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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포항의 문화재, 어디까지 알고 있니?
김확정 기자, 강주연 기자  |  kimhwj@hgupress.com, kangjy@hgu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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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6.03  23: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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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유현


졸업을 앞둔 한동대 08학번 A 씨. 그는 2008년도부터 햇수로만 6년째 포항에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가본 곳이라곤 구룡포, 영일대, 먹어본 것이라곤 물회, 과메기뿐이다. 그런 그가 졸업하기 전, 마지막 방학을 맞아 포항 여행을 떠나보려 한다. 한동대를 품고 있는 포항은 국보 2점, 보물 6점, *사적 2점, *명승 1점, 천연기념물 4점이 있는 지역이다. 그와 함께 포항의 선사시대, 삼국시대, 조선시대, 그 문화 ∙역사적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사적: 역사상 중대한 사건과 시설의 자취
*명승: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예술적인 면이나 관상적(觀賞的)인 면에서 기념물이 될 만한 국가 지정문화재


한국 최대의 암각화군, 영일칠포리암각화
   
▲ 곤륜산 201번지에서 볼 수 있는 암각화 3개 중 가장 잘 알려진 각화다. 청동기 시대 사람이 만들었다고 하기에 매우 정교하며, 현재까지 보존이 잘 돼 있다. 이영건 사진기자

약 3천 년 전, 한반도에는 청동기 문명이 시작됐다. 이를 계기로 사람들은 사냥과 식량을 구하는 것이 좀 더 수월해졌다. 사냥의 성공을 위한 제사와 의식도 함께 시작됐다. 사람들은 의식의 그림들을 바위에 새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동물이나 제사 의식을 치르는 제사장의 모습에서 바위로 신상을 만들거나 그림을 새겨 섬기는 것으로 대체했다.
 이처럼 바위의 표면을 쪼아내거나 갈아 파거나 그어서 어떤 형상을 새겨 놓은 것을 ‘암각화’라 말한다. 암각화는 청동기시대의 작품으로 규정될 뿐 그 내용이나 유래, 작자를 확인하기 어렵다. 바위에 모양을 새긴 이유도, 사람도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이를 통해 글로 기록되지 않았던 옛 시대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지난달 25일, 포항시 북구 흥해읍 칠포리의 곤륜산을 찾았다. 이곳에서도 3천 년 전 탄생한 작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칠포리 해수욕장의 옆에 있는 곤륜산의 계곡 옆을 자세히 보면 기호가 새겨져 있는 바위들이 있다. 1989년 처음 발견된 이후 1994년까지 추가로 발견된 영일 칠포리 암각화 군은 한국 최대 규모의 암각화 군으로 알려졌다는 표지판을 볼 수 있다. 1989년 처음 발견되고 1년 후인 1990년 8월 7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49호로 제정됐다.
 암각화는 곤륜산의 세 지역에 분포돼 있다. 그중 칠포리 201번지에 있는 암각화는 3개이다. 가장 대표적인 암각화는 깊이 3m, 높이 2m의 사암으로 이루어진 바위에 새겨져 있다. 계곡 밑에 있는 암각화는 깊이 1.4m, 높이 2.2m의 크기로, 원위치에 있던 것이 분리된 것으로 본다. 그리고 그곳에서 20m 정도 떨어진 곳에 새겨진 암각화가 있는데 다른 두 개에 비해 작고 미완성 상태로 남아있다. 칠포리 201번지 외에도 해안도로를 따라서 암각화 군이 이루어져 있다. 334-1번지와 749번지에서도 각화가 새겨진 암각화를 찾아볼 수 있다.
 암각화를 새기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 기법이 있는데 그 기법에 따라 암각화의 종류가 나뉘기도 한다. ▲단단한 돌이나 다른 도구를 이용해 두드려 쪼아서 형상을 만든 쪼아낸 암각화(peeking) ▲쪼아낸 뒤에 그 부분을 갈아 더 매끈하게 만든 갈아낸 암각화(grinding) ▲날카로운 금속 도구로 바위 면을 그어 가는 선으로 그림을 묘사한 그어낸 암각화(carving)가 있다. 영일칠포리암각화군의 각화들은 쪼아낸 암각화로 구분된다.


