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을 하면서도 그 결과에 대해서는 마음을 비우는 자들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영웅임을 나는 배웠습니다. (중략) 나에게도 분노할 권리는 있으나 타인에 대해 몰인정하고 잔인하게 대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가톨릭 선교사로서 ‘사하라의 은자(隱者)’라 불린 샤를 드 푸코의 시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의 일부다.
주위에서 ‘사장님과 얼굴 붉히는 사이가 될까, 해고되면 어떡하지’하고 걱정하는 마음에 정당한 요구를 하지 못하는 청년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해야 할 일을 하면서도 그 결과에 대해서 마음을 비우는 자’가 못 되는 것이다. 알바몬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알바생들이 갑질을 당했을 때의 대응법’만 보더라도, ‘일단 내가 참는다’가 압도적이고, 이어 ‘주위 지인들과 심경을 나누고 털어버린다’가 그 뒤를 잇는다.
어쩌면 뻔하고 당연해서 당사자들에게는 속 터지는 일이겠지만, 푸코의 시에서 언급된 대로 ‘결과에 대해 마음을 비워야’ 하는 것이 정답이다. 신념에 따라 행동한다면, 어쩔 수 없이 해고를 당하든지, 정당한 요구가 받아들여지든지 그 결과는 중요치 않다.
그렇지만 그 결과가 항상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을이라고 해서 항상 지는 것만은 아니다. ‘최저임금법’,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등 법적 체제가 갖춰져 있을 뿐만 아니라, 알바노조, 청년유니온, 민달팽이 유니온 등 을의 편이 되어줄 든든한 지원군도 존재한다.
한편으론, 을만이 항상 밟히고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는 것은 너무도 불공평한 일이다. 갑이 ‘갑질’을 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을은 갑에 대항하지도, 갑을 미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푸코가 노래한 대로, 갑은 을에 화를 낼 순 있어도 엄연히 몰인정하고 잔인하게 대할 권리는 없다. 갑은 올바로 분노할 줄 아는 능력을 배워야 한다. 그렇지만 아직 덜 배운 갑을 대하는 을도 자신의 권리를 올바로 요구할 줄 아는 능력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모두 배우고 있다, 아니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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