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억조 할머니는 농성을 하던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울분이 난다고 한다. 이영건 사진기자

계속되는 한전과 할매들의 줄다리기
한전 “모든 이의 만족은 불가능, 어려운 문제”

한전 측은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입장이다.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맞추기 위해 발전소를 추가로 설치하는데, 이 과정에서 추가 송전탑 건설은 블랙아웃 현상을 감소시킬 수 있는 열쇠가 된다. 한전의 한 관계자는 “전력 수요에 따라 영남지역의 원활한 전력공급을 위해 송전탑을 건설한 것이며, 무작정 세우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주민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전은 주민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각계 전문가, 국회의원, 지역단체 등으로 구성된 ‘입지선정위원회(이하 위원회)’를 꾸려 송전탑 건설 장소를 결정한다. 송전탑이 연결되는 시점과 종점을 정해 몇 개의 선택안을 위원회에 제시하면, 위원회가 선택안 중 건설장소를 정하는 식이다. 한전의 한 관계자는 “한전은 공익을 위한 기업”이라며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가능하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주민들을 괴롭히거나 못살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주민 측도 전력공급을 위한 추가 송전탑 건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송전탑 건설의 법적 근거인 ‘*전원개발촉진법(이하 전원법)’ 자체를 문제로 본다. 전원법은 지방자치단체나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도, 전원개발사업자가 사업을 일방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한다. 개발사업에 필요하다면 타인의 토지를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 따라서 주민들은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한전의 임의적 결정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공사 과정 속 격렬한 충돌, 인권은 어디에

공사 과정에서 가장 문제가 됐던 점은 할머니들에 대한 인권침해다. ‘인권운동연대’와 ‘인권실천시민행동’ 등 3개 인권단체가 참여하는 ‘청도삼평리 345kv 송전탑 인권침해 조사단(이하 조사단)’ 은 공사현장에서 벌어진 인권침해 사례를 발표했다.
조사단은 한전과 시공사 용역직원에 대해 ▲기습적 공사 강행으로 인한 충돌 ▲반대 주민들에게 폭언과 폭행 행사 ▲주민 동의 없는 CCTV 설치 등을 비판했다. 경찰에 대해서는 ▲미란다 원칙 고지 불이행 ▲도주 우려 없음에도 폭력, 수갑 사용 ▲무작위 *채증 등을 비판했다. 그뿐만 아니다. 30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서 3주째 도로 위 노숙농성을 벌이는 주민들을 위해 대구인권사무소가 ‘햇빛가리개’ 설치를 요청했지만, 경찰은 ‘위험 물품’이라는 이유로 설치를 저지했다.
현장에 있던 이차연(78) 할머니는 용역과 충돌 후 실신해 이틀 뒤 부산 병원에서 깨어났다. “그전에 입 떨리고 몸 이래 안 떨렸다고. 이 팔은 수술을 해서 떨려도 몸 자체는 하나도 안 떨리고 했거든. 귀도 안 어둡고. (사건 이후) 몸이 떨리고, 왼쪽 귀가 전화를 받으니까 말이 안 들리는 기라.”
이억조 할머니도 폭력의 피해자였다. “딸, 아들(용역)도 한 5~60명 오는데 우리는 힘은 모지래고 욕만했지 뭐. 개 끌듯이 끌어 내려오는데 죽을 뻔 했다요. 세상에요. 용역들 달려들어가 여까지 내려와 내가 뒤 꼭대기 피가 다 나왔다. 우리말은 말도 다 못한다. 고생한거 생각하면, 우리다 죽을 뿐이했다.”
이들은 인격 모욕도 서슴지 않았다. “서장 놈은 손으로 ‘저거, 저거(우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그런 식으로 하더라꼬.” 이차연 할머니는 목소리를 떨며 말을 이어갔다. “큰 상처를 받았지. 내로써는 말 못하는 상처를 받아도. 날 이렇게 만들어 놓고. 그러니 우리로서는 이 분을 어디다 풀지, 한이 맺히지”라며 눈물을 훔쳤다.