포항이 간직한 국보, 포항 냉수리 신라비
   
▲ 면사무소 앞마당에 위치한 국보 264호 ‘포항 냉수리 신라비’는 현존하는 신라비 중 두 번째로 오래됐다. 이영건 사진기자

국보 제318호 ‘포항 중성리 신라비’와 국보 제264호 ‘포항 냉수리 신라비’는 포항에서 발견된 국보다. 그중 중성리 신라비는 가장 오래된 신라비로 일컬어지는데, 현재는 국립경주문화재청에서 보존하고 있다.
 냉수리 신라비는 중성리 신라비 보다는 2년 늦게 만들어졌지만, 포항시 북구 신광면사무소에서 만나 볼 수 있다. 냉수리 신라비는 비석에 ‘계미년(癸未年)’이라는 간지가 쓰여 있고, ‘지도로 갈문왕(至都盧 葛文王)’이라는 칭호가 있어 신라 지증왕 4년(503년), 국가에서 세운 비라고 추측된다. 당시 신라 시대의 모습을 알 수 있어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 냉수리 신라비는 1989년 3월 말, 마을 주민 이상운 씨가 밭갈이하던 중 발견했다.
 포항에 남아 있는 유일한 국보급 문화재, 냉수리 신라비를 보기 위해 신광면사무소 앞마당을 찾았다. 사다리꼴 모양의 냉수리 신라비는 앞, 뒤, 윗면에 모두 글자가 새겨 있다. 자연석 화강암을 비석으로 앞면은 다듬었지만, 윗면과 뒷면은 다듬지 않고 그대로 글씨를 새겼다. 비문은 앞, 뒤, 윗면에 통 321자가 음각으로 새겨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맨눈으로 보기에도 ‘己(기)’, ‘事(사)’ 등 몇 자가 읽힐 정도로 글씨는 비교적 또렷했다.
 냉수리 신라비에는 절거리(節居利)라는 사람의 재산 소유와 유산상속 문제가 *이두 문자로 기록돼 있다. 자세한 내용은 ▲절거리라는 개인의 특정 재산 인정 ▲절거리가 죽으면 유산은 자손에게 상속 ▲지금까지 그 재물을 차지해온 말추와 사신지, 두 사람은 앞으로 이 재물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명령 ▲이를 어길 시에는 처벌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이 비석을 통해 각 부의 여러 귀족이 재산권 분쟁을 처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 말은 초기 율령체제였던 당시 신라 왕권이 매우 미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냉수리 신라비는 현재 면사무소 앞 작은 *비각 안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사방이 뚫린 비각과 경비 업체 로고 외에는 별다른 조치가 있지 않았다. 매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황인 향토사학가는 “냉수리 신라비가 비각에 보존돼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비바람에 쉽게 노출돼 있는 것은 문제”라며 “그대로 둘 경우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포항 출신의 또 다른 국보 중성리 신라비처럼 경주로 호적을 옮기는 상황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포항의 문화재 보존에 더 깊은 관심이 필요하다.

*이두(吏讀):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말을 적는 표기법
*비각(碑閣): 비석을 보호 또는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건축물


조선시대의 포항을 담다, 영일민속박물관

때는 1835년 조선 헌종 *원년. 당시 흥해군의 동헌으로 쓰인 제남헌이 있었다. 그 동헌은 100년이 지난 1983년, 박물관으로 개조돼 개관됐다. 영일군과 영일 문화원은 ‘점차 사라져 가는 향토 풍습 및 민속 유물을 영구 보존해 후세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역 주민들과 뜻을 모은 것이다. 이후 1987년, 영일민속박물관은 국내 최초로 문화부(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민속박물관으로 인정받았다.
 박물관은 한동대에서 차로 15분 정도 거리에 가깝게 위치해 있으며, 흥해읍 성내리 한복판에 마을과 함께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입구에 서면 주요 전시물들이 한눈에 보일 만큼 영일민속박물관은 아담하다.

   
▲ 박물관 중앙에 자리 잡은 600년 된 ‘회화나무’ 두 그루. 이영건 사진기자
 박물관에 들어가기 전, 먼발치에서부터 눈에 띄는 두 그루의 큰 나무가 있었다. 경상북도의 보호수, 600년 된 회화나무들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그 크기에 압도당하게 된다. 나무 제 스스로도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지, 몇몇 굵은 나뭇가지에는 마치 목발을 한 것처럼 지지대로 무게를 지탱하고 있다. 전해져 내려오는 말로는 호수 지역이었던 이 일대의 수질이 나빠 피부병 환자가 성행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회화나무 심기를 권장했고, 그때 심어진 나무가 지금까지도 위용을 뽐내고 있다고 한다.
   
