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말들과 사건이 있었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총학생회 후보가 등장하였고, 부족한 시간에도 성심껏 준비했다고 생각되는 공약과 함께 공청회는 진행되었다. 나는 조금이나마 양심의 가책을 덜기 위해 청중 질의 시간에 늦게나마 참석하면서 지난 4년동안 학관 101호 상단에서 긴장한 모습으로 앉아 있던 여러 캠프 후보자들을 회상해 보았다. 그 중에는 말도 잘하고 세세한 부분까지 준비가 잘 되어 있던 후보가 있었던 반면, 현실성 없는 공약으로 청중과 패널들에게 집중포화를 받는 후보도 있었지만 그들 모두는 하나같이 “하나님의 대학”을 이야기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어느 총학도 나에게 “하나님의 대학”이 무엇인지, 적어도 자신들이 그리고 있는 “하나님의 대학”이 무엇인지 말해주었다는 기억이 없다. “기도”, “하나님의 뜻”, “인도하심” 따위의 빈 껍데기 단어들을 수학 공식처럼 나열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신앙적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했던 후보들조차 “어떠한 행동” 또는 “공약의 구체성”을 강조할 뿐, 그것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어차피 결론이 없거나 지루하거나 일의 진행을 방해하는 것쯤으로 치부하였다. 공청회에서 후보자들에게 던져지는 질문 역시 공약의 실현가능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뿐이다.
 근본적인 논의를 피하려는 경향은 다른 곳에서도 경험할 수 있었다. 커리큘럼개선위원회는 커리큘럼에 대해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고민하고 모아진 학생들의 의견을 학교에 전달할 수 있는 기능을 하도록 발족되었다. 그러나 거기서 다루어지는 주제들은 (내가 참여했을 적에는) “정보처리개론을 폐지”해야 된다거나 “전공 영어강의가 부족하다”거나 “공간이 부족하다”는 피상적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의견을 모으는 입장에서는 이러한 구체적인 논의들이 정리하기도 쉽고 학교에 전달하기도 편하겠지만, 학교 리더쉽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소통의 의지가 강하고(덜 중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이런 문제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또, 전공에 있어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만들어놓은 체계 앞에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우리가 최소한 커리큘럼에 대해 떠들 수 있는 것은 한동의 교육, 즉 지성, 영성, 인성, 실무 교육 같은 것들이 하나님의 대학에 어울리는지를 묻는 일, 즉 “하나님의 대학”이 무엇인지 묻는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일 잘하는 사람”이 마음 속의 우상이 되어 많은 능력을 가지기를 소망하고 그런 능력과 성실을 가진 사람들에게 열광한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잘 수행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하겠다. 그러나 그것들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본질, 믿는 사람들 식대로 표현하자면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생각과 마음을 깊이 고민하고 세상의 언어와 가치로 그 바라는 현실을 꺼내 보이는 것, 그것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굳이 보이고 만질 수 있는 육신을 입고 세상에 내려와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교훈이 아닐까 생각한다. 새로 출범하게 될지도 모르는 총학과 여러 학생단체, 학생사회가 천국과 세상의 어느 중간지점쯤에 서서 깊지만 단단한 언어로 마음껏 떠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상준(전산전자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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