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회항과 백화점 모녀 사건은 지난 추운 겨울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소위 있는 자들의 권력형 횡포는 갑을 관계에서 ‘갑’에 어떤 행동을 뜻하는 접미사인 ‘-질’을 붙여 만든 ‘갑질’이라 불리며, 우리 사회의 많은 ‘을’들을 분노하게 하였습니다. 이에 본지는 갑질이 계약관계뿐만 아니라, 실생활 속 부당한 대우에까지 광범위하게 퍼져있다고 보고 과연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갑질이 퍼져있는지 얘기하고자 합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아르바이트와 인턴을 전전하고 있을 청년들은 갑질에서 자유로운지 조명합니다. IMF 이후 청년 실업률이 9.2%로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의 청년 ‘을’로서, 안녕들 하십니까?


갑갑(甲甲)한 사회 속, 갑갑한 청춘
알바, 인턴, 대학생 가리지 않는 갑질, 상처는 속으로 삭여…

도전하는 청춘은 아름답다고 한다. 우리는 아름다운 청춘이 되기 위해 오늘도 아르바이트(이하 알바)부터 인턴까지 발에 땀이 나도록 이곳저곳을 뛰어다닌다. 하지만 도전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뛰어다니는 우리에게 남겨진 건 갑갑함뿐이다. 부당한 일에도 감정과 목소리를 꾹꾹 눌러 담는 법을 도전하는 법보다 먼저 배운다.

깨지고, 부서지고… 서러운 ‘알바 청년들’
잡코리아의 구인구직 포탈사이트 ‘알바몬’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총 응답자 1,040명)에 따르면 알바생의 약 92.4%가 ‘갑질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이 경험한 갑질에는 ‘무조건 친절이나 참음 등 감정노동 강요’가 47.6%, ‘불합리한 요구 및 부당한 지시’가 47.4%로 1, 2위를 차지했다. ‘이유 없는 화풀이’도 43.7%에 달했으며, ‘인격적인 무시’를 경험했다는 알바생도 43.3%로 적지 않았다. 이밖에 ‘사적인 부분에 대한 참견’이 28.3%, ‘폭언’ 27.5%, ‘감시’가 24.2%로 그 뒤를 이었다. 
설문조사에서 1위로 꼽힌 ‘감정 노동’의 경우, 부당한 상황에도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해야 하는 감정적 노동이다. 방학을 이용해 보일러 콜센터에서 일했던 김지은(가명 21) 씨도 감정노동의 희생자 중 한 명이다. 그녀는 막무가내로 욕을 내뱉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콜센터 일터에 이렇게 쓰여있어요. 첫째도 친절, 둘째도 친절, 셋째도 친절… 친절한 거 좋죠. 근데 막무가내로 욕하는 경우에도 꾹 참고 웃으면서 친절하게 말해야 하는데, 힘들죠.” 이유 없는 고객의 화풀이에 남몰래 눈물을 삭이는 경우도 많았다. “‘죄송합니다’하는 일이 일상이에요. 하다 보면 익숙해지기는 하는데 그래도 서러워요.”
이뿐만 아니다. 알바생을 하인 부리듯 부리는 경우도 많다. 한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일한 임영현(대전시 21) 씨도 이런 손님들 때문에 일을 하면서 여러 번 속으로 화를 삭였다. “‘빵 만 원어치 담아와’ 이렇게 시키면서, 마치 아랫사람 부리듯 사람을 부리는데 정말 화가 나더라고요. 저는 하인이 아니라 알바생인데….”
갑질은 손님과 알바생 사이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계약서상에서 계약 당사자인 갑과 을인 고용주와 노동자의 사이에서,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최저 시급을 보장받지 못하거나, 법적으로 명시된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기도 한다. *주휴수당과 야근수당은 아예 받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정해진 노동시간이 있는데 손님이 없다는 이유로 노동자를 늦게 출근시키거나 일찍 퇴근시켜 인건비를 줄이려는 꼼수인 ‘꺾기’도 많이 일어난다.
한국 최초 세대별 노조 ‘청년유니온’에서도 임금과 관련된 사례들이 자주 접수된다. “알바천국 같은 곳에 보면 가족 같은 분위기라는 얘기들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가족으로 생각한다고 해놓고 돈을 줄 때는 제대로 안주는 경우도 많아요. 저희 조합원 중 한 분이 고깃집에서 일을 했는데, ‘아들, 아들’ 하면서 5개월 동안 임금을 안 줬어요. 그래서 항의를 했더니 ‘누구 씨’ 이러면서 돌변하기도 하고.” 이렇게 일을 하고도 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는 전국적으로 약 29만 명, 떼인 돈은 지난 한 해 1조 1300억 원에 이른다.

