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대책위원회는 지난 해 8월부터 월성원자력홍보관 앞에서 천막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홍보관은 2층 전망대에서 월성원전이 보일 정도로 원전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사진기자 이영건

 
나아리 주민들이 정든 땅을 떠나려는 이유
주민과 한수원, 진정한 소통의 물꼬 터야


“대부분의 언론이 한수원 쪽으로 갔다 오면 우리가 한 이야기는 어디 갔는지 없어요. 사람 약 올리는 것처럼 한수원 입장만 방송하는 거죠. 공기업 편을 들어서 억울한 사람 더 매도하는 언론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인터뷰해도 뉴스 안 봅니다.” 월성원전 인근 주민 이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김승환 부위원장이 인터뷰가 끝날 무렵 담담하게 터놓은 말이다. 많은 언론이 대책위를 찾아왔지만, 이들의 온전한 이야기를 전한 언론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원전의 중심에서 ‘생존권’을 외치다
월성원전과 가장 가까운 마을임을 나타내듯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로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월성원자력발전소본부가 보였다. 마을에 들어서자 마을을 수호하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그리고 원전을 반대하는 수많은 현수막이 자리하고 있었다. 원자력의 필요성과 우수성을 홍보하는 월성원자력홍보관 앞에는 대책위가 천막을 치고 농성하고 있었다. 73가구가 모여 구성된 대책위는 천막농성을 지난 해 8월 25일 이후 계속해서 이어오고 있었다. 대책위 김승환 부위원장은 “농성 없이 해결될 수 있다면 더 바랄 일이 없겠죠. 대화가 안 되니깐 이렇게 나와 있는 겁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한수원은 법대로 할 만큼 했다고 합니다. 법대로 하면 1,000야드(194m)까지만 관리구역이니 그밖에는 보상이나 이주의 의무가 없다고 하는데, 방사능이 1,000야드까지만 미치고 그 뒤로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라며 “우리는 법이 미처 못 정해 놓은 부분에 대해 주장하고자 이렇게 농성을 합니다”라고 말했다.

