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2017년 12월이다.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선거 운동이 한창이다. 어쩌다 보니 차기 대통령 후보가 한 명. 근데 이상한 소문이 들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중선관위)가 후보의 자격요건을 판단하는데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며 앞으로는 이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된다는 말을 청와대에 비공식적으로 전한 것. 또한, 단독후보라 투표율이 낮을까 걱정돼 뭔가 조치가 필요할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에 관련 주제로 국무회의가 열린다. 청와대는 중선관위가 비공식적으로 전한 안건을 공식적으로 전한 안건이라 이해해 발의하고 국무회의에서 안건이 통과된다. 그 후 정부는 헌법 제52조에 따라 법률안을 제출하려 한다. 청와대도, 중선관위도, 국무위원도 개정안이 발효되더라도 이번 후보에게는 적용되지 않으니 괜찮으리라 생각한다.
언론은 일련의 과정을 파악해 후보의 생각을 묻고, 후보 측은 비공식적으로 청와대의 행동이 선거개입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의견을 전한다. 언론 또한 청와대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 후 청와대와 국무위원들은 중선관위 측에 정식적인 절차를 밟아야 논의할 수 있다며 공문을 보내라 한다. 자신들이 정식적인 공문을 보내야만 논의가 진행될 수 있다고 생각한 중선관위는 국무회의에 공문을 보낸다. 이를 받은 청와대와 국무위원들은 다시 개정안에 관한 중선관위의 해석 공문을 보내달라고 하나, 중선관위는 결국 언론의 문제제기로 인해 공문을 파기하기로 결정한다. 결국 정부는 국회로의 법률안 제출을 접는다…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며 어리둥절해 하는 당신의 표정이 선하다. 어차피 최고 득표자가 대통령이 되는데 투표율이 무슨 상관이냐는 비판도 들리는 듯 하다. 선거운동 기간에 어떻게 중선관위와 청와대가 저렇게 움직일 수 있겠냐며 콧방귀를 뀔지도.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지난 한 달 동안 학생사회에서 벌어진 일이다. 총학생회 집행부를 청와대, 운영위원회(이하 운영위) 위원들을 국무위원로 바꿔서 설명했을 뿐이다. 중선관위는 그대로 중선관위고.
결국 문제가 됐던 조항은 선거세칙 제63조. 63조에 따르면, 선거세칙의 개정은 선거일정 전에 마무리 지어야 한다. 중선관위와 운영위는 이 ‘선거일정’을 내년에 있을 21대 총학생회 선거일정으로 해석했다. 어차피 개정안이 채택돼도 내년에야 발효돼, 이번 20대 총학생회 후보들에게는 영향이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중선관위가 10월 28일, 교내정보사이트 히즈넷(HISNet)에 올린 공지에 따르면, 선거일정은 선거운동기간과 선거당일로 구성된다. 관련세칙을 보자. 제15조 1항이다.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기간은 최종 등록이 이루어진 직후부터 투표 전일 자정까지로 한다.’ 조항은 올해와 내년의 선거운동 기간을 구분하지 않는다. 선거 당일 관련 조항 또한 마찬가지. 후보 최종 등록 직후부터 투표 당일까지는, 무조건 선거일정이다. 사실 이런 조항 해석까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악의가 없더라도, 대선 기간에 청와대와 중선관위와 선거법을 바꾸려 시도한다는 게 상상이 되는가? 그것도 후보를 보고 촉발된 문제의식을 가지고 말이다. 비록 선거법이 개정되더라도 그 후보에게는 적용되지 않겠지만, 유권자들에게 자칫 ‘선거법 개정의 원인이 될 만큼 자격 없는 후보’라는 인식을 줄 수 있는데 말이다.
