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 가정의 독특한 풍습이라면 풍습, 아니라면 관습이 있다. 특히 그 집안이 경건하거나 헌신된 가정이라면 더욱 그리하다. 자녀들 중 한 명은 주의 종으로 헌신하길 원하며 서원하는 것이다. 나도 선택 받은 자녀 중 한 명 이었으며 아직도 우리 부모님은 태몽으로부터 시작해서 어렸을 때의 서원 기도를 기억하며 내가 '주의 종'의 길, 곧 '성직자'의 길을 가리라고 굳게 믿고 계신다. 나도 자연스럽게 그것이 나의 부르심이며 나의 갈길 이라고 믿어왔던 것 같다.

한동에 와서 머리가 굵어지면서도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의 부르심은 역시 목회의 길이었다. 그러나 전역 후 한동에 다시 돌아와서 현재의 부르심에 충실하기로 하여 전공 공부를 하며, 교회를 섬기고, IVF 활동을 하면서 나의 부르심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던 중에 나는 캘빈신학교 총장이신 Cornelius Plantinga 교수께서 쓰신 Engaging God’s World라는 책을 통해 다시금 창조 타락 구속의 기독교 세계관적 관점에서 소명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사실 누가 졸업하고 무얼 할거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대답하기가 망설여진다. 아직 구체적으로 어느 영역에 가야 할 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백한 것은 어느 영역으로 가든 그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소망한다면 영혼을 섬기는 사역 만큼이나 동일하게 그 직업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니 지금까지는 그런 의식을 가지고 사회의 각 영역에 거하는 자들이 너무나 적었기에, 단지 성속을 구분하는 이원론적인 하나님의 부르심에 충실하여 그 길을 먼저 갔던 선배들이 한국교회를 이끌고 있기에 태생적 한계로 인한 오해가 아직도 여전히 우리 가운데 남아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무엇을 하고 어떤 영역으로 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리고 왜 그 영역에 가느냐 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세속' 즉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인정하고 그 영역을 구속하는 작업들이 죽음을 방불할 만큼의 치열한 전투가 없이는 불가능하기에, 그 생명을 건 전투를 회피하기 위해 혹시 기독교대학이라는 상아탑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이 아닌지,?혹은 '성직'이라는 길을 택하며 소심하고 비겁한, 맞붙어 싸우기를 포기한 패잔병의 변명을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감사한다. 부르심의 장은 이 세상의 필요와 나의 내면으로부터의 깊은 기쁨이 만나는 그곳에 있다는 Fredrick Buchener의 말처럼 나의 재능과 나의 기뻐하는 것에 반하여 강제로 하나님께서 떠맡기지 않으심을 알기 때문이다. 수많은 영역이 있지만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에서보다 더 잘 섬길 수 있도록 특별한 재능을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셨음을 믿기 때문이다. 공동체를 섬기는 과정 가운데, 전공의 영역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성을 연마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과정 가운데서 분명히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대학생활 자체가 소명의 한 부분이며, 앞으로의 소명을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훈련장임을 나는 알고 있기에 지금, 그리고 이곳에서의 부르심을 순간순간 살아내고 있다. 그리고 어떠한 특정한 영역에서의 부르심보다 하늘로부터 부르신 인격의 성화, 거룩함, 자비, 이웃사랑이라는 작은 삶의 터전에서의 작지만 더 본질적인 부르심에 충실해야 함을 알고 있다.

소명의 순간을 채워가는, 두렵고 떨리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흥분되고 즐거운 이 여정의 한 가운데 나는 서 있다. 오른쪽 같아 보이기도 하고 왼쪽 같아 보이기도 한다. 먼 곳은 보이지 않는다. 한치 앞도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어떻게 가야 할지는 알며, 그 길은 나를 위해 예비된 길이라는 사실과 나는 그 길을 즐겁고 기쁘게 갈 수 있음을 안다. 선한 영역이었으나 죄로 말미암아 왜곡된 그 영역에서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회복되도록 구속하는 작업을 진지하고도 치열하게 내 삶을 드려 추구해야 함 또한 알고 있다. 이미 그분의 나라는 이 땅에 임하였기에, 그러나 또 아직 임하지 아니하였기에, 그 절묘한 긴장 속에서 나의 부르심을 따라서 내가 있는 이 땅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것, 바로?그것이 부르심에 충실한 삶이리라.

김상래 (국제어문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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