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색색의 독립출판물들이 전시돼 있다. 독립잡지 의 ‘독립출판, 읽어는 봤니?’란 제목이 인상적이다. 사진기자 이영건

 

봄이 성큼 다가왔다.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이때, 당신은 마음속에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가? 당신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이야기도 한 권의 책으로 출판될 수 있다. 당신도 작가가 될 수 있다.

 

“제본까지 100% 수작업! 책의 내용은 모두 연필로 그려지며, 지워지면 다시 그려드려요.”<연필Zine>
“100일 동안의 야채가게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개인주의 야채가게>
“책 표지에 코를 가까이 대보세요. 냄새를 맡을 수 있어요.”<SCENT>

내용도 제각각, 출판사도 제각각, 책의 모양도 제각각. 책의 발행 권수는 많아 봐야 300권 내외, 심지어 책이 다 팔려도 재인쇄는 하지 않는다. 누구나 살 수 있지만 언제나 살 수는 없는 책. 독립출판물만의 특별한 매력이다. ‘독립출판’은 말 그대로 출판 과정에서 ‘독립’을 추구한다. 기성 출판물과 달리 개인 혹은 소규모 집단이 기획, 편집, 인쇄, 유통 등 책이 나오는 전 과정을 담당한다. 이와 같은 과정을 미국에서는 ‘Independent Publishing’, ‘Small press’로, 일본에서는 ‘Little Press’로 부르고 있다. 한국 사회에선 6~7년 전부터 움트기 시작했고 이젠 본격적인 성장기를 맞았다. 또한 청년층 사이에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따라 독립출판 서점도 전국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참고로, 두 달 전 포항 남구 효자동에도 독립출판물을 다루는 서점 ‘달팽이 북스앤티’가 새로 생겼다.


취향 저격! 독립출판
그렇다면 기성출판과 차별되는 독립출판만의 특색은 무엇일까. 가장 큰 특징은 창작자 스스로 기획하고 제작하는 만큼 색다른 소재와 디자인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상업적 조건에 아랑곳하지 않고 진실한 소통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조명하려는 태도가 독립출판의 본질이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계발, 힐링, 그리고 꿈 찾기에 치우친 기성출판물과 달리 독립 출판물은 작가의 관심사에 따라 내용이 결정되기 때문에 소재가 무궁무진하다. 주류 매체에 저항하는 내용일 수도 있고, 예술가 개인의 시각을 드러내는 실험적 장이 될 수도, 특정 공동체의 관심사가 담길 수도 있다. 책의 구성과 형태도 다양하다. 흔히 볼 수 있는 책의 서문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B4 갱지를 접어서 만든 잡지도 있고, <월간 부록>처럼 포장지에 부록만 담겨 있는 출판물도 있다.
이러한 독립출판의 자유분방한 성격은 독자들이 독립출판을 찾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가 개방적으로 바뀌면서 다양한 문화가 유입됐고 개인의 대중적 취향도 더 다양해졌다. 사회의 분위기도 개인의 개방성과 다양성을 존중하게 됐으며, 이러한 환경에서 개인은 자신의 개성을 더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기존의 출판시장은 판매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소설이나 흥미 위주의 책에 집중할 수밖에 없어, 개인적이고, 소소한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기엔 무리가 있었다. 독립출판은 이런 천편일률적인 문화의 한 켠을 파고들어 자신의 이야기를 능동적으로 전파한다. 자유로운 흐름 속에서 그려낸 개인의 개성과 다양한 이야기들은 소수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켰다. 비주류를 찾는 이들에게 독립출판이 새로운 돌파구가 된 셈이다.