열리려다 취소됐던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이하 전학대회)에 상정되기로 준비됐던 안건을 보자. <당해년도에 총학생회장단이 구성되지 않았을 경우, 권한대행 및 인수인계 관련 회칙 신설 여부>와 <총학생회 선거세칙 2장 ‘선거권과 피선거권’ 6조 ‘피선거권’ 5호에 “단, 당해학기의 경우 등록금 납부 마감시점 내에 학생경비를 납부한 것만을 유효한 것으로 본다.” 항목 추가.> 20대 총학생회 후보에 대한 문제제기로 생겨난 안건들이다. 20대 총학생회 부회장 후보의 경우, 후보 등록 직전에 학생회비를 냈다. 이에 중선관위가 히즈넷에 ‘후보 자격과 관련해서 중선관위 심의를 통과하는데 시간이 소요 되어 불가피하게 선거운동 기간이 정정되었습니다’는 말을 올린 것이고. 첫째 안건도 이번 후보 때문에 문제제기 된 것. 단독후보라 투표율이 낮아 총학생회가 꾸려지지 않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선거세칙 제60, 61조에 재투표와 재선거에 관한 조항이 마련돼 있다. 또한, 중선관위는 학생들의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가장 고민해야 할 기구. 투표율이 낮게 나올까 걱정하기보다는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고민하는 게 현명한 태도가 아닐까?
안건이 처음으로 논의됐던 운영위의 운영도 문제다. 운영위는 총학생회장단, 자치회장단, 총동아리연합회장단, 학부협력회 의장단이 모두 참여하는 상설의결기구이지만 그 어떤 회의록도 공개되지 않는다. 상위기구인 전학대회가 회의록 공개와 함께 학생들의 참관까지 허용하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 심지어 의사결정 시 거수를 통한 의결도 이뤄지지 않는다고 한다. 지난 해, 글쓴이는 총장과 처장 등 교무위원들이 참가하는 교무회의에서 규정에 따른 정식 의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며 총장이 실질적 의사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비판한 바 있다(본지 190호 2면 참고). 같은 논리로 운영위를 비판하기란 어렵지 않아 보인다.
마지막으로 구조적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아까 헌법 제52조를 말했다. 52조에 따르면, 정부가 법률 제출권을 가져 실질적인 입법부의 역할을 할 수 있다. 행정부와 대통령의 권한을 비대하게 만드는 대표적 조항으로 꼽힌다. 그러나 학생사회에서 전학대회의 권한은 더욱 막강하다. 조항을 살펴보자. 전학대회의 권한이다. ‘본 회의 활동에 필요한 각종 회칙 및 세칙을 재•개정 및 폐지.’ 입법권이다. ‘본 회의 각종 회칙 및 세칙에 대한 최종 해석.’ 법의 해석권, 즉 사법권이다. 입법권과 사법권을 동시에 쥐고 있는 것. 끝이 아니다. 이런 전학대회의 의장은, 집행부의 수장이자 ‘총학생회’의 의장인 총학생회장이 맡는다. 물론 전학대회 내 학부협력회 의원의 수가 가장 많으며, 의장은 의결이 가부동수일 때만 의결권을 지니는 등 권력 견제를 위한 장치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전학대회의 진행을 총학생회장이 맡으며, 전학대회의 소집요구를 의결하는 운영위의 의장 또한 총학생회장임을 볼 수 있듯이, 총학생회장의 권한이 강한 구조다.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입법•사법권을 모두 지닌 회의의 의장을 맡는 동시에 그 회의의 소집요구를 관장하는 위원회의 의장까지 맡는다고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국가와 학생사회를 일대일로 비교하는 게 어리석은 행위인 것, 알고 있다. 대통령의 재임기간은 5년이지만 총학생회장의 임기는 1년뿐이다. 처리해야 할 일은 많은데 임기가 짧으니 권한을 몰아줘야 한다는 논리도 충분히 이해된다. 또한, 국회의원을 하고 싶은 자는 많으나 팀장과 학부대표를 하고 싶어하는 학생은 많지 않다. 공직을 맡아봐야, 책임만 크다. 직접적 이득은 적다. 하지만 이러한 학생정치의 특수성이 지나친 권력의 집중에 대한 용인의 이유가 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집행부가 무언가를 발의해 개정안이 마련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권력분립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런 구조 하에서는 집행부가 자치회, 합부협력회 및 다른 기관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번 총학생회도, 총학생회 후보도, 모두 소통이 중요하다며 ‘소통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진정한 소통을 위해 필요한 말은 ‘(하고 싶을 때)소통 하겠다’가 아니라 ‘(하기 싫을 때도)소통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겠다’여야 한다. 소통 여부에 선택권이 주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 이번 일을 통해 학생정치기구의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났다. 다음 총학생회장이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소통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정립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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