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 당신에겐 어떤 시간인가. 나에게는, 1교시 수업이 있는 날엔 졸린 수업시간, 2교시가 있는 날엔 10분이라도 더 자고 싶어 침대에 몸을 눕히는 시간, 3교시가 있는 날이면 아직 세상 모르고 자고 있을 시간이다.
오전 공강이던 지난주 수요일, 좀 더 자고 싶어 눈을 감고 있다가 9시가 가까워지는 걸 보고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수첩과 펜을 들고 생활관 청소근로자 어머님을 만나기 위해 방을 나섰다. 이것이 지난 그 날의 나의 아침 9시였다.
생활관 청소근로자 어머님들에게 9시는, 각자 가정에서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등교’해 일 할 준비를 다 마치고 일터에 나가 있는 시간이다. 쉴 틈 없는 하루 일과의 시작이다. 어머님과의 3시간 동행 취재 후 나는, 게으르던 나의 아침 9시가 부끄러워졌다.
나는 나름대로 ‘생활관 근로자’ 문제에 관심 있는 깨어있는 학생인 줄 알았다. 지난해 본지에서 교내 비정규직 문제를 다룰 때, 나름대로의 관심을 쏟았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어머님과 마주하면 ‘밝게’ 인사했다.
그리고 내 방 쓰레기통을 비우면서 쓰레기통 안에 들어있는 플라스틱류 몇 개를 ‘손수’ 옮겨보기도 했다. 그마저 내가 귀찮을 때는 쓰레기통을 통째 부어버리기 십상이었지만. 그런데 이 모든 게 어쩌면 ‘자기 만족적인’ 관심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3시간이면 충분했던 것이다.
1층부터 4층까지 그림자처럼 어머님 뒤를 따라다녔지만 한 순간도 앉아있지 못했다. 빗자루질, 대걸레질, 기름걸레질. 한 층만 하기에도 힘든데 4개 층을 오전 안에 해야 했다. 학생들이 음식을 해먹고 자기 설거지를 개수대에 쌓아놓곤 하는데, 그 설거지도 꼼짝없이 어머님 몫이다. 학생들은 어머님을 진짜 엄마로 착각하고 있나 싶기도 했다.
분리수거는 심각했다. 월요일 아침은 특히 지옥이다. 쓰레기통 사방으로는 분리수거되지 않은 쓰레기들이 산처럼 쌓인다. 분리수거통 앞에서 생각 없이 쓰레기를 버리면서도 다음날이면 깨끗해지는 쓰레기통에, 누군가는 하겠지 하며 편한대로 버리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잠깐 물 한 모금 마실 시간도 없다. “이 일을 어머님은 매일매일 하시는 거죠?” 알면서도 뻔한 질문을 했다. 어머님을 보면서 마음이 계속 불편했지만, 계속 서 있으면 다리 아프다며 의자를 하나 내주시는 어머님은 “우리는 이제 적응해서 괜찮다”라며 웃으셨다.
오전에는 수업 때문에 보통 생활관에 있지 않아서, 있어도 보통 방에만 있어서 어머님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몰랐다. 심지어 복도 청소를 매일 하는지도 몰랐다. 휴게실 책상은 당연히 깨끗한 거였고, 화장실 청소는 가끔가다 청소하는 시간에 씻으러 가면 좀 기다려야 하는 그런 귀찮은 일이었다. 어머님들의 ‘생업’이 말이다. 적어도 어머님의 아침 9시를 함께 해보기 전에는, 나는 그랬다.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매일 설거지를 하다 보면 학생들이 먹는 갖가지 종류의 면발을 지겹도록 본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았다. 이런 여러분들의 ‘어머님’께 음료수라도 한 잔 건네보자. 아니 그 전에 쓰레기부터 한 번 생각하고 버려보자. 진정한 ‘관심’은 ‘꾸준한 행동’이다. 아니, 관심이라는 거창한 단어 말고. 지금 여러분 손에 있는 빈 캔 하나부터 분리수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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