경제적 피해부터 방사선 피폭까지, 곯아가는 주민들
김 부위원장은 “월성원전 자리에서 1차 산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주민들은 원전이 들어 온 후 생계수단을 잃었습니다”라고 주장했다. 원전이 있던 자리에서 농업을 하던 주민들은 땅을 한수원에게 내주면서 생계수단도 함께 잃었다. 또한, 부위원장의 말에 따르면, 원전건설 당시 유동인구를 통해 그나마 수입이 있던 부동산 거래와 상거래도, 월성원전 건설 공사가 끝난 후 다 멈춰버렸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쉴 곳인 집뿐이었다. 경주시 양남면에서 바른공인중개사를 운영하는 김봉권 소장은 “2~3년 전, 원전 건설이 끝난 시점부터 나아리 지역의 토지, 상가, 주택거래가 전무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라며 “있는 상가도 빈 점포도 많고, 현재 장사를 하시는 분들도 장사가 안되기 때문에 임대료를 20~30% 낮춰 거래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경제적인 피해뿐만 아니라 건강상의 문제도 겪고 있었다. 이는 경주시의 방사능을 측정해 원전 주변지역의 안전을 감시하는 ‘경주시월성원전•방폐장민간환경감시기구’의 ‘월성원전 주변지역 주민 및 경주시민 체내 삼중수소 분석결과(2010.11)’에 잘 드러난다. 보고서에 따르면, 나아리 지역주민의 체내 평균 삼중수소 농도는 23.6Bp/L, 나아리 옆 읍천리 지역주민은 14.3Bp/L, 경주시민은 0.919Bp/L로 나타났다. 나아리 주민과 나아리 옆 읍천리 주민들은 경주시내 주민보다 각각 25배, 15배 많은 체내 삼중수소 수치를 보인 것이다. 하지만 한수원에서 배포한 ‘삼중수소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에 따르면, 원전 인근 주민의 체내 삼중수소 농도 23.6Bp/L는 법적기준치인 연간 1mSv의 0.07% 수준이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김익중 위원은 “방사능피폭량과 암 발생은 정비례합니다. 따라서 대표적인 방사능물질인 삼중수소 또한 암 발생에 영향을 미칩니다”라고 말했다. 김부위원장은 “한 집 건너 한 집이 암 질환을 앓고 있어요. 원전이 주민들 목숨까지 겨누고 있는 서글픈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대책위가 지난 해 10월, 나아리 주민 50가구를 대상으로 암 환자를 조사한 결과 150명 중 11명(7.3%)이 암 진단을 받았고, 이 중 4명(2.7%)이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 이는 국가암정보센터에 공시된 2012년 전국 암환자평균 표준화발생률 0.31%와 비교하면 23.5배, 갑상선암 표준화발생률 0.07%와 비교하면 38배에 이르는 결과다(보건복지부의 암 등록 통계는 2012년 자료를 2014년에, 2013년 자료를 2015년에 공표해 2012년 자료가 가장 최근 자료임).
한편 지난해 10월, 부산에 있는 고리원전 인근 주민이 한수원을 상대로 갑상선암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한수원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며 1,5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법원은 서울대 의대 역학 조사에서 ‘원전에서 멀리 떨어진 주민들에 비해 원전 30km 이내 주민들의 갑상선암 발병률이 1.8배가 높다’는 결과를 반영했다. 이에 한수원은 ‘원전주변 주민 갑상선암, 원전과 연관된다는 과학적 근거 없다’라는 내용의 공동성명서를 발표하며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믿을 수 있는 원전”vs“철통 한수원”
또한, 대책위는 한수원이 주민들과의 소통을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김 부위원장은 “매월 둘째주 수요일 한수원과의 간담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슨 말만 해도 ‘그거 안됩니다’, ‘안됩니다.’ 도와주려는 마음이 있어야 협상이 가능하죠. 한수원 직원이 나와서 시간 끌기만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보상 규모는 얼마로 책정하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보상규모는 대화를 하면서 협의해야 하는데 대화의 물꼬조차 트이지 않으니 아직 구체적인 요구 조건도 논의된 게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5일, 한수원 조석 사장은 월성원자력발전소 본부를 방문하며 원전 인근 주민들과 간담회를 했다. 하지만 원전을 직접 마주하고 있는 대책위는 이 간담회에 초대되지 못했다. 간담회에 초대된 손님들은 원전 인근 주민이기는 하나,산 건너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었다. 김부위원장은 “작년 한수원 사이버테러 사건이 터졌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민들은 가슴 졸이며 떨고 있을 때, 한수원은 먼저 매스컴을 불러놓고 안전하다며 설명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제일 피해보는 지역 주민들에게 가장 먼저 설명했어야지요”라고 말했다. 한수원은 지난해 12월 28일, 사이버공격에 대한 대응 경과 기자간담회를 가졌지만, 주민들은 한수원의 설명을 언론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었다.
김 부위원장은 “포항제철이 들어와 인근 지역이 발전한 것처럼, 한수원도 공기업으로서 도리를 다해야 합니다”라며 “전기료, 장학금 지원은 조금 있지만 생계수단을 잃은 주민들에게 큰 도움이 되진 못합니다”라고 말했다. 한수원 월성본부는 발전소주변지역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기본지원사업, 사업자지원사업, 특별지원사업 등의 지원금으로 90년대부터 2014년까지 총 2,231억 원 규모의 사업을 진행했다. 기본지원사업은 전기요금보조, 장학금 지급 등을, 사업자지원사업은 지역 우수인재 육성, 지역특산물 판로지원 등을, 특별지원사업은 양남면 해수목욕탕 건립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한국지리환경교육학회지의 ‘월성원자력 발전소 주변 지역 주민의 원전에 대한 인식 및 갈등 해소 방안(2012.12)’에 따르면, 양남면, 양북면, 감포읍 지역 주민 183명 중 67%인 123명의 지역민은 ‘전기세와 조금의 보조금 외에는 실질적인 혜택이 없다’고 인식하고 있다. 또한, ‘월성원전주변의 지역경제와 사회문화적 여건이 원전이 없는 다른 지역보다 훨씬 나아졌다는 것을 가시적 성과를 통해 보여줘야 하는데, 현재 사업들은 소극적인 목적사업 위주(마을회관, 복지관 등)라고 주민들은 평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부위원장은 “우리도 다 나이가 많아 낯선 곳에 가면 적응하기 힘듭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주를 요구하는 것은 그만큼 살기 힘들고 답답하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TV를 보니 유기견 구출 작전을 펼치더군요. 미물인 유기견 한 마리 구하려고 구조대원들이 동원돼서 최선을 다하는데, 지역주민이 유기견보다 못해 보이니깐… 그게 비참한 거죠”라며 자조 섞인 한숨을 보였다. 설연휴 바로 전날, 명절을 앞두고 회의를 준비 중이었다는 대책위에게 ‘언제까지 농성할 거냐’라고 물었더니 김 부위원장이 답했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농성은 계속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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