착한 행실을 보이는 아름답고 멋진 한동인이 되길 소망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장 16절


황규상(경영경제 11)

 

저작권자 © 한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