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간 병사들의 무사 전역을 도운 ‘안남기 목사’를 만나다

 
"주어진 일, 사람, 그때 진실하게 만나야 돼요. 올해 하지 않고 내년에 하겠다는 것은 군선교에서 직무유기에요"

▲ 19년 7개월 동안 안남기 목사가 군종으로 있었던 부대의 상징이다. 왼쪽 맨 아래 칸은 그의 저서 <힐링 밀리터리>다. 사진 김확정 기자

대한민국의 건장한 20대 남성이라면 거쳐 가야만 하는 군대. 각종 군범죄들이 떠오를 때면 군대에 자식을 보낸 어머니, 아버지의 밤은 길어지곤 한다. 하지만 군에는 대한의 아들들의 무사 전역과 사회 적응을 위해 날마다 기도하는 ‘군종(軍宗)’들이 있다. 목사, 신부, 법사, 원불교 교무 모두 군종이지만, 그중 지난 20
년 동안 <*역기능 가정에서 성장한 장병의 치유를 위한 군목회 돌봄 프로그램>, <군종상담의 정체성과 특
성> 등의 논문을 쓰며, 끊임없이 병사들에게 관심을 쏟은 목사가 있다. 안남기 목사는 19년 7개월 동안 10개 부대를 돌고 돌아 지난해 12월부터 경기도 남양주시 사능교회에서 목회 중이다. 궁금한 것이 많은 기자의 질문에 “이거 오늘 안에 인터뷰 끝나려나?”라면서 도 차근차근 설명해주던 그는, 흔히 생각하던 전투적인 군종목사의 이미지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Q ‘군종목사’를 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신학교 1학년 때 보는 군종목사 시험은 경쟁률이 엄청 세요. 그땐 신학생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시험을 보는 게 그 당시 분위기였는데,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나 한번 하나님께 맡긴 거죠. 별다른 고민을 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막상 군대에 들어가서 1년을 해보니 ‘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중요한 일이구나’라는 인식을 하게 됐어요. 그 뒤로 군에 3년 이상 더 있으려면 또 3대 1 정도의 경쟁을 거쳐요. 그때도 하나님 뜻을 물은 거죠. 주사위를 한번 더 하나님께 드리고, 장기(장기복무)로 뽑혀서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을 가졌죠.

Q 생각보다 군생활이 잘 맞으셨나 봐요?

제 성격 유형은 INFP로 군에서 가장 부적응하는 유형이에요(웃음). 내향적이고 조직 생활에 부대끼는 유형이죠. 근데 오히려 군대에서 저 같은 유형이 필요했더라고요. 병사들에게 이 갑갑한 환경에서 숨 쉴 수 있는 모성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거예요. 일대일로 만나서 이야기 들어주는 것에 의미를 느끼고, 병사들에게 목사가 ‘의미 있는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이것이 제 성품과 자연스럽게 맞아 든 거죠. 은혜 같아요.

Q 그렇다면 군종목사님과 민간목사님은 어떻게 다른가요?

다른 민간목사님과의 차이점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공식적인 신분이 있는 거예요. 군에서 대위, 소령, 중령, 대령이라는 합당한 계급을 줬어요. 병사들을 주도적으로 만날 수 있는 거죠. 얼굴이 어두워 보이는 친구들을 찾아갈 수도 있고, 지휘관이 우리한테 요청할 수도 있고. 또한, 군종은 2년에 한 번씩, 때론 1년에 한 번씩 교회를 옮겨야 해요. 그때 든 생각이 ‘이 양들은 주님의 양이지 내 양이 아니다’라는 것이죠. 주어진 일, 사람, 그때 진실하게 만나야 돼요. 올해 하지 않고 내년에 하겠다는 것은 군선교에서 직무유기에요.내년에 어떤 환경이 찾아올지 몰라요, 내가 어느 부대에 갈지도 모르고.

Q 군종목사님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건가요?

군집단이 군목들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를 고민하는 것에서 군목이 시작돼요. 군이라는 집단은 싸우는 집단이기 때문에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필요하고, 거기에 신앙이 중요한 요소가 돼요. 이것을 신앙전력화라고 하죠. 또, 평상시에는 병사들의 마음을 만지고 자신과 생명을 존중할 수 있도록 자살을 방지하는 역할을 원해요. 군은 군목들에게 전문성을 원하는 집단이죠. 그래서 군목들이 상담 공부를 많이 하는 겁니다.

Q 군에서 특별히 관심을 두고 있는 병사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돌보나요?