다르지만 ‘공감’가는 이야기
“제가 만든 이야긴데 저만 가지고 있기에는 아깝더라고요. 그래서 세상에 내놓을 방법으로 독립출판을 선택하게 됐죠.” 경기도에 사는 김용복 씨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2년 넘게 다닌 화실에서 그린 그림을 엮어 <그림자>라는 제목의 동화책을 출간했다. 책을 만들 당시 직장생활로 지쳐있던 그는 책에 잃어버린 감성을 찾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 그래서 그런지 <그림자>의 책 내용도 그의 이런 마음을 닮았다. 책 속의 ‘나’는 사라져버린 자신의 그림자를 찾기 위해 도시 속을 방황한다. 그러면서 잊고 살았던 감성을 조금씩 되찾아 간다.
포항 독립출판 서점 ‘달팽이 북스앤티’의 사장 김미현 씨의 책도 그녀를 닮아있다. “저는 쿠르드 족에 관심이 많았어요. 여행도 몇 번 다녔고요. 여행했을 때의 사진을 묶어서 작게 내봤어요”라며 책을 보여주는 그녀에게선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녀의 책, <쿠르드 여행자-삶의 자리>에 실린 사진에는 그녀의 애정어린 시선이 담겨있는 듯했다. 독립출판을 하려는 작가들은 각자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으며, 그 이야기를 책에 담는다.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는 재건축이 될 아파트의 과거 모습을 기억하기 위해, <잃어버린 꿈>은 어머니보다는 여성으로서의 그녀를 보여주기 위해 과거 어머니의 일기장을 딸이 묶었으며,<19세 여고생>은 한 여고생이 자신의 학창 시절을 기억하기 위해 책을 출판했다.
이렇듯 작가들이 서로 다른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독자들은 이들의 이야기에 ‘공감’한다. “보통 작가라고 하면 거리감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 책들은 굉장히 내 얘기 같은 이야기가 많아요.” 대전에 있는 독립출판서점 ‘door books’의 사장 박지선 씨도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을 독립출판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았다. “‘9여친북스’라는 책이 있어요. 저는 그 책을 보면서 정말 친구랑 수다 떠는 것 같았어요. 친구 연애담 듣는 느낌. 독립출판 자체가 자유로운 매체다보니 단어 묘사 같은 것도 직접적이잖아요. 그래서 좀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무슨 이유가 있겠어요, 좋아서죠”
누구나 작가가 되어 독립출판물을 발행할 수 있지만, 독립출판 책을 만드는 과정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그 과정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우선 글, 사진, 그림 등으로 표현할 내용을 정한다. 꼭꼭 숨겨뒀던 자신의 이야기, 여행 이야기, 나만의 시장 맛집 등 책에 들어가는 내용은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무엇이든지 가능하다. 이렇게 책의 내용과 표현방식을 정했다면 인쇄방식을 정해야 한다. 보통 인쇄소를 통해 인쇄한다. 하지만 본인의 개성에 따라 집 프린터를 이용해 중철로 만들거나, 손으로 아트북을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만든 책을 취향대로 비닐 팩에 넣을지,*띠지를 만들어 포장할지 등은 스스로 결정해 마무리한다. 작가마다 출판 과정은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이런 과정을 거친다. 홍보도 본인이 직접 한다. SNS를 통해 홍보하기도 하고, 독립출판 서점에 책을 입고시키기 위해 메일을 보내거나, 직접 방문해 요청한다. 기획부터 홍보까지 책임지는 기성 출판사와 달리 굉장히 번거로운 작업이다.
물론 전 과정에서 드는 비용은 모두 자신의 몫이다. 그러다 보니 ‘돈’ 때문에 발이 묶이는 경우도 많다. 책이 계속 나오지 못하고 2호, 3호로 멈추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김용복 씨도 출판 과정에서 가장 힘든 점을 꼽아달라고 하자 1순위로 경제적 어려움을 꼽았다. 책을 더 예쁘게 잘 만들고자 처음엔 표지도 두껍게, 인쇄도 제본으로 거창하게 하려 했지만, 출판 견적을 받고 좌절했다고 한다.
직접 책을 만들고, 홍보하는 과정이 쉽지 않은 것에 비해 책을 판매해 남는 수익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왜 만드는지 그들에게 물어보면 답변은 간단하다. “무슨 이유가 있겠어요, 좋아서죠.” 김용복 씨는 반복된 일상에서 독립출판을 통해 즐거움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독립출판의 매력에 빠진 그는 다시 수작업으로 책을 낼 계획에 있다고 한다. 김미현 씨도 “독립출판은 우선적으로 자기가 만들고 싶어서 만든 책이잖아요. 팔기 위한 책이라기보다는 자기가 좋아서 만든 책, 그 사람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책. 그게 되게 큰 것 같아요. 누가 만들라고 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족에 의해 제작하는 과정의 매력이 크죠”라고 말했다.


아직 과도기, 다양한 시도와 지속적인 지원 필요
‘독립출판물이 범람하면서 질이 떨어져 간다’라는 걱정 어린 시선도 존재한다. 김미현 씨는 독립출판의 성장에 따른 자연스러운 과도기적 현상이라 말한다. “기왕 만드는 김에 독자들이 내 책에 관심을 가져주면 좋잖아요. 대중적인 부분을 염두 하다 보니 크기가 커지고, 기성출판물과 비슷한 책이 만들어질 수 있죠. 그러나 기성출판에서도 기성출판다운 책이 있고, 그렇지 않은 책이 있잖아요? 독립출판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독립출판 시장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독립출판은 아직 찾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최소 독자층을 확보하기 어렵고, 이에 독립출판 시장은 금전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전남대 문헌정보학과 정준민 교수는 독립출판을 지원해 줄 수 있는 공간으로 도서관을 꼽는다. “일차적으로는 도서관이 출판물을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며, 둘째는 스스로 독립출판물을 만들어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했다. 도서관 내에 실행공동체 또는 학습공동체 조성을 통해 스스로 관심 영역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며, 관련 출판물을 도서관을 통해 구입하거나 활용한다면 가치를 배가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독립출판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공통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 독립출판에 대한 관심이 더 늘어났으면 한다는 것이다. 김미현 씨는 이렇게 말했다. “독립출판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더 늘어나서 더 다양한 책들을 만나보고 싶어요. 새로운 책 한 권, 한 권이 독특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죠. 더 많은 사람이 책을 낸다면 다양한 시도의 책들이 더 많이 나오지
않을까요?”

*띠지: 책 표지의 아랫부분을 두르는 종이장식

 

<독립출판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다면!>

[도서관, 독립출판, 열람실 전]
본격적인 성장기에 들어선 독립출판이 이룩한 성과가 전시된다. 10개 섹션으로 나눈 400여 종, 총 600여 권에 이르는 독립출판물이 선보여질 예정이다. 토요일 마다 현장 독립출판인이 출판 경험을 관람객과 공유하는 토크 행사도 있다. 강연자로는 플러스 사이즈 매거진 ‘66100’ 김지양 편집장, ‘월간잉여’ 최서윤 편집장, ‘6699프레스’ 이재영 디자이너, 독립서점 스토리지북앤필름 운영자 강영규 씨가 나선다.
장소: 국립중앙도서관
일시: 2월 25일~3월 31일

[독립출판 서점 ‘달팽이 북스앤티’]
장소: 포항시 남구 효자동
효자동길 10번길 32
여는 시간: 화~일요일 12~22시,
(정기휴무:매주 월요일)
교통편: 육거리 수협 앞 109번 버스 탑승 > sk뷰 1차에서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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