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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즐기고 뛰다 보니 어느새 결승점
장나경 기자  |  jangng@hgu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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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9.03  21:4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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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너들의 생명끈을 뺏기 위해 좀비들이 이리저리 손을 뻗치고 있다. 김남균 사진기자

42.195km를 달리며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전통적인 마라톤의 시대는 이제 갔다. 최근 마라톤이 어렵고 힘든 스포츠라는 고정관념을 깬 많은 대회가 생기고 있다. 마라톤에 새로운 이벤트 요소를 가미한 대회들이 많이 열리면서 마라톤이 이제는 대중적이고 재미있는 하나의 축제가 됐다. 독특한 콘셉트의 페스티벌을 연계한 마라톤이 늘어나면서 마라톤에 추가된 특별한 재미를 찾는 레이스 알파족, 소풍처럼 즐기는 마라톤이라는 뜻의 마라닉(Maranic)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이런 트렌드는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일상의 돌파구가 되고 있다.

달리면서 짝을 찾는 ‘싱글런’, 세계적인 DJ들과 함께 음악을 듣고 춤추면서 달리는 ‘EDM 5K RUN’, 무서운 좀비들과 함께 달리는 ‘좀비런’까지. 다양한 이벤트들로 이뤄진 이색마라톤이 인기다. 이색 마라톤 중 하나인 ‘스파르탄 레이스’는 전세계적으로 한 회 동안 70여 회가 열리며 65만 명 이상이 참가한다. 건강과 재미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마라톤은 일상에서 벗어나 신선한 재미를 찾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펀런’들
작년 9월 ‘EDM 5K RUN(Electronic Dance Music 5kilometers Run)’ 행사가 열려 많은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EDM 5K RUN은 ‘펀런’의 일종으로 마라톤에 뮤직 페스티벌을 접목한 새로운 형태의 스포츠 이벤트다. 펀런은 경쟁보다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으로 말 그대로 즐겁게 달리는 것을 뜻한다. 그 중 EDM 5K RUN는 5Km의 짧은 거리를 달리며 세계적인 DJ들과 함께 음악을 듣고 춤추는 파티형 마라톤으로, 남녀노소 즐겁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고 술 없이 즐길 수 있는 건전하고 유쾌한 문화를 만드는 데 앞장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뿐 아니라 달리면서 짝을 찾는 ‘싱글런’ 또한 젊은 소비자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소셜 데이팅 업체 이음소시어스에서 주최하는 ‘싱글런’은 러닝 코스를 남녀가 함께 달리며 친밀함을 느낄 수 있는 많은 테마존들이 구성되어있다. 안개로 뒤덮인 흐릿한 앞길을 뚫고 나가야 하는 안개존, 우산을 쓰고 함께 달려야 하는 레이닝존까지 서로를 의지해야만 통과할 수 있는 코스들로 이뤄져 있다. 마라톤이 끝나고 난 후에는 이음소시어스만의 독자적인 오프라인 모바일 매칭 시스템을 통해 참여자 누구나 자유롭게 마음에 드는 사람과 연락처를 주고받을 수 있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히트를 한 이색 마라톤도 있다. 형형색색의 컬러 파우더를 맞으며 남녀노소 달리기를 즐기는 ‘컬러런’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컬러런은 2012년 1월에 설립돼 건강과 행복을 추구하는 이벤트로 전세계로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 지난 7월 18일, 서울에서 열린 컬러런은 올해로 3회째를 맞았으며 1만 6000여 명의 관객을 운집했다. 전체 참가자의 67%가 여성으로, 건강하고 트렌디한 젊은 여성층 사이에서 특히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대학교 교수 김난도 씨는 자신의 책 <2015 트렌드 코리아>에서 소비자가 이색 마라톤을 찾는 이유에 대해 “현대인들이 무기력한 일상을 스스로 박차고 나와 자신의 몸을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삶의 행복을 찾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움직임이 일종의 힐링이자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펀런의 인기 속에서 매 회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성황리에 열리고 있는 ‘좀비런’ 행사의 현장으로 직접 가봤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마라톤 ‘좀비런’
더위가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온다는 처서 하루 전. 곧 가을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덥고 습한 날씨에도 좀비런이 열리는 부산 아시아드 경기장에는 마라톤을 참여하기 위한 많은 인파로 붐볐다.
좀비런은 마라톤에 ‘좀비’라는 콘셉트와 ‘추격전’이라는 참신한 게임요소를 합쳐 만든 새로운 형태의 생존 액션 게임이다. 참가자들은 허리에 달린 생명끈를 지키며 여러 가지 미션으로 이루어진 총 3km의 레이스를 완주해야 한다. 좀비런은 다른 펀런 행사들과 달리 스토리텔링 형식을 갖는다. 일본 방사능으로 인해 닥터 백신개발을 진행하던 Z박사가 권력을 잡기 위해 실험 중 발견한 좀비 바이러스를 한국에 퍼뜨리게 된다는 기본적인 세계관 하에 게임이 진행된다. 이 사태로 인해 부산을 제외한 전 국토가 닥터 Z에 의해 점령당하고, 게임에 참가하는 러너들은 여러 가지 테스트를 거쳐 시민군이 돼 혼란에 빠진 한국을 구해야 하는 미션을 완수해야 한다.