군에는 위험한 상황 있는 병사들이 많아요. 그걸 발견해내는 게 사고, 자살 예방에 가장 중요하죠. 그 친구가 어떤 상황인 줄 알면 도와줄 수 있거든요. 그래서 병사들이 마음을 열고 찾아올 수 있게 하는 게 군목회고, 결론적으로 군목의 이미지가 중요합니다. ‘목사님한테 이야기해도 괜찮겠구나.’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목사님은 나를 평가하지 않고, 내 얘기를 끝까지 들어줄 것 같은 이미지. 그 이미지가 결국 친구들이 끝까지 제대할 수 있게 도와주고, 사회에 나가서 교회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죠.

Q 최근 군대 내에서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있잖아요. 그 이유를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본인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 문제도 있고, 가정환경도 있어요. 거기에 부대 환경도 점화되고. 그것이 이미 사회에서부터 안고 온 친구들이 90%에요. 얼마나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은지…. 2004년도부터, 이런 친구들이 사고를 치고 자살을 하니깐 군 본부에서 군실정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한 거예요. 두 달에 한 번씩 스무 명 정도의 병사를 사단교회로 집합시켜서 ‘비전캠프’를 통해 치유, 집단상담을 하는 거죠. 군종병들을 교육하는 상담 매뉴얼도 있어요. 군에서 신앙을 가지고 있는 군종병 교육을 해서 병사동료들을 상담해줄 수 있는 또래상담을 훈련하는 거예요.

Q 특별히 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기억에 남는 이 일을 ‘사랑과 우정의 테마여행’이라고 부르는데요. 집단상담을 하던 중에, 한 병사(A)가 고등학교 때 친형(B)이 가출해서 5, 6년 동안 형을 못 봤대요. 중학교 2학년 때 엄마랑 마지막 이별도 했어요. 그 형은 강원도 화천에서 군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하고요. 그즈음에, 다른 병사(C)가 친구가 보냈다면서 편지를 하나 가지고 왔어요. 자기 친구(D)가 강원도 화천에서 상병으로 근무하는데, 군생활에 적응을 못 해서 13개월째 진급을 못 한다는 거예요. 교도소도 갔다 오고 병원도 가고 자살시도도 하고, 그러면서 친구에게 어두운 편지를 써서 보낸 거예요. 그 형(B)과 상병 친구(D), 두 명이 강원도 화천에서 근무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지휘관에게 공식적으로 결재를 받아 동생 병사(A)와 다른 병사(C)를 데리고 강원도 전방에 갔어요. 하나는 형 만나러, 하나는 친구 만나러. 그래서 동생은 형과 재회하게 했고, 13개월째 진급을 못한다는 상병도 나하고 2시간 동안 상담을 했어요. 2시간 동안 내가 얘기를 들었죠. 그 친구가 제대할 때 나한테 편지를 하나 써서 보내주더라고요. 참 고마웠죠.

Q 지난 20년 동안 군선교를 통해 배우신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군대에서 이걸 배웠어요. ‘선교적 교회.’ 목사의 이미지, 태도 자체가 기독교를 대표하는 존재로서의 대표성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군대에서는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 같은 교회에 다니니, 나의 행동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 알아요. 그래서 삶이 흐트러지고 삐뚤어지면 성도들이 교회 안 나오죠. ‘나의 모든 것들이 기독교의 대변자다’라는 인식을 갖고 훈련을 한 거죠.

Q 지금은 일반목회를 하고 계시잖아요, 군생활을 하시면서 배운 것이 일반 목회에 도움이 된 것이 있나요?

일반목회를 하면서도 저는 마치 군목을 하는 것처럼 그냥 감당하고 있어요. 앞으로의 일들에도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마음이 있어 자유함이 있어요. 군에 있을 때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는 것에 집착을 안 했던 것 같아요. 오히려 나에게 주어진 역할 내에서 병사들을 진솔함 있게 대하려고 했던 마음이 부대에서 좋아해 준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난 축구를 잘 못하거든요(웃음). 특히 군목은 축구를 잘해야 돼요. 그래야 어울리거든요. 그래도 나는 잘 못한다 하더라도 잘 버텼거든요, 재미있게, 후회 없이!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에서, 현재 만나는 사람들에게 진솔하게, 최선을 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 거죠.

최근 끊임없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군 사건, 사고 때문에 군대에 대한 불신은 커지고만 있다. 하지만 안남기 목사는 ‘군대는 치유와 회복이 있는 희망의 땅’이라고 말했다. 윤 일병 사건, 임 병장 사건과 같은 군범죄 속에서, 군종들은 사건 예방과 관계자들의 치유를 위해 더욱 바삐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픈 마음을 가진 청년들이 군에서 치료되고 사회로 나갈 수 있게 돕는 군종들이 있기에, 군대는 더 이상 절망의 장소가 아니다.

*역기능 가정: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 건강하지 않은 관계유형이 존재하는 가정. 부모나 자녀의 정서적인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는 가정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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