▲ 1906년 경북 영천에서 조직된 산남의병의 항일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는 ‘한말의병 항왜혈전 기념비’. 이영건 사진기자

 입구에서 오른편을 보면 성인 어른 키를 훌쩍 넘는 비석이 하나 있다. 이것은 1967년에 세워진 ‘한말의병 항왜혈전 기념비’다. 1906년 경북 영천에서 조직된 산남의병의 항일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고자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 시설로 만들어졌다. 비석에는 ‘영남지방의 애국지사들이 의병을 일으켜 이를 산남의진이라 명명하였고, … 제3대 최세윤 대장이 산남의진을 수습하여 일군과 항쟁을 계획하다 체포되어 순국하였습니다’라는 내용이 한자로 적혀 있다.
   
▲ 영일민속박물관 가장 안 쪽 늠름한 건축물이 ‘제남헌’이다. 이영건 사진 기자

 박물관의 가장 안쪽에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제남헌’을 만날 수 있다. 제남헌은 겉보기엔 화려하지 않지만, 근엄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건물이다. 지방의 수령들이 업무를 보던 곳이 동헌인데, 제남헌은 흥해의 동헌이었다. 언제 처음 지어진 지 알 수 없으나, 조선 헌종 원년 다시 지어진 진 이후로 180여 년이 됐다. 조선후기 전국 지방 읍의 행정사례집 <여지도서>, 조선후기 경상도 71개 읍의 행정사례집 <경상도읍지>에 제남헌이 흥해 읍성 중심에 자리 잡고 있음이 기록돼 있기도 하다. 또한, 현존하는 동헌 건물이 많지 않기 때문에 동헌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로 쓰인다.
   
▲ 한국사 책에서만 보던 흥선대원군 ‘척화비’가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도 있다. 이영건 사진기자

 제남헌 앞에는 2001년, 흥해읍 칠포리 암각화군 앞에서 발견된 흥선대원군 ‘척화비’가 자리 잡고 있다. 문화재청에 등록된 척화비는 전국에 총 18개지만, 영일민속박물관의 척화비는 등록돼 있지는 않았다. 한국사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척화비는 조선 고종, 흥선대원군 통치 시기에 서양 이양선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워진 비석이다. 그 내용은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자는 것이니,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우리들의 만대자손에게 경계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우다’라고 적혀있다.
 이 외에도 영일민속박물관에는 전시장 2곳과 야외 전시장에 농기구, 관혼상제복, 고서, 연자방아, 초가집 등 옛날 조상들이 사용했던 일상용품 4,600여점이 전시돼 있어 포항 조상들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다.

*원년: 조선시대 기년법으로 국왕의 즉위한 다음 해를 이르는 말


2.5km의 소나무 숲, 포항 북송리 북천수
   
▲ 국내에서 3번째로 긴 소나무 숲인 북천수는 주민들의 산책지와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도 사용되고 있다. 이영건 사진기자
   
▲ 이영건 사진기자

포항시 북구 흥해읍 북송리의 북천변을 따라가 보면 2.5km로 이어진 북천수를 만날 수 있다. 북천수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길게 선으로 이어진 소나무숲이라고 할 수 있다. 북천수의 입구에서 볼 수 있는 장승을 시작으로 숲길을 따라 수백 개의 장승 작품이 길에 늘어져 있다. 표지판에는 2006년 3월 28일에 천연기념물 제468호로 지정됐다는 글이 쓰여있다. 더운 날씨를 피해 마을 주민들이 피서를 오기도 하고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사용되고 있다.
 ‘조선 철종 때 흥해 군수 이득강이 읍성과 흥해의 진산인 도음산의 맥을 보호하고 북천에 둑이 없어 장마만 지면 수해가 나는 것을 보고 군민을 동원하여 북천 제방을 쌓고 4리에 뻗친 북천수를 조성하였다’라고 쓰여있는 <한국지명총람>을 보면 북천수의 유래를 알 수 있다. 한국지명총람뿐만이 아니라 규장각에 소장된 <흥해현지도>, <조선의 임수>에 조사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예부터 존재해 오랜 기간 쉼터가 되어준 숲임을 알 수 있다.
 ‘조선의 임수’ 기록에 따르면 숲의 길이가 2,400m, 너비는 150m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의해 나무 대부분이 잘려 훼손됐다. 이후 2005년, 숲 복원사업을 목적으로 다시 정비했다. 현재 규모는 길이 1,879m, 너비 70m로 조성됐다. 과거에 비하면 그 규모가 줄었지만, 한국에서 현존하는 숲 가운데 세 번째로 긴 숲이다.
 흥해의 주요한 곡창지대였던 이곳에 수해로 계속해서 피해가 있자 철종 때 제방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후, 북천수는 수해방재림의 역할을 맡고 있다. 또한, 방풍림의 역할도 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정월대보름에 마을사람들과 제사를 지내는 등 문화적 역할도 하고 있다.

 
   
▲ 일러스트 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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