대학에서 생활 속까지, 곳곳에서 멍든다
부당한 대우는 알바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학교 수업에서도 대학생들은 자신들의 정당한 노동의 값을 받지 못하고 있다. 대학과 기업이 연계된 학점인정 인턴제는 학생들이 업체에서 경험도 쌓고, 학점을 받는다는 취지로 실행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전공 과정과는 상관없는 마트 계산직과 같은 단순 노무를 급여 없이 모집하는 등 본 취지와는 무색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실제 대구의 모 대학교 동물이벤트학과 학생은 실습이라는 명목하에 토끼장 관리와 같은 단순 노동을 하루 8시간 이상씩 한 달 동안 꼬박 일했다. 하지만 한 달에 80만 원도 채 되지 않는 임금을 받았다. 이는 시급 4,000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으로 2015년 최저임금 5,580원과는 1,000원 이상 차이 나는 금액이다. 학교 측에서는 ‘학점도 주고 있고, 실제 취업을 하기 위해서 실무 수업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온종일 토끼의 변을 치우는 단순노무에 지나지 않는다. 대학생들이 당하는 갑질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취직 앞에 선 학생들은 인턴이 돼서 다시 ‘열정페이’와 같은 갑질을 겪는다. 특히, *도제 방식으로 일하는 패션업계와 미용계에서 두드러진다. ‘일하는 사람’보다는 ‘배우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대구 청년유니온 최유리 지부장은 “배우는 방식으로 일하다 보니까 관계 분리가 안 되는 거죠. 노동과 제자 관계가. 그러다 보니 이런 일들이 많이 발생하지 않나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취업에서 멍든 학생들은 자신의 쉼터인 생활 공간에서조차도 갑질을 겪는다. 청년 주거권 관련 비영리단체 ‘민달팽이 유니온’에서는 관리비에 관련한 부당한 사례가 많이 제보되고 있다. “관리비가 적정 관리비보다 많이 나오는 경우가 많이 제보되죠. 원룸이라고 불리는 소규모 다가구 다세대 건물이나 연립 고시원에서는 관리비에 대해 고지할 필요가 없거든요.” 이렇게 부과되는 관리비는 심한 경우 10만 원이 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다시 돈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복잡한 소송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피해를 당하고도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우리가 저항할 수 없는 이유는…
을들은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못 하는 상황이다. 알바몬에서 시행한 설문조사 ‘알바생들이 갑질을 당했을 때 대응법’의 결과를 살펴보면 ‘일단 내가 참는다’가 60.5%로 압도적이었고, 이어 ‘주위 지인들과 심경을 나누고 털어버린다’가 17.8%, ‘그만둔다’가 6.5% 등 주로 소극적 대응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그만둘 각오로 싸운다’가 5.9%, ‘사측이나 상사 등에 알려 도움을 요청한다’가 4.9%, ‘해당 상대방에 항의, 시정을 요구한다’가 4.2% 등으로 적극적 대응은 15%에 그쳤다.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저항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최 지부장은 노동법에 대한 무지를 첫 번째로 꼽았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냥 욕하고,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건 당연히 부당하다고 생각하죠. 근데 만약 이 사람이 나에게 야간수당, 주휴수당을 주지 않는다거나, 근로 계약서를 쓰지 않는데에 있어서는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노동 관련법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시장이 협소하기 때문에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패션업계와 미용계는 각각 시장이 좁아 회사마다 연결돼 있다. 때문에 돈을 적게 받는 ‘당연한’ 일에 이의를 제기하면 다른 곳에서 일할 때 제한을 받게 된다. 그렇다 보니 부당한 대우를 겪어도 쉽게 대응하지 못한다. 인턴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 취업하기 위해 한 줄이라도 스펙을 채워 넣어야 하는 청년들에게 갑질은 참고 넘어가야만 하는 ‘산’이다. 취업을 위해서, 저항할 수 없는 것이다.

*주휴수당: 1주 동안 규정된 근무일수를 다 채운 근로자에게 유급 주휴일을 주는 것. 즉, 주휴일에는 근로제공을 하지 않아도 되며, 1일분의 임금을 추가로 지급받을 수 있음
*도제방식: 제자가 기술을 가진 스승에게서 몇 년 동안 기술을 배워서 장인이 되어 독립하는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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