어둑어둑해진 저녁 6시. 참가자들은 모두 허리에 생명끈을 질끈 매고 출발선 앞에 선다. 좀비들에게 생명끈을 뺏기지 않기 위해 저마다의 방법으로 생명끈을 최대한 동여매며 최후의 시민군이 되리라 각오를 다진다. “둥둥둥둥둥둥” 군인분장을 한 사람들이 나란히 서 난타를 하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첫 번째 관문. 그물이 쳐져 있는 곳을 좀비들 몰래 빠져나가야 한다. 곳곳에 있는 좀비들이 그물 밖에서 빠른 손놀림으로 생명끈을 노린다. 불쑥불쑥 숨어있던 좀비들이 손을 뻗친다. 좀비들을 피해 계단을 내려가면 흐느적흐느적 수십 명의 좀비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야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된 것 같다. 계단을 내려가자마자 좀비들 사이를 헤쳐 냅다 뛴다. 두 명의 좀비가 앞을 가로막는다. 순간적으로 잠깐 당황했지만 살짝 몸을 틀어 뒤도 안보고 계속 뛰었다. 참가자들 모두 거친 숨을 쉬며 잠시 달리기를 멈춘다. 걷는 중에도 좀비들이 갑자기 덮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세 번째 관문, 잠자는 좀비들을 깨우지 말라.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캄캄한 복도. 좀비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 모두 도둑걸음으로 살금살금 발을 내디딘다. “꺄아아악” 좀비들을 보고 놀랐는지 누군가 비명을 지른다. 큰일 났다. 좀비들이 모두 깼다. 적막이 흐르던 곳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살금살금 걷다가 좀비들을 헤쳐 빠르게 빠져나갔다. 숨이 차 힘들어 죽겠다는 생각이 들 찰나에 또 좀비들이 빠른 스피드로 달려온다. 좀비들이 이리저리 덤비니 더는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았던 다리를 누구보다 빨리 움직였다. 다음 관문은 모태 솔로 좀비들이 모인 수용소다. 남녀 짝을 이뤄야 좀비들이 건드리지 않는다. 다들 쭈뼛쭈뼛. 그러나 이내 살기 위해 옆 사람의 손을 꼭 잡는다. 강렬한 빛과 좀비들에 맞서 탈출해야 한다. 숨이 차니 달리기가 점점 느려진다. 어두운 그림자가 재빠르게 앞으로 다가온다. 위험이 감지되자 비명을 지르고 팔을 휘두른다. 그러나 좀비는 실소를 터뜨리며 빠른 손으로 생명끈 하나를 낚아챘다. 안타까워할 새도 없이 여러 명의 좀비에게 둘러싸였다. 이리저리 뻗쳐대는 손에 속수무책으로 생명의 끈을 하나 더 뺏겼다. 이제 생명끈이 하나밖에 안 남았다. 드디어 마지막 관문. 주사기를 하나씩 받아 백신을 채워야 하는 미션. 백신이 든 박스에 다다를 때쯤, 경적소리와 함께 좀비들이 달려든다. 여기저기서 물줄기가 쏟아지고 옷이 반쯤 젖었을 때 결승점에 무사히 도착했다. 주사기에 채운 백신을 서로의 팔에 놓아주며 훈훈하게 끝났다. 좀비들을 피해 생명끈을 지켜낸 러너들은 무서움의 비명이 아닌 환희의 비명을 다시 한 번 지른다.
러너로 참여한 박지혜(28) 씨는 “너무 힘들어요. 좀비들이 너무 열심히 뛰시더라고요. 무서웠는데 재밌었어요.”라고 소감을 밝혔다. 좀비로 참가한 문주원(25) 씨 역시 “재밌어요. 사람들이 좋아해주니까 더 좋아요. 저희는 알바생이 아니라 자원봉사자거든요. 재미를 위해서 참여하니까 더 열심히 뛰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지루한 일상에서의 탈출
좀비런을 주최한 ‘커무브’ 회사 대표 이사 원준호 씨는 많은 이색 마라톤 중에서도 좀비런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지루한 운동을 넘어서서 재밌게 운동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가 사람들의 생존본능을 자극하는 기제를 활용했다는 점이죠.”라고 말했다. 단순히 누군가가 쫓아오는 것이 아닌 글로벌하게 인기를 끌고 있는 캐릭터성이 강한 좀비라는 몬스터가 더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원 대표의 의견이다.
원대표는 이색 마라톤이 인기를 끌게 된 가장 큰 이유에 대해 현대인들이 여가에 대한 욕구가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기존에 형성된 여러 종목화된 테니스, 축구 같은 스포츠는 배워야하고 잘해야만 재밌는데 마라톤은 (달리기만 하면 되는) 가장 쉬운 플랫폼인거죠. 이 소재를 살짝 비틀어서 재미있게 만들어 사람들에게 접근하기 쉽게 만든 점이 인기 요인이라고 생각해요.”
달리기 좋은 날씨다. 일상의 지루함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하루쯤 마음껏 놀고, 즐기고, 뛰어보자. 이색 마라톤을 통해 건강한 에너지를 발산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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