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소통의 매개로 공동체 의식 회복 꾀해

▲ <늘품>의 운영은 주민의 손으로 직접 이뤄진다. 그 과정에서 관계가 끈끈해진다. 사진제공 본동종합사회복지관

 

공공철학자 마이클 센델(Michael J. Sandel)은 그의 저서 <왜 도덕인가?>에서 “내 고장에 대한 애착은 시민들이 개인적 목표와 추구를 넘어 공통의 삶을 공유하고 공적인 일에 관여함으로써 유지될 수 있다”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현대경제연구원의 <한국 사회자본, 나를 넘어 공동체로> 공동체 의식 관련 대국민 인식 조사를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7명 정도(68.4%, 전국 성인 남녀 809명을 대상)는 공동체 의식 수준을 낮게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낮아진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고 있는 움직임이 있다. 지역주민의 소식을 전하는 ‘동네잡지’와 지역 내 관계성 회복을 목표로 하는 ‘지역화폐’ 사업이 그 방법의 하나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생겨나고 있는 동네잡지에는 대표적으로 경기도 수원의 <사이다>와 서울특별시 용산구의 <남산골 해방촌>이 있다. 지역화폐로는 대전시 한밭레츠의 <두루>, 대구시 달서구 본동종합사회복지관의 <늘품> 등이 있다. 이 중, <남산골 해방촌>과 <늘품>에 대해 취재했다. 이들은 모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역 중심에서 벗어나 비슷한 사람들이 뭉쳐서 만드는 동네잡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 2 가는 독특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바로 ‘해방촌.’ 녹사평역에서 경리단길을 지나 한신아파트를 지나면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피부가 검은 어린아이가 바게트를 들고 경사진 길을 올라가고, 길옆에는 이국적인 음식점과 카페, 가게들이 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이 마을에는 독특한 동네잡지 <남산골 해방촌>이 있다. 마침 기자가 방문한 일요일 오전 11시는 발행인이자 주민인 배영욱 씨의 집에서 편집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편집회의는 매우 자유분방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시작 시각은 11시였지만, 자리에는 배영욱 씨와 사진을 맡는 한연지 씨 둘만 있었다.
“잡담 좀 하고 시작할까요?” 기자가 인터뷰를 막 하려고 했을 때, 배영욱 씨는 준비한 감자전과 귤, 잡담을 권했다. <남산골 해방촌>은 동네주민들이 주축이 되어 발행되고 있는 잡지다. 해방촌에 관련된 것이면 소재를 제한하지 않고 기사를 싣고 있다. 동네에서 서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인 동아리와 같아서 정해진 형식이나 날짜도 없다. 실제로 잡지의 귀퉁이에는 “2013 겨울부터 취재하고 2014 봄에야 나온 6호”라고 적혀있다. 대부분의 구성원은 20대에서 30대 말의 평범한 학생 또는 회사원이다. 마을에서 흥미로운 소재를 찾고 이를 주민들 나름의 방식과 시각으로 기사에 담아낸다. 해방 후 형성된 동네라는 독특한 역사적 배경과 주거공동체 ‘빈집’ 등 이미 유명한 해방촌의 공동체문화 등이 기자의 흥미를 끌었다.

