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어프리, 자유로운 세상
장애인들의 장벽 허무는 배리어프리를 아시나요?

▲ 배리어프리 영화는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상영된다. 사진출처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버스정류장의 버스도착정보(BMS) 전광판을 통해 우리는 다음 버스의 도착시각을 본다. 하지만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에게 버스도착정보 전광판은 다음 버스에 내가 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보여준다. 전광판에 뜨는 ‘저상’이라는 단어 유무 때문이다. 저상은 바닥이 낮고 출입구의 계단이 없는 저상버스를 의미한다. 기존 버스의 높은 계단은 장애인들에게 장벽이 된다. 이런 장벽을 허물기 위한 저상버스는 장애인을 위한 일종의 배리어프리(barrier free)다.

배리어프리 통해 물리적 장벽 허물어
‘배리어프리(barrier free)’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장벽(barrier)으로부터 자유로운(free) 세상을 만들자는 뜻이다. 1974년, ‘UN 장애인 생활환경 전문가 협회’가 <장벽 없는 건축설계>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이후 건축분야에서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건축분야를 넘어 사회적 약자인 고령자를 비롯한 장애인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물리적 또는 제도적 장벽을 허물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배리어프리는 휠체어가 이동할 수 있게 계단 대신 경사로를 만들고 공공시설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것이다. 이렇게 건축물과 공공시설에서부터 시작됐던 배리어프리는 생활 전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샴푸와 린스의 용기를 구별하기 힘든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샴푸의 뚜껑을 톱니 모양으로 만든 상품이 있다. 또한, 손가락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진 가위가 대표적인 배리어프리 제품이다.
 생활공간에도 배리어프리가 늘고 있다. ▲현관, 복도, 욕실 등에 손잡이 설치 ▲계단에 난간과 미끄럼 방지시설을 설치 ▲복도, 출입구의 폭을 넓게 설계해 짓는 배리어프리 주택이 그 예다. 처음 집을 지을 때 배리어프리를 시행함으로써, 장애인이 주거 시설을 정하는 데 물리적 제한을 적게 받게 한 것이다. 이런 배리어프리는 장애인들의 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을 넘어 문화생활에서도 존재한다.

▲ 일본의 문구류 전문기업 고쿠요가가 만든 손가락이 없어도 쓸 수 있는 가위 사진출처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영화
배리어프리 영화는 시각, 청각 장애인들이 영화감상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전까지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에게 영화라는 매체는 ‘그림의 떡’이었다. 시각장애인은 청각에 의존해야 하지만 대사만으로 영화 전체를 파악하기에 역부족인 까닭이다. 청각장애인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눈으로 배우들이 하는 행동은 파악할 수 있지만, 빠르게 지나가는 장면 속에서 배우들의 대사를 읽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도 함께 즐길 수 있는 배리어프리 영화가 상영된다. 영화는 박물관의 강당에서 영화가 상영됐다. 강당은 배리어프리를 체험하고자 온 관객들로 자리를 꽉 찼다. 체험을 위해 눈을 감고 영화를 보거나 귀를 막고 영화를 듣는 이들도 있었다.
 기자는 지난달 28일, ‘(사)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이하 위원회)’의 주최로 상영된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을 관람할 수 있었다. 눈을 감으면 주인공의 행동이 해설로 들렸다. 보지 못하기에 파악하기 힘든 화면 속 상황이 음성으로 자세하게 설명된다. 주인공인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의 대사 사이로 “트럭 한 대가 노란 꽃이 피어있는 시골길을 달리고 있어요”라는 해설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음성이 들리지 않는 청각장애인들 위해 효과음과 배경음악이 자막으로 표현된다. 모든 대사도 자막 처리돼 이야기를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음악을 느끼지 못하는 청각장애인들에게 영화의 분위기를 파악하게 도와주는 것이다. 화면에서는 자막으로 ‘밝고 경쾌한 음악’이라는 배경 설명이 적혀있는 식이다.

이제는 다 함께, 배리어프리
2011년 10월 발족된 위원회는 배리어프리 영화를 제작하고 배포했다. 지금까지 ▲블라인드 ▲마당을 나온 암탉 ▲도가니 ▲완득이 ▲도둑들 ▲7번방의 선물 등 많은 한국영화들이 배리어프리 영화로 제작됐다. 위원회의 김수정 사무국장은 “2010년 일본의 ‘제1회 배리어프리사가영화제’에 참석했는데,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활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만들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배리어프리 영화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장애인관람환경개선사업의 일환으로 CGV 23개극장에서 한 달에 3회씩 상영된다. 그 외, 16개 극장에서 월 1~2회 상영된다. 김 사무국장은 “시각, 청각장애인들도 영화에 대해 비장애인과 똑같은 반응을 한다”라며 “재미없는 영화는 장애인들에게도 재미가 없다. 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처럼 똑같이 영화를 즐길 수 있다”라고 말했다.
 장애인들을 위한 배리어프리 영화뿐만 아니라 배리어프리 연극도 생겨나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에는 배리어프리 연극인 <달팽이의 꿈>이 가톨릭청년센터에 올랐다. 그뿐만 아니라 장애인들이 즐기기만 하는 수동적 역할에서 함께 만드는 주체자가 됐다. 시각장애인들과 청각장애인이 함께 하는 뮤직드라마 <당신만이>가 서울연극센터에서 열렸다.

제한된 문화적 접근성, 아직 부족함 많아
하지만 아직까지 배리어프리 영화에 대한 사회적 장벽은 턱없이 높다. 배리어프리 영화를 제작하는 비용이 2000만원 정도가 들어 수익성을 따지는 제작사의 입장에서는 제작을 꺼리게 된다. 때문에 배리어프리 영화제를 제작하는 영화사가 적다. 배리어프리를 즐기고자 하는 장애인들의 선택의 폭이 굉장히 좁을 수 밖에 없다.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도 매우 적다. 실제로 ‘마이 백 페이지’는 일본 제작사의 요청이 있어 배리어프리 영화로 제작됐지만 제한된 상영관에서 제한된 상영일로 방영됐다. 비장애인들에게 불필요한 설명과 대사 자막 때문에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김 사무국장은 “배리어프리 영화는 많은 이들의 재능기부로 제작된다”라며 “많은 배우들이 해설자로 도움을 주고 영화의 의도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영화감독님들이 직접 제작에 참여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달 28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방영된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의 해설은 배우 유지태 씨의 재능기부로 이뤄졌다.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배리어프리 영화도 부족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위한 배려도 부족한 상황이다.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을 위한 영화관 장애인석 설치가 법으로 보장되었지만, 시늉에만 불과하다. 영화관 장애인석의 81.1%가 가장 첫째 줄에 배치되어 있어 장애인들은 영화를 보기 위해 휠체어를 이끌고 가장 첫째 줄에 내려가 고개를 수직으로 들어 봐야 하는 상황이다.
김 사무국장은 “우리 모두는 나이가 들면 저절로 눈과 귀의 능력이 떨어지는 예비장애인들이다”라며 “성숙한 사회는 자기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는 것이 아닌 주변에 관심을 가지는 사회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배리어프리 영화 상영 안내>

일시: 4월 18~19일
장소: 한국영상자료원 (마포구 상암동)
상영작: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 7번방의 선물 / 블라인드 / 변호인

일시: 4월 25일
장소: 서울역사박물관 (종로구 신문로2가)
상영작: 터치 오브 라이트

자세한 사항은 (사)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http://blog.naver.com/kobaff)에서 확인하세요.


 

저작권자 © 한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