소송에 마을 내 분쟁까지, 아직 풀지 못한 문제

현재 삼평리에는 22, 24호기에 이어 농성을 끝까지 하게 했던 23호기 송전탑까지 공사가 완료된 상태다.이런 상황에서 마을 내의 분쟁도 여전히 존재한다. 마을에서 반대 주민들을 제외하고 한전과 협상을 했을 때, 마을은 한전으로부터 복지회관 건설을 협상 받았다. “할머니들은 복지회관이 필요 없다는 입장이죠. 한전이랑 복지회관 협상의 발판에 할머니들의 희생이 있었는데, 마을에서 인정을 안 해주고. 할머니들이 되게 서운해하고 계세요. 과정에서 마을 주민끼리 경쟁하고 다툼이 생기고 있어요.”
또한, 한전에서는 공사 과정에서 연대한 사람과 주민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형사소송에서 할머니들은 기소유예로 처리됐지만, 부녀회장인 이은주 씨와 사회활동가들은 현재 81건의 형사소송에 걸려있다. 재판이 진행되면 징역이나 벌금형이 결정된다.
민사소송도 2차 조정을 준비 중이다.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온다면, 9명에 대해서 재산 압류가 들어오게 된다. 공사자재가 놓여있는 평화공원의 장승과 허수아비와 망루에 대해 한전에서는 공사방해 가처분신청을 했다. 법원은 하루에 20만 원씩, 총 17명에게 벌금을 물렸다. 이렇게 매긴 벌금은 총 2억2천만 원에 달한다.
한전에서는 삼평리 전까지 농성에 대해 민사소송을 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은주 씨는 이런 본보기 식 보복에 지지 않겠다고 말했다. “본보기로 보여주겠다는 거야. 앞으로 절대 다른 지역에서 밀양과 삼평리처럼 대들지마라는 본보기. 우리도 그럼 본보기를 보여줄 거거든. 우리도 같이 부딪히는 거야.”
삼평리 사례와 비슷한 밀양 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의 경우엔 벌금형 판결에 반발에 ‘노역형’을 선택하고 있다. 정당성을 잃은 국책사업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벌금으로 제재하려는 국가 권력의 남용에 맞선다는 뜻에서다.
이은주 씨는 자신도 이러한 판결이 나오면 노역을 살 각오가 돼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지금도 전과자야. 업무방해로 벌금을 낸 적이 있어서 전과자이지만, 나중에 노역을 살게 되면 진짜 전과자가 되지. 그래도 그거는 우리가 정말 나쁜 뜻에서 생긴 게 아니고 정당하고 우리가 정의를 위해 싸우다 한 거기 때문에 각오할 생각이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23호기 송전탑 공사가 완료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농성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억조 할머니는 도와준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해 계속 농성을 한다고 말한다. “우리 도와준다꼬 밥묵고 경비서고. 사람 움적거리며 돈이 든다꼬 하니 후원금 내고 그랬다. 뭐 민주노총이고 각 단체 종교자고 여성단체고. 다 몬외운다.”연대자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도 존재한다. 이은주 씨는 “미안하지, 연대하는 분들에게는. 어떤 뭐 이익을 바라고 했는게 아니라 정말 정의에 마음으로 왔는건데. 한 달에 한 번은 법원에 가야 되고, 그런 상황이거든요. 판결에 불복하면 항소도 해야 되고. 그런 고통을 받고 있으니까는 미안하죠”라고 말했다.
삼평리 주민들의 싸움은 현재진행형이다. “우리가 어째 힘은 없다 아이가. 근데도 아직 끝이 안났다 아직. 우리는 끝까지 싸울라칸다. 몇 년이 지나도 끝까지 싸울끼다.” 이차연 할머니의 말이 산 밑 농성장을 울린다.

할머니들은 다른 이들에게 받은 도움을, 같은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돌려준다. 기자가 삼평리를 방문한 날에도 할머니들은 부당해고 농성 300일을 맞이한 구미 스타케미칼 차광호 씨를 방문하러 갔다. “우리가 많은 사람 도움을 받았잖아요. 우리도 할머니들이 조금 힘들지마는 연대하러 갈 자리가 있
으면 가요. 위로가 될 거 같아서요.”

*채증: 증거를 채집하는 것
*전원개발 촉진법: 1978년, 유신정권 때 제정된 법으로 전원개발사업자가 전원개발사업 실시계획을 수립하여 산업통산자원부 장관의 승인을 받으면, 다른 법령에서 다루는 인허가를 거쳤다고 인정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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