Q 해방촌의 어떠한 매력에 반해 <남산골 해방촌>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제가 예전에는 사당동에 살았었거든요. 젊은 사람들이 서울에 오면 쉽게 정착하는 곳이 사당동이에요. 그 곳에서는 집이 잠을 자는 장소일 뿐이었죠. 해방촌은 일단 계절변화가 느껴져요. 남산이 뒤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길목에 화분을 가져다가 키우는 할머니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해요. 사당동에서는 골목에서 화분을 가꾸고 청소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어요. 하지만 해방촌은 골목을 마을 사람들이 가꾸고 정리해요. 여기는 내가 사는 곳이다 하는 것이 드러나요. 잠깐 스쳐 지나가는 뜨내기들이 있을 곳은 아니죠. 어르신들이 만드는 화단이 너무 예뻐요. 처음에는 ‘역시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니까 정원 가꾸기가 익숙하구나’하고 생각했는데, 어르신들이 손수 가꾸시는 화단이었어요. 이웃들이 눈에 들어온 동네는 이 동네였어요. 사는 사람으로서 정말 좋은 동네라고 생각했죠.
6년정도 회사생활을 하면서 이 곳에 살 결심을 했어요. 월드컵 기간에 회사에서 동료들이랑 같이 보려고 기다리면서 생각했지요. ‘회사보다는 집으로 와서 동네친구들이랑 맥주를 마시면서 보고 싶다. 동네에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동네 사람들의 관계에 끼어들면 되잖아요. 해방촌 성당에 가거나 모임에 나가면 되지요. 근데 일요일은 귀찮고 다른 모임은 저와는 맞지 않았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같이 하는 친구들을 만나고 싶었어요. 마침 대학원을 다니면서 과제로 <남산골 해방촌>을 시작했어요. 수업은 끝났지만 과제 끝났다고 사람들한테 이제 안 한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이미 사람들은 모였는데. 그래서 계속 하게 되었지요.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룬다

Q 해방촌의 공동체적 문화가 끈끈한 것 같아요. 무엇 때문에 문화가 나오는 건가요?
해방촌이 끈끈한 것은 맞아요. 이에 관한 논문들도 있고요. 공동체는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야 잘되는 것 같아요. <남산골 해방촌>도 해방촌에 관심이 있거나 글 쓰는 것 혹은 잡지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고 있지요. 해방촌은 굉장히 동질감이 강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에요. 1950년 이후에 북에서 내려온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이 시작한 동네지요. 서로 고향도 어려운 점도 비슷하고, 하는 일도 비슷하고요.
해방촌은 1950년 이후 북쪽에서 월남한 사람들, 한국전쟁으로 인해 피난 온 사람들이 판잣집을 짓고 살면서 형성됐다. 해방 이후 형성됐다고 해서 해방촌으로 불린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 때 <용산1재개발 계획>으로 판잣집을 엎고 빌라로 개발하려고 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뭉쳐서 반대 시위를 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자 계획은 무산되었지만 9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크고 작은 개발이 반복되면서 판잣집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붉은 벽돌집이 채워갔다.

Q 공동체를 이루는 요소로는 장소가 중요한가요? 사람이 중요한가요?
공동체는 어디든 시작될 수 있어요. 저는 아파트 공동체가 가장 잘 된다고 생각해요.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살잖아요. 아파트는 닭장, 비인간적인 장소라고 이야기 하지만 사실 매우 끈끈한 유대관계를 가질 수 있어요. 엘리베이터에서 인사가 오고 가고요. 아파트가 문제가 아니에요. 사람이 문제죠.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공동체라고 생각해요. 옛날에는 지역적으로 서로 마주치니까 하나의 공동체였던 것이지만 요즘은 비슷한 작업 공동체들이 작게 있지요. 공동체 이론은 다종다양한 다수의 공동체가 느슨한 연대의 끈으로 묶인 연대공동체를 말하거든요. 전 해방촌이 그런 것 같아요. 분명히 옛날과는 다른 성격의 공동체죠. 남의 집 숟가락 몇 개인지 아는 것은 도시 공동체와는 맞지 않아요.
<도시 인간학>의 저자 김성도 교수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도시 공간의 가치가 도시를 구성하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에 동의한 바 있다. 인간이 도시를 만들고 그 도시가 다시 인간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아파트도 거주민에 의해 그 가치가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는 관계성의 회복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김민정 박사는 <지역화폐운동의 성과와 한계>에서 “지역공동체의 대면적 유대관계를 복원시키는 동시에 참여자가 필요한 물건을 ‘제한된’ 범위 내에서 충족시키는 역할을 한다”라고 했다. 김민정 박사가 말했듯 지역화폐 또한 관계성 회복에 이바지할 수 있다. 이에 기자는 지역화폐 <늘품>을 통해 아파트 거주민 간의 소통을 촉진하고 있는 달서구 본동종합사회복지관에 연락했다.

끊어진 관계성의 회복 위한 지역화폐
현대경제연구원의 <한국 사회자본, 나를 넘어 공동체로>에 따르면 공동체 의식이 과거에 비해 낮아진 것의 원인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35.2%가 ‘돈 중심의 물질만능주의’라고 답한 바 있다. 이에 돈이 아닌 인간 중심의 화폐로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대구 달서구 송현동에 위치한 본동종합사회복지관에서 운영하고 있는 지역화폐 <늘품>도 그 움직임 중 하나다. <늘품>은 지난 2005년에 도입되었다. <늘품>에 가입된 회원들은 화폐단위인 ‘품’을 통해 물건과 노동력을 교환한다. <늘품>을 운영하고 있는 윤여국 사회복지사와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Q <늘품>의 긍정적 영향은 무엇인가요?
<늘품> 활동은 늘품센터에서 물건과 능력을 교환하는 방식입니다. 사람들이 서로 교환하면서 얼굴을 익히는 것은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서로 얼굴을 보면서 관계성이 다시 맺어지는 것이지요. 인사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작은 문제도 서로 상의하게 되고요. 의지할 수 있는 사람도 생기고요. 서로 간의 정이 많아지는 것 이런 부분들은 정말 장점인 것 같습니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이수연 연구원은 <세계 지역화폐의 이해와 유형 분석>에서 “화폐는 상품과 상품을 연결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라고 했다. 이수연 연구원은 지역화폐 특징 중 하나로 화폐의 익명성이 축소되어 거래에 사회적 관계가 부여되고 공동체가 강화된다는 점을 들었다. <늘품>의 취지도 이에 기반한다. 홍보와 연구를 담당하고 있는 윤여국 사회복지사는 관계성 단절과 복지병을 해결해보고자 <늘품>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Q 지역화폐로 이뤄지는 소통은 어떠한 것이며, 이런 소통이 지역사회나 공동체에 기여하고 있다고 보시나요?
교환을 하시는 분들이 계층 간의 차이는 신경 쓰지 않고 거래에만 집중을 하시거든요. 그러다 보면 마을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분들이 공동체 하나 만으로 서로 도움을 주면서 살게 됩니다. 예로 들면, 옷을 가져왔는데 옷이 상태가 좋지 않으면 예전에 세탁소를 하시던 분들이 수선을 해주면서 품을 받아가요. 각자 재산 규모도 다르고, 재능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지만 공동체라는 의미 하나 만으로 서로 나누고 사시는 부분을 보면 소통이 다양하게 되고 있는 것 같아요. 부유층, 중상층, 차상위층, 영세민 이렇게 계층이 있는데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계층 간 교류가 없어요. 공동체에서는 서로의 능력, 물건만 보지요. 실제로 <늘품>이 없었다면 이러한 사람들이 서로 만나기 힘들었겠지요.

2014년 기준으로 <늘품>을 이용하는 회원의 수는 760명에 달한다. 대부분 달서구 주민들이다. 가입할 때는 신규회원교육을 받아야 한다. 신규회원교육은 <늘품>의 취지와 가치, 목적을 설명한다. 단지 <늘품>이 물건을 교환하는 방법이 되기보다는 관계성을 회복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늘품>은 현재까지 온라인으로 발행할 계획을 하고 있지 않다. 윤여국 사회복지사는 “마을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자주 보고 같은 일을 하고 함께 무언가를 이루어 내는 것이 가장 큰 가치이기 때문에 화폐는 여기에 대한 보조적 수단에 가까운 것이지요”라고 말했다.
동네잡지와 지역화폐 모두 도시에서 이뤄지고 있다. 지나친 개인주의, 고독한 군중으로 대표되는 도시는 관계성과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고 있다. 본동종합사회복지관과 전화인터뷰를 마쳤을 때, <남산골 해방촌>의 자유분방한 편집회의가 떠올랐다. 아마도, 동네주민이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과 그 속에서 끈끈해진 소통이 공통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문구 기자 kimmg